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짝 트인 객석 앞의 공간에 비해 배우들에게 허용된 무대는 작다. 커튼, 상자들, 식탁 등으로 이루어진 부부의 방은 단조롭고 소박하다. 광택이 나는 빨간색의 기다란 옷장만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천장은 방을 억누르는 듯 조명 밑에 위치하고, 천장에 달려있는 커튼은 무대를 나누고 경계 짓고, 감춘다. 두 명의 배우라기보다 한 쌍의 부부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이들은 공간의 중앙에 설치된 조그만 방안에서 그들의 특별한 것 없는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부의 사적인 생활의 조각들을 훔쳐보며 관객은 오히려 자신의 사적인 생활이 드러나 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부의 시시콜콜한 대화들, 답답한 현실과 함께 피어오르는 헛헛한 꿈들이 낯설지 않다. 우리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연극 속의 들쑥날쑥한 부부생활의 단면들은 조명의 암전이 아닌,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소리로 연결 된다. 불이 꺼지기 않기 때문에 배우들이 감정을 추스리고 다음 씬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진다. 쫓기는 시간 속, 협소한 방안으로 자꾸만 밀려오는 민물 같은 생활의 물결들에 부琯� 관객들도 꼼짝없이 갇혀버린다.
연극 속의 부부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투닥거리지만 사이좋은 부부다. 두 배우가 맞추는 부부의 호흡은 소름끼칠 만큼 자연스럽고 리얼하다. 같은 회사의 운전수와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그들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월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런 생활 속에서도 그들은 번번이 부질없는 희망을 찾고 구름 같은 꿈을 키운다. 그들이 소망하지만 차마 현실이 되지 못할 꿈들이란 섬 속의 호화로운 리조트, 월풀 욕조와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대신해 부부의 방 안에 있는 것은 아직 할부가 채 끝나지 않은 빨간 옷장과 색소폰이다. 부부는 서로를 향해 조금 웃음 짓기도 하고 조금 찡그리기도 하며 꿈과 현실을 일상 안에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런데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금을 가게 하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다.
‘아이’가 부부의 방안에 불청객으로 들어서게 된 것은 그것의 존재 가치보다 우월한 그것의 비용 가치 때문이다. 이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부부를 옭아매는 현실의 정체는 바로 ‘돈’이다. 아이의 존재 가치의 편에 선 아내와 비용 가치의 편에 선 남편은 팽팽한 대치를 이룬다. 급기야 남편은 아내에게 낙태를 요구하게 되고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한 번 가기 시작한 금은 기어코 가정의 평화를 산산조각내기에 이른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가 임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맞닥뜨리면서 일어나는 갈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은 무엇보다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생한 생활의 현장들과 실제 같은 부부의 호흡을 통해 자극적이거나 화려한 장면 하나 없이 효과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특히 한 달 생활비를 조목조목 계산 하는 제법 긴 장면이 인상 깊다. 부부는 씁쓸한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힘없는 존재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안아줄 수 있기에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현실과 화해할 수 없어도 현실을 함께하는 상대방과 화해할 수 있기에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도처에 있을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맞벌이 부부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싶다. 그것은 또다시 우리이기도 하기에.
강민경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이은경 charmg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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