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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연극보기의 타성에 젖은 이들을 깨우는 각성제, 관객모독

 

롱런하는 작품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긴 시간동안 공연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작품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와 시대에 끊임없이 제시할 수 있는 의미있는 화두를 가졌다는 뜻이다. 무려 30여 년간 극단76단에서 공연된 연극 ‘관객모독’도 그 중 하나이다. 연극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관객모독’은 한번쯤 들어본 제목일 만큼 대학로의 ‘관객모독’은 유명하다. ‘관객모독’은 ‘반연극’ 또는 ‘언어연극’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작품성 있고 실험정신 넘치겠지만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어렵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다. 그러나 연극이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은 다소 낯설지 몰라도 하려는 말은 의외로 단순하다. 연극에 대한 심각하고 경직된 자세를 버려라! 아니, 어떤 종류의 자세도 가지지 마라! 가 연극이 말하고 있는 바이다. 연극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 형식의 해체와 해방, 그리고 카타르시스!
‘관객 모독’은 연극의 ‘형식’을 부정하는 연극이다. 이것이 바로 연극 ‘관객 모독’의 목적이며, 그들의 이를 행하는 방식은 무척 생소하며 직접적이다. 관객과 무대사이의 침범 불가한 벽, 무대 위의 세트와 소품의 상징성, 극 속의 인걋� 연기하는 배우 등이 연극과 관객 사이의 약속이자 연극을 성립시키는 전제라면, ‘관객모독’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이를 부정한다. 무대 위에는 4개의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배우는 캐릭터가 아니라 연극배우를 연기하며, 연극의 줄거리나 플롯을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다.
배우들의 대사는 빠르고, 두서없고, 중첩되고, 어딘지 꼬여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들은 연극의 형식을 입지 않고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그들은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 예상한 것을 이곳에서 맛볼 수 없을 것이며, 대신 여러분의 내심을 파고들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예고를 한다. 배우들의 무차별적 지적성 멘트, 관객석에 들어오는 조명 이외에도 배우들은 ‘대사’로서 관객들이 스스로를 의식할 것을 직접 요구한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긴장한다.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새로운 자극은 변화의 씨앗이 된다.
연극은 현 체제의 파괴와 해체를 꾀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쿠데타’이기도 하다. 하지만 쿠데타가 현 체제의 불신에 의거한 반란이라면 ‘관객모독’은 현 체제에 대한 신뢰를 잊지 않은 반란이다. 연극이 부정하는 것은 연극의 형식이지 연극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화, 혹은 타성에 젖은 연극의 형식은 때론, 연극이 할 수 있는 소통의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와해된 형식의 무덤 앞에서 관객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이 ‘관객모독’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종류의 카타르시스이다.

- 연극의 또 다른 백미, 극중극과 즉흥극
연극의 유일한 ‘백미’혹은 ‘관전 포인트’ 광고되는 모욕과 물세례는 연극 후의 뒤풀이에 차라리 가깝고, 연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연극을 절정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연극 속의 극중극이다. 또한 다소 추상적이고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도입부와 마무리 사이에서 구체성을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발단-전개-위기-절정-파국’의 구성을 가진 막장멜로드라마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또 한 번의 앙상하게 드러난 형식의 뼈대에서 발견되는 것은 형식의 인위성과 작위성이다. 여기서 배우들의 대사는 극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논문식의 글을 따왔다. 대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극중극의 뻔 한 구성이 대치되어 일차적인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마음대로 끊어 읽은 대사에 극의 상황에 충실한 어조를 입힘으로서 극과 유리되어 있던 대사가 순간순간 극 속으로 침투한다. 이처럼 극중극은 연극의 언어유희가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극중극의 클라이맥스에서 배우들은 즉석에서 관객의 의견을 받아 즉흥극을 펼치기도 한다. 숨죽이고 있을 것만 같았던 어둠속의 관객이 하나둘 연극의 연출에 가담하는 부분은 연극이 관객을 성공적으로 ‘모독’했음을 보여준다. 덕분에 관객은 본래의 약속된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반관객에 자칫 생소하고 심각하게 여겨질 수 있는 바게트의 희곡에 극중극들 삽입한 것은 극단76단이다. 극중극을 통해서 공중의 뜬구름 잡는 것 같던 대사 중심의 연극이 관객에게 한 걸음 바싹 다가온다. 연극의 연출가인 김국서의 말에 따르면 지금의 극중극은 ‘관객과 만나면서’ 생겨난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소산이라고 한다. 바로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소통하려는 극단의 의지가 극중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연극 ‘관객모독’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은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 자체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대학로의 수많은 공연이 공연되어지고 있기에 연극 ‘관객모독’이 비로소 그 존재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관객모독’은 연극관람의 ‘지침서’라기 보단 연극관람의 ‘각성제’에 가깝다. 앞서 말한, 어떤 자세도 가지지 말라! 라는 극의 주장은, 연극보기의 지침서(그런 게 있다면)를 경계하는 말이다. 직접, 스스로, 자유롭게 연극과 소통하고 느껴라. 당연한 말일 수록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연극보기의 타성에 젖은 이들에게 ‘관객모독’을 권한다.


강민경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박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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