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에게 인정 받는 다는 것은 논리와 이론이란 것에 강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논리와 이론에 밝고 인정을 받는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할까? 타인에게 인정받는 지식이 그가 정말 바라던 것일까? 이 철학적 질문에 너무도 이해하기 쉽게 답을 내려주는 연극이 있다. 바로 ‘리타 길들이기’다. 리타와 프랭크를 통해 ‘지식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 성장’의 상관관계를 들여다 보자.
- 길들여지고 싶은 여자 리타
리타는 교육에 길들여지고 싶었다. 사는데 필요 없다며 무시했지만 사실은 그 빌어먹을 문학을 이해하고 싶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다. 그래서 배워야 했다. 배우려면 학점을 받아내야 했고, 학점을 받으려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교육이라는 것에 길들여지기를 원했다. 리타는 자신이 잘해 가고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바라는 것들을 하나, 둘 성취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을 가장 칭찬해 주리라 믿었던 프랭크 교수는 되려 화를 낸다. 리타는 프랭크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분명히 처음에 프랭크가 가르친 대로 되는 것이 분명한데 그는 아니라고 한다. 헌데 프랭크와 크게 다투고 난 어느날 리타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토록 자신감 넘치고 리타의 훌륭한 토론 상대였던 트레이시가 자살을 한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리타는 문학적 성장이 자신이 진정으로 꿈꾸던 변화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으로 리타는 스스로 길들여지기를 그만두고 자신으로 돌아가 다시 가위를 든다.
- 길들이고 싶지 않은 남자 프랭크
프랭크는 인간으로서의 프랭크와 교수로서의 프랭크라는 두 가지 자아의 충돌을 보여준다. 교수로서의 프랭크에게는 의무가 있다. 학생을 가르치고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 그는 지금까지 그 의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낙제점이었다.처음 나타난 리타와 같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던 열의와 열정이 있었을 프랭크는 어느새 가르치는 것에도 염증을 느끼는 퇴물교수가 됐다. 그러나 리타는 논리와 이론에 잘 길들여진 학생들과 달랐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프랭크는 리타 길들이綬� 거부한다. 리타의 참신함과 발랄함,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음이 그녀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프랭크는 리타가 마지막에 함께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란 이름의 때를 리타에게 묻히지 않기 위해서.
이런 어려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리타 길들이기’는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톡톡 튀면서도 공감을 불러오는 쉬운 대사와 빠른 상황전환이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심오하지만 가볍고 즐거운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2월 1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조아라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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