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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재, 다른 맛, ‘그대를 사랑합니다’ vs ‘늙은 부부 이야기’

 

 

노년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 주는 두 편의 연극이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늙은 부부 이야기’는 모두 노년의 마지막 사랑을 다뤘지만 각각 자기 나름의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그 두 가지 맛을 음미해 보자.

- 로맨스 그레이 두 남자 박동만과 김만석
‘늙은 부부 이야기’의 박동만은 자칭 동두천 신사로 느끼하게 느껴질 만큼 젊은이같은 연애상을 보여준다. 바람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여자를 알기에 오히려 더 로맨틱한 연애를 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바람둥이라는 타이틀을 이 캐릭터에 붙여 줌으로서 노인의 성에 관한 부분이 노골적으로 나와도 관객이 웃으며 이해하고 넘어가게 하는 장치가 있는 캐릭터이다.
이에 비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김만석은 괄괄한 할아버지의 전형으로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살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는 귀여운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김만석의 쑥쓰러움을 타는 까칠한 성격은 성인의 연애가 아닌 마치 청춘 소설에 나올 법한 풋풋한 연애를 하게하는 장치가 된다.

- 여자가 된 이점순과 한 사람으로 남은 송이뿐
‘늙은 부부 이야기’의 히로인인 이점순은 욕쟁이 할머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홀로 자식을 기르며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갔던 강한 어머니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박동만과 로맨스를 펼치게 된 이유도 집을 세 놓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박동만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변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소녀처럼 수줍어하며 애교를 피우는 한 여성일 뿐이다.
그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송이뿐은 마지막까지 여자이기 보다 한 명의 사람이었다. 박복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온 여자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아닌 그저 힘든 삶을 살아가고만 있는 한 사람이다. 파지를 주우며 근근히 삶을 이어가는 그녀는 독거노인대상의 보조금을 받게 되는 것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 그렇게 한번도 행복해 본 적 없는 삶의 끄트머리에 찾아온 로맨스가 너무나 소중해 그 기억을 망가뜨리지 않고 죽음을 맞고 싶어 이별을 선언하는 삶에 지친 사람이다. 끝까지 한 명의 여인이기보다 사람으로 남는다.

-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부였던 장군봉과 조순이
장군봉은 치매에 걸린 부인을 간병하며 주차장에서 일하는 속 깊고 큰형님 같은 존재다. 그 깊은 마음으로 죽음도 함께하는 노년에서만 가능한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그의 반려인 조순이는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김만석과 장군봉이 우정을 다지게 되는 매개체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죽음과 사랑이라는 통속적 주제를 노년이기에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조순이를 통해 우리는 치매에 걸린 노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그저 속옷과 이부자리를 더럽히고 말도 안 되는 요구만 해 대는 골치덩이 노인이 아닌 소녀같이 순수하고 지나간 추억의 좋은 부분만 편집해서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 한편을 머리 속에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부부는 장군봉과 이점순, 김만석과 송이뿐 커플과는 달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부였다. 앞의두 커플은 홀로된 노인들이 만나서 새로운 가정을 일구고 사랑하는 것이 파격적인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함께 늙어온 노년부부만의 특별한 사랑과 세월의 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할이다.

- 소극장과 중극장의 장점을 살린 무대
늙은 부부 이야기는 이점순의 집이 무대다. 그것도 방이나 다른 살림은 과감히 생략하고 두 배우가 함께하는 장소인 마루와 마당만을 보여준다. 이것은 좌석수가 100개 남짓인 소극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으나, 단 두 명의 배우가 전체 극을 이끌어 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효율적인 구성이다. 동만과 점순의 방을 모두 보여주려 했다면 넓지 않은 무대가 더욱 조잡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350개의 좌석에 3면 무대를 적극 활용하여 우유배급소, 이뿐의 집, 군봉의 집, 주차장, 언덕 등을 모두 설치하여 다양한 배경을 보여 주었다. 또한 점순이 보는 환상 속의 꽃비를 조명으로 처리하여 연극치고는 드라마틱한 효과도 냈다. 이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만화가 원작인 이 작품 특성상 스토리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장면 전환이 너무 많아 오히려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 노년 로맨스의 양면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스토리
두 작품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을 한 마디로 하라면 로맨스소설과 청춘소설의 차이라고 하겠다.
박동만과 이점순은 한집 살림을 하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 만큼 신혼부부의 모습이다. 잠자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반지를 나눠 끼고 사랑의 선서를 한다. 이쁘게 사랑하다 죽음으로 이별하고 홀로 빈 자리를 지키는 남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 나온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랑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보여주었다. 진부하지만 제법 괜찮은 할리퀸 로맨스 한 권을 모두 읽은 듯한 스토리다.
그러나 김만석과 송이뿐은 서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년의 성이나 삶 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조심스레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작의 서브타이틀이 ‘순정만화 시즌3’인 것부터 이들의 연애는 순정만화나 풋풋한 청춘소설 같다

- 불치병에 걸린 연인이라는 진부함을 노년이라는 이유로 용서받다
그 모습은 다 다르지만 ‘늙은 부부이야기’와 ‘그대를 사랑합니다’ 모두 불치병에 걸린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만은 점순을 만난지 채 1년이 안되어 불치병으로 사별하고, 만석은 전부인과 암으로 사별했다. 군봉이 순이와 동반자살을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도 순이의 암이다.
진부한 드라마나 소설, 영화에서 보면 늘 여 주인공은 백혈병이나 암으로 죽는다. 남주인공은 암으로 죽는 여주인공과 동반자살하거나 그녀를 추억하며 살거나 한다. 조금 변형했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불치병으로 죽어서 상처를 가진 남자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연히 낯선 두 사람이 만나 호감을 가지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데 여자가 불치병으로 죽는다는 진부한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들은 신파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살며시 면죄부를 던져주고 싶어지는 것은 이들의 나이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이쁘고 로맨틱한, 현실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랑을 그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노년의 삶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주는 것 자체로도 이 작품들은 파격이다.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층도 늘어났다. 지금은 55세 이상이 한국 인구의 18%를 차지하고 실버문화와 실버산업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60을 넘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이젠 환갑잔치도 하지 않는 시대다. 100년쯤 후에는 홀로된 노인들의 결혼이 당연시 될 지도 모른다. 이 두편의 연극은 그럴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하고 아픈 삶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연극들이다.


조아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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