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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 ‘잘자요, 엄마’ 문삼화 연출가…“남은 건 관객의 몫”8월 16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

▲문삼화 연출가_수현재씨어터 제공

연극 ‘잘자요, 엄마’는 마샤 노먼의 희곡이 원작이다. 엄마 ‘델마’와 딸 ‘제시’의 관계를 통해 가족관계 속에 존재하는 결핍을 다룬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주말, ‘제시’는 자신의 엄마 ‘델마’에게 2시간 안에 죽겠다는 말을 꺼낸다. 연극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딸과 그런 딸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엄마가 대치하면서 이어진다.

 

이번 작품은 문삼화 연출가가 맡았다. 2008년 연극 ‘잘자요, 엄마’ 초연에 이어 두 번째 연출이다. 그녀는 연극 ‘잘자요, 엄마’ 외에도 마샤 노먼의 처녀작 ‘Getting Out’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지난 7월 3일에 시작해 한창 ‘잘자요, 엄마’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문삼화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연극 '잘자요, 엄마' 공연 사진_수현재씨어터 제공

- 연극 ‘잘자요, 엄마’를 2008년에 이어 두 번째 연출했다. 마샤 노먼의 처녀작 ‘Getting Out’의 연출도 맡았던 것으로 안다. 마샤 노먼 작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가?

 

마샤 노먼 작품의 특징은 심리적인 욕망과 갈등 등을 임계점까지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연극은 보통 극한까지 치닫는 상황극이 많지 않다. 내면에 잠재돼 있다는 뉘앙스로만 끝난다. 그런데 오히려 그녀의 작품은 정말 물이 끓기 직전까지 간다. 그런 점이 한국인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 ‘델마’와 ‘제시’가 겪고 있는 상황이 평범하지 않다.

 

‘델마’와 ‘제시’ 모두 특별할 게 없다. ‘델마’는 흔히 볼 수 있는 엄마고 ‘제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다. 다만, ‘제시’가 고질병을 안고 있다는 상황이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그녀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끌고 나가기에는 일종의 장애가 있다. 그것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숨겨있다. 그런 상황들이 특별한 것이지 두 인물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제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관객마다 자신의 인생을 통해 작품을 바라본다. 내가 ‘제시는 이런 사람이다’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누군가는 ‘제시’를 ‘이상하다’, ‘미쳤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굉장히 불쌍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사실 ‘제시’가 굉장히 강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간질 때문에 한 번도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없었다. 무엇이라도 자기 의지로 선택하고 싶었고 그게 ‘죽음’이었던 것이다.

 

‘제시’가 원망이나 불만, 자기연민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을 비롯해 무엇이든지 자기 의지로 결정하지 못했다. 마지막 선택은 능동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던 ‘제시’가 그녀 나름대로 안간힘을 쓴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선택을 동의하지 못하지만 존중해주고 싶다.

 

- ‘제시’가 자신의 선택을 엄마인 ‘델마’에게 이야기한다.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다.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갔다면 아마 더 불쌍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연극 ‘잘자요, 엄마’는 이해받으려는 자와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의 갈등이다. ‘제시’가 굳이 엄마에게 미리 말한 이유는 자기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 수많은 직업 중 ‘연출가’를 선택한 이유는?

 

연극이나 영화는 완전히 집단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하고 부딪히는 게 가장 힘들다. 그런데 그게 핵심이다. 사람과 부딪히는 것 때문에 피곤하면서도 또 그 사람들 안에 있는 것 때문에 연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나하고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연극 작품은 대부분 극적이고 극단적이다. 하지만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나는 무난하고 평범하게 살았다. 그래서 작품을 할 때마다 인생을 산다는 게 뭔지 배우는 거 같다.

▲연극 '잘자요, 엄마' 공연 사진_수현재씨어터 제공

 

- 연극 ‘잘자요, 엄마’의 대사가 매우 현실적이다.

 

나는 전문번역가는 아니다. 연출할 작품만 번역한다.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원작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 연출했다. 문화와 정서가 맞지 않아 관객들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번역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다.

 

나는 시처럼 문학적인 표현을 잘하지 못한다. 대신 공연에서 쓰이는 언어나 구어체 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작품 번역을 10년 넘게 했다. 이제는 별로 어렵지 않다.(웃음) 만약 번역만 했다면 몰랐을 것이다. 관객들과 직접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번역이 어렵지 않게 된 것 같다. 연극은 현장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 조금씩 알게 모르게 요령이 생겼다.

 

- 연극 ‘잘자요, 엄마’ 4명의 배우 모두 각자의 색깔이 분명하다.

 

배우가 인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배우에게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델마’ 캐릭터나 ‘제시’ 캐릭터를 통일하려 애쓰지 않았다. 각 배우에게 맞는 인물로 가려고 했다. 연습 기간에는 크로스로 돌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엄마는 두 딸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딸들도 두 명의 엄마를 적응하느라 바빴다.

 

- 연극 ‘잘자요, 엄마’의 마지막 장면이 2008년 작품과 조금 다르다고 들었는데.

 

결말이 바뀐 것은 아니다. 막판에 엄마가 매달려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딸이 “잘자요, 엄마”를 말하고 가는 장면은 같다. 다만 2008년에는 연극적으로 멈추는 순간을 잡았다면, 이번엔 조금 더 사실적으로 갔다. 마지막에 딸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엄마가 안간힘을 써서 딸을 붙잡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극적인 포인트를 위해 엄마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약간 현실감이 부족해 터치를 다르게 했다.

 

-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없다. 그냥 함께 나눠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연극 ‘잘자요, 엄마’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관객들은 자신의 부모나 자식과의 관계를 통해 작품을 받아들인다. 내 역할은 작가가 글로 써놓은 걸 무대에서 하나의 세계로 표현해 던져주는 것까지다. 나머지는 모두 관객의 몫이다. 

 

 



최태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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