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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다, 그게 다다”…연극 '나와 할아버지' 배우 오용 인터뷰

배우 오용의 말은 단호하지만 부드럽다.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곧 ‘나는 애매한 사람’이라고 말할 땐 여지없이 선선해 보인다. 마치 ‘와호장룡’(은거한 고수를 이르는 말) 같달까. 때로는 유연한 검이 상대의 허를 더 깊이 찌르는 것처럼, 그는 굳이 경계를 짓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선을 명확히 드러내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조리 있는 말의 매무새 덕에 인터뷰 시간도 덩달아 빨리 흘러갔다. 5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최근 출연 중인 연극 ‘나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나와 할아버지’를 비롯해 드라마 촬영까지 하고 있다. 힘들진 않나

원래 두 작품을 동시에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웃음)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은 5월 25일까지 공연하고,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이제 막 시작했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입으로만 떠들지 몸을 그렇게 많이 쓰는 작품은 아니다.(웃음) 드라마가 겹쳐서 스케줄 조율하는 것이 어려운 것 외에 힘든 건 없다.

-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것이 언제였나

아리랑 소극장에서 김달중 연출님이 하신 ‘거꾸로 가는 리어’라는 작품이었다. 우연히 작품에 합류하게 되면서 1997년도에 처음 데뷔했다.

-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는 연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연극반에서 공연을 하나 했는데 ‘신은 인간의 땅을 떠나라’라는 니체의 작품이었다. 당시 함께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정말 좋았다. 앞으로 ‘연극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된 것 같다. 당시에는 재주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전혀 꿈이 없는 아이였다.(웃음)

- 배우라는 것이 ‘해보자’해서 계속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연극반을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 즐기는 게 정말 좋았다. 노는 듯이 연극을 하는 게 참 좋더라. 사람들끼리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즐거웠다. 원래는 이과였다. 남자는 다 이과를 가길래 쫓아갔다. 성적도 그저 그랬고.(웃음) 연극영화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예체능으로 전과를 했다.

- 현재는 차이무에 적을 두고 있고,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작품에도 함께하고 있다. 두 극단 모두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차이무는 선생님을 따라 가게 된 극단이고, 적을 두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는 (민)준호를 통해서 알게 된 극단이다. 민준호라는 사람을 만나보니 생각이 정말 좋더라. 이 친구랑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못했다. 매번 대본만 보여주고 안 불러주더라. 내가 선배니까 나를 부담스러워 했을 수도 있고.(웃음)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준호가 초고를 썼을 때 먼저 보여줬었다. 서로 앉아서 리딩을 해보는 데 그 때 내 역할이 작가였다. 그때 같이 읽어보고 되게 재미없다고 했다.(일동 웃음) 자기도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 ‘내비게이션 뭐냐’ 그러면서 욕만 했다.

- 마치 극중 나오는 선생님과 준희의 이야기 같다

그 이야기는 정말 이상우 선생님과 준호와의 관계다. 선생님이 술 드시면 머리를 박으신다. 저희한테도 자주 그러시는 편이다. 원래는 머리 박는 장면이 없었는데, 이상우 선생님이 이 장면을 보시고 “난 술 취하면 머리를 박아, 그걸 넣어” 해서 만든 거다.

- 처음에 봤을 때 뭐가 가장 별로였나(웃음)

전체적으로 다.(웃음) 로드무비 같기는 한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아무튼 재미가 없었다. 좀 많이 걷어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몇 년 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독해를 했다고 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남산에서 리딩할 때는 아예 준호한테 연락도 안 왔었다.(웃음) 그러다 어느 날 연락이 와서 같이 하자고 하는데 ‘할아버지’ 역할이라고 하더라. “웃기고 있네. 말이 되냐?”고 했다. (진)선규가 할아버지 역을 했으니까 형님이 하셔도 된다면서. 원래는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준호가 계속 같이 하자고 설득했다.

-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과 ‘나와 할아버지’가 조금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일상의 감동 같은 것을 담아내지 않나. 두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사실 두 인물이 극과 극이다. 생김새는 노인이라 비슷한데 ‘두근두근 내 인생’의 아름이는 몸만 늙은 인물이고, 연극 ‘나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정말 세월을 다 거친 인물이다. 늘 말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나름의 설레는 것이 있고, 아름이는 이 아이 나름대로 설레는 것이 있다. 그 느낌 자체는 똑같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고 하지 않나. 그런 지점이 비슷하다.

- 혹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크게는 없다. 물론 작품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좋아야 한다. 한 명이라도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불편하다. 연극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다. 만남의 연속인 작업이라 서로 맞지 않으면 힘들다. 만약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작품을 연습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해결하는 데 쓰는 시간이 많아진다. 

