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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현대의 우리가 잃어버린 울림들에 대하여, 봄날

 

서울연극제는 서울연극협회에서 매년 주관하는 연극제로, 2009년에는 30주년을 맞아 9개의 희곡을 선정하여 공연하였다. 이강백작의 ‘봄날’은 84년 초연에도 동일 배역을 열연하였던 오현경과, 신뢰감 있는 극단 ‘백수광부’.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 ‘이성열’등의 쟁쟁한 이름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연극이었다.

-연극적, 지독히 연극적인 묘사

무대 위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새하얀 언덕배기 아래,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초가집이 무대를 구성하는 전부이지만, 무대의 구성과 배치의 운치는 한 폭의 수묵화 못지 않다. 수묵화의 응집된 붓놀림과 여백의 미는 이는 삶을 압축과 상징을 무대위에 올려놓으려는 연극의 언어와 통한다. 무대의 오른쪽 구석에 자리 잡은 초가집은 꼿꼿하고 인색한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큰형, 5명의 철부지 동생들과, 병약한 막내까지 총 8명의 식구가 사는 곳이다. 좁디 좁은 단칸방에서 5명의 아들이 구져진 종이가 퍼지듯 문밖으로 솟아져 나오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무대위의 언덕은 다른 동네로 가는 길이자, 아들들의 노동의 공간이고아버지의 돈줄인 밭터이자, 서울로 상경한 아들들의 마음의 편지가 왔다갔다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언덕 너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이미지에는 콧끝 찡하게 하는 묘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언덕 너머에서는 우리의 그리움의 대상이, 언덕 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고달픔이 잠재워져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가끔씩은 아들이라기보다 휼룡한 광대에 가까운 다섯 아들들의 모이고 흩어지는 자유롭되 단단히 계획되어있는 몸짓들, 무대 뒤편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시주승의 목소리도 연극을 더욱 연극답게 한다. 시주승이 남기고 간 소녀는 동녀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인물로, 때 뭍지 않은 순수함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적적하고 허한 집구석을 채운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다

연극의 주제는 단순하고 보편적이다. 연극 속의 가족이 말미에 뿔뿔이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연극에서 절절히 전해 오는 것은 가족이기에 가질 수 있고 가족이기에 저버릴 수 없는 끈끈한 결속과 정이다. ‘봄날’의 아버지는 소소한 잔정도 없고, 오히려 아들들을 죽어라 부려먹고는 극단적 가부장주의 가장의 모습이다. 둘째부터 여섯째의 아들은 이런 아버지에게 불만과 원망이 가득 쌓여있지만 정작 아버지의 불호령에 꼼짝못하는 철부지들이다. 막내인 병약한 일곱째 아들은 아버지에겐 애물단지, 큰형에겐 보살펴주어야 할 동생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이어주고 지탱해주는 것은 큰 형님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둘 사이에서 식지 않는 끈기와 깊은 인내로 가족의 평화를 지킨다. 잔잔한 표정과 담담한 말투 속에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람이다. ‘형님은 어머니야’라는 막내의 말처럼 큰 형만이 어머지의 부재를 채울 수 있는 너그럽고 강인한 존재이다.

-옛날의 삶이 현대인의 가슴에 울리다

연극의 무대� 간결하고 단순하다. 마지막의 아들들의 계략을 제외한다면 연극의 호흡은 느리고 정적이다. 아버지와 자식간의 역학관계는 현대의 젊은 세대들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전통적이다 못해 생소한 가치관들이 현대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올 수 있으며,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연극에는 관객의 숨을 죄어오는 긴장감 있는 플롯도 화려하고 신나는 볼거리 없다. 하지만, 연극이 되짚어주는 전통적인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조용하지만 힘있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연극에서 보듯이, 옛날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항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가족의 신 마냥 군림한다. 땀 흘리고 밭 가는 단순한 노동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하루의 세끼 식사가 하루 중의 큰 기쁨이 된다. 삶의 희노애락 또한 현대의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되, 더욱 절절한 모습이다. 현대의 삶은 전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정작 삶의 결과 질곡을 느끼는 것에 충실하였던 것은 옛날의 삶이 아니었을까. 동녀와 막대아들의 수줍고 천천히 자라나는 지고지순한 사랑,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지탱하였던 큰 아들의 희생하고 참아 견디어내는 사랑의 모습은 현대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생소한 사랑의 모습이지만 현재를 사는 관객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강민경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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