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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달콤한 희망이라는 이름의 독, 연극 ‘밑바닥에서’

                    

 

연극 ‘밑바닥에서’는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1902년 희극이다. 싸구려 여인숙을 배경으로 그 곳을 드나드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1900년대 우울했던 러시아 사회상을 리얼하게 그려낸 연극의 고전이다. 이번 공연에선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연출을 통해 한국의 관객에게 보다 사실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밑바닥에서’는 10여년 만에 연극으로 복귀한 김수로와 한창 드라마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엄기준의 출연으로도 화제가 됐다.

연극 ‘밑바닥에서’는 ‘김수로와 엄기준의 연극’이란 타이틀이 무색하리만큼, 그들이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제한돼있다. 등장하는 20여명의 인물들은 모두 주인공인 동시에 조연의 역할을 한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비교적 균등하게 조명을 받는다. 고리키가 작품을 썼던 1890년대 러시아는 자본주의 제도의 모순, 경제 공황 등으로 사회 밑바닥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던 때였다. 이 작품 속에는 도둑, 사기꾼, 알코올중독자, 성공하고 싶어 하는 수리공, 기적을 기다리는 이 등 다양한 ‘밑바닥’인생들이 한데 모여있다. 그들은 여인숙에 모여 하루하루 세상을 원망하고 지탄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숙에 ‘루카’라는 늙은 순례자가 그들 앞에 찾아온다. ‘루카’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 보이던 암흑 같던 그들의 인생에 ‘희망’이라는 것을 심어준다.

연극 ‘밑바닥에서’는 무대와 연출의 세심함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딸랑 딸랑’거리는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둔탁한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인물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각 인물들의 독백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준다. 여인숙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는 회전무대 또한 각 장면에서 대조적인 상황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그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회전무대 뒤편에는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이 비탈길을 지키고 있다. 이 비탈길은 순례자 ‘루카’의 등장을 맞이하고 ‘안나’와 ‘배우’의 죽음을 배웅한다. 여인숙의 뒤편 어두운 오솔길은 찾아오는 자와 떠나는 자를 모두 포용하는 역할을 한다.

9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김수로는 완벽한 배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영화와 예능으로 인해 굳어진 코믹한 이미지를 말끔히 던져버리고 연극 ‘밑바닥에서’ 속 ‘페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간간히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와 말투에서 ‘패밀리가 떴다’의 ‘김계모’가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페펠’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이나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수로뿐만이 아니라 ‘루카’역의 김세동, ‘사틴’역의 한동규 등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만 유독 물에 기름이 떠있듯 녹아들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인물은 ‘바실리사’였다. ‘바실리사’를 연기한 배우 곽다경의 연기는 안정을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발성은 연극 무대보다는 브라운관 속에 있는 드라마 연기를 연상시키며 다른 인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 ‘바실리사’가 극중 깨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보니 단순한 배우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 작품의 전체적인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주인공의 구별 없이 모든 인물들의 사정을 보듬어 안는 것은 이 연극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밑바닥에서’는 20여명의 인물들에게 일일이 시간을 할애하고, 좁은 무대 안에서 모두의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들이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그 어느 인물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스포트라이트는 그 순간에는 그 인물에게 시선을 쏠리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내기에는 깊이가 부족하다.

연극 ‘밑바닥에서’는 모두가 희망을 품고 그 이후로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도리어 헛된 ‘희망’이 가져다주는 보다 잔인한 현실을 그려낸다. 사틴은 ‘위로’라는 것이 “약한 사람들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희망’을 가져온 ‘루카’가 그 희망이 산산조각 남과 동시에 홀연히 사라지면서 더욱 더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하지만 ‘희망’이 ‘독’이나 ‘거짓말’일 수 있듯이 ‘독’과 ‘거짓말’이 반대로 긍정의 힘을 지닌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 말 할 수 있다. 온몸에 퍼지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독이 생명을 연장시킬지 단축시킬지는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이예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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