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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뮤지컬의 시작

 

 

 

한국 뮤지컬의 본격적인 시작은 1961년 설립된 예그린악단이 1962년에 공연한 '삼천만의 향연'부터라고 이야기하지만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던 '삼천만의 향연'부터 처음으로 무용과 음악, 연극이 함께 만나는 뮤지컬 형식의 '흥부와 놀부'(1963)등으로 점점 뮤지컬 적 요소를 갖춰가다가 1966년에 만든 '살짜기 옵서예'가 진정한 뮤지컬의 시작이라고 할 수있다.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는 음반으로도 제작되었고 주제가인 '살짜기 옵서예'는 대중들이 즐겨부르는 유행곡이 되기도 하였다. 예그린 악단은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1967)' '대 춘향전(1968)' '종이여 울려라(1972)' 등을 시민회관에서 공연하다가 1974년에 국립극장에 국립가무단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었다.

민간극단에서 올린 최초의 뮤지컬은 1966년에 동랑 레퍼터리 극단이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 거쉰의 '포기와 베스'였다. 그리고 이작품이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본격적인 서구식 뮤지컬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극단 가교가 1973년 톰 존스 작의 '환타스틱스'를 '철부지들'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공연하였다.

대형뮤지컬의 공연은 현대극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대극장은 '빠담 빠담 빠담'(1977)이라는 작품을 공연한 이후 '피터팬'(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에비타'(1980), '백설공주'(1982), '뿌리'(1982), '올리버'(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레미제라블'(1988) 등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수입하여 공연하였다.
현대극장이 우리 뮤지컬의 토양을 다지는데 크게 공헌하였다면 뮤지컬의 대중화를 선도한 것은 극단 민중, 대중, 광장의 세 극단이 1983년 합동으로 공연한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이 공연은 초연때 부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1991년까지 8년간 지속적인 재 공연을 하였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1991년까지 서울에서만 18차 공연에 316일의 공연을 하였고 관객은 약 3백만에 이를것으로 추정된다..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9월 27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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