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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황혼 무렵에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부엉이, 극단 백수광부의 ‘뉴욕 안티고네’

                     

 

과연 뉴욕에서 안티고네를 찾을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여인인 안티고네는 왕명으로 금지된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주다 위기에 처하는 여성이다. 국가의 법과는 다른 개인의 양심을 지키려다 결국 자살을 하고 마는 이 기원전의 여성이 뉴욕에 있다니. 극단 백수 광부는 이 유명한 희랍비극을 뉴욕 노숙자들의 삶으로 교묘하게 옮겨 놓았다.

안티고네. 뉴욕에서도 장례를 치르다
알코올중독자 ‘샤샤’, 개념 없고 허풍쟁이인 ‘벼룩’, 정신이 살짝 이상한 ‘아니타’는 뉴욕 공원의 노숙자들이다. 아니타는 샤샤와 벼룩에게 돈과 스키부츠를 준다고 하며, 사랑했던 ‘존’의 시체가 공동묘지에 묻히기 전에 찾아달라고 한다. 두 사람은 공원에 간신히 떠메고 온 시체 한 구가 ‘존’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경악한다. 이를 알지 못한 ‘아니타’는 경건한 장례를 진행하고, ‘샤샤’가 그녀를 돕는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고대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의 정숙한 딸 안티고네와, 그녀의 약?愍見� 왕의 아들인 하이몬. 그들을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과대망상증 여자 ‘안티고네’와, 벤치에 신문지를 덮고 잠이나 자는 알코올중독자 ‘샤샤’로 바꾸어 놓다니. 그것만으로도 신선한 흥밋거리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가장 진한 내면은, 그런 그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와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타’의 솔직한 애정과 거기에서 오는 사랑스러움, ‘샤샤’의 인정과 앞날에 대한 희망. 이 공연은 우리가 코를 싸쥐고 피해갔던 노숙자들에게도 따뜻한 삶이 있음을 일러준다.

뉴욕의 밝음은 안전한가
‘그들은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잠을 잡니다. 낮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극의 시작과 함께 차분하고 신뢰감 있는 경찰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경찰관의 듬직한 곤봉은 흉기로, 친절한 미소는 비열한 웃음소리로 변한다. 과연 뉴욕의 낮은 안전한 것일까.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보일러실에 숨어 지내고, 먹을 것 하나에 우르르 몰려야 하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면 뉴욕의 치안에 의심이 간다. 노숙자를 모두 쫓아낸 철창에 달린 목 맨 끈을 볼 때, 밝고 깨끗한 공원이 두렵다. 우리는 때때로 눈이 부셔서 법이나 국가라는 밝음과 대치하는 것을 잊곤 한다. ‘뉴욕 안티고네’는 우리에게 숙제를 던진다. 촛불 시위와 전경과의 대치가 빈번한 이즈음에 눈을 뻐끔거리며 심심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밝음이 과연 안전한지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무대, 연출, 배우라는 정교한 껍질은 굵은 나무를 만들고.
하늘까지 솟은 나무세트가 인상적이다. 노숙자들의 손등처럼 껍질이 갈라진 나무는 추위를 함께 하고 있는 동료이고, 쫓겨나거나 죽은 노숙자들을 위해 하늘을 보게 하는 위로의 오브제이다. 이 공연은 긴 러닝 타임, 쉴 새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많은 대사들, 무거운 주제에서 알 수 있듯 쉬운 연극이 아니다. 그러나 2시간 20분은 그야말로 ‘달려간다.’ 많은 대사를 귀에 쏙 들어오게 하는 리듬감 있고 정확한 화법이 한 몫을 한다. 허풍쟁이에 부도덕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벼룩처럼, 안정적인 캐릭터의 표현도 극을 떠받치고 있다. 또 정제된 조명과 세트로 고상한 느낌을 주는 무대 연출, 스크린을 이용한 무대 설치 등의 시도가 볼만하다. 극단 백수광부가 4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쌓아온 조각조각이 ‘좋은 작품’이라는 굵은 나무를 만든 것이다.

언젠가부터 대학로 연극의 위기라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를 비우고 웃다가 갈 수 있는 코믹극이나, 감성을 자극하여 눈물을 쏙 빼는 연극만 잘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기 험해서 눈을 돌리고 마는 우리 삶 속의 비극을 녹여낸 문제작을 올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저서 <법철학>의 서문에 유명한 경구를 하나 남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지혜의 상징인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밤에 그 날개를 펴는 것처럼, 모든 것은 ‘현재’가 지나간 뒤에야 분명해 질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연극의 황혼에 불안해하는 사람이라면 극단 백수광부와 ‘뉴욕 안티고네’를 들여다보자. 새로운 내일이 있음을 알게 하는 수작을.


백수향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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