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재로 늘 재미와 기대를 안겨주는 연출가 이해제가 2002년 초연했던 연극 ‘지리다도파도파 설공찬전’을 ‘설공찬전’으로 수정, 다시 관객들 앞에 섰다. 기발한 소재 뒤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항상 쉬우면서도 재기 발랄한 성향을 드러내왔다. 최근 ‘쉐이프’, ‘웃음의 대학’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관객들과 만나는 연출가 이해제의 또 다른 연극, ‘설공찬전’은 오는 4월 5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설공찬전’은 1511년 채수가 지은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저승에서 돌아온 ‘설공찬’이라는 인물이 사촌동생 ‘공침’의 몸을 빌려 현실정치를 비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극에서 역시 ‘공침’의 몸에 침투한 귀신 ‘공찬’은 뇌물만 밝히는 정익로 대감에서부터 비열한 아첨꾼 설충수와 옥매당부인에게 한바탕 골탕을 먹인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식 끝장 보기 복수열전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는 눈 가리기 아웅으로 끝나는 그의 소심한 복수가 그리 시원치만은 않다. 관객들은 ‘설공찬’에게 정익로 대감의 면전에 대고 바른말을 한다던가, 관직을 사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설충수의 계획을 물 먹이는 작전보다 더 짜릿한, 연극 속에서 만이라도 세상을 바꿀 위대한 복수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공찬의 혼이 빙의될 때 외우는 ‘지리다도파도파’라는 주문은 세도가들의 부정함을 본 ‘공찬’의 한스러움이 모두 함축된 한마디임은 물론, 오늘날 역시 유효하게 적용되는 메아리다. ‘지리다도파도파’라는 말은 남산의 신이 헌강왕에게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며 노래로써 경고한 가사다. 그 뜻인 즉, ‘지혜로 나라를 다스릴 자들이 미리 알고 많이 도망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하리라’라는 것이다. 미국 금융 위기로 시작한 세계 경제의 미래를 놓고 논란이 분분한 오늘, 연극 ‘설공찬전’에서 울리는 ‘지리다도파도파’의 주문은 시대를 넘어 21세기의 현실에도 예사롭지 않은 외침이다.
비록 그 형식과 동기는 다르지만, 1명의 몸 안에 2명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연극 ‘설공찬전’의 주인공 ‘공침’은 얼마 전 막을 내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만 연극 ‘설공찬전’과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차이점이라면, 비열한 살인마인 하이드를 깨워낸 지킬박사와는 달리 연극에서는 인간 ‘공침’이 망나니요, 귀신 ‘공찬’이 바른생활 청년이라는 점이다. 연극 속에서 인간 ‘공침’과 귀신 ‘공찬’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정재성 배우의 연기는 그야말로 ‘신(神)’ 들린듯하다. 또한 연극 ‘설공찬전’은 이미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대거 포진돼 있기로 소문난 작품이니 만큼 비중 높은 조연에서부터 한두 번 등장하는 배우들까지 예사롭지 않은 끼를 드러내고 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현재를 꼬집는 날카로움으로 사랑받는 연극 ‘설공찬전’은 오는 4월 5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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