- 할아버지 역할을 근래에 여럿 맡게 됐다. 연극 ‘반신’부터 ‘두근두근 내 인생’, ‘나와 할아버지’까지. 노인 역을 소화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

어른들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조금 어렵긴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크게 어렵게 느끼진 않았다. 원래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하고, 감성도 늙어있나 보다.(웃음)

- 혹시 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

거의 없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기억나는 건 할아버지가 소죽 끓이시는 모습뿐이다. 그 기억이 가장 크다. 그 외에는 돌아가시기 전에 누워계시던 모습 정도다.

- 연극 ‘나와 할아버지’가 2013년 초연 후 벌써 삼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간 쭉 ‘할아버지’ 역을 소화해 왔다. 매너리즘에 빠질 만도 한데

사실 배우라면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근데 이 작품은 희한하게 매너리즘에 빠지기가 쉽지 않다. 사실 정신이 없다.(웃음)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도 그렇고, 상대도 계속 바뀐다. 혼자 감정을 끌고 가는 역할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연극 ‘나와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가 없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작품들이 유독 ‘말맛’이 좋은 작품들이 많다. 특히, ‘나와 할아버지’는 일상 언어의 재미가 크지 않나. 배우로서 이런 말맛을 살리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솔직히 쉽지 않다. 그런 점들은 연출이 컨트롤해주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배우들이 알아서 맞추기도 한다. 잘 모르는 배우들은 그런 호흡을 주고받기가 어렵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에서 함께하는 친구들은 그런 면에서 잘 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잘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게 만들어준다. 

- 공연하는 사람끼리 서로 많이 믿고 의지하는 것 같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안 된다.(웃음) 나도 믿어야 하고, 상대도 나를 믿어야 한다.

- 할아버지를 연기하면서 민준호 연출이 따로 노트를 준 부분이 있나

꾸준히 준다. 가장 노트를 많이 해주는 부분은 ‘분위기’다. 사실 이 작품은 분위기 싸움이다. 처음 할머니가 병원 갈 때의 그 어색한 분위기, 준희가 녹음을 하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분위기, 할아버지가 혼자 떠들 때의 분위기 등을 서로 잘 만들어줘야 한다. 그 분위기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 이 작품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 준희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사실 뻔 한 작품이다. 그래서 외려 심플하게 가야 한다.

- 연극 ‘나와 할아버지’ 중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면

할아버지가 준희에게 하는 대사 중에 “글 잘 쓰고”라는 말이 있다. 그 말 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이 말은 이미 할아버지가 다 알고 있다는 거다. 준희가 글을 쓰기 위해 녹음을 하고 있는 것까지 말이다. 그 말로 다 끝나는 것 같다.

- 연극 ‘나와 할아버지’가 인생의 한 획을 그어준 작품이라고 들었다

이런 작품들이 10년 주기로 한번 씩 오는 것 같다. 연극 ‘빨간 도깨비’라는 작품이 내게 엄청난 변화를 줬다. 노다 히데끼라는 연출을 처음 만났는데, 공연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연극이라는 게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원래 나는 잘 울지 않고, 굉장히 객관적인 사람이다. 그런 면들이 그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를 할 때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공연을 하면서 굳이 만들어 내는 울음이 아니라, 그냥 그런 슬픔들이 차오를 때가 있더라. 역시 좋은 작품들은 사람이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준 연극이다.

- 오용 배우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그냥 가도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작품. 미장센이 좋고 구성이 좋고를 떠나서 나를 움직이고,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옛날에는 하고 싶은 역할들이 있었다. 막 소리 지르고, 막 안에서 뿜어내고 그런 작품들.(웃음) 요즘 들어서는 그런 생각들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작품들이 좋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의 느낌을 받고 싶다. 억지로 만들어 내는 느낌이 아닌,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 있다. 사실 어떤 역할이든 다 비슷하다. 극과 극은 통하니까.

- ‘의미가 없다’, ‘다 똑같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모든 건 다 똑같다.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웃음) 성격은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다. 사실 밝으려고 노력한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인 편인데, 어딘가 애매하다.(웃음) 사람이 한 모습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어떤 사람이나 이중적이다.

- 꾸준히 작품을 해왔다. 긴 시간 동안에 배우로서 느껴온 감정도 서서히 변화를 겪었을 것 같다. 요즘 자신이 느끼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이 있나

딸이 어제 종이 하나를 갖다 줬다. 동네의 아는 언니가 배우에 관해 설문지를 작성 해달라고 준 모양이더라. 지금과 비슷한 질문이 설문지에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정말 좋은 배우는 내가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잘하고 못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상대방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연기와 작품은 정말 많이 달라진다. 이상우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이 있다. ‘연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두 사람이 가만히 서 있다고 연극이 되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 뭔가 발생해야 연극이 된다고 하셨다. 그걸 정말 잘하려면 함께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이야기 속의 모든 갈등도 관계 맺음에서 생기지 않나. 그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연극이다. 정말 좋은 연극배우는 그것을 알고 있고, 해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연극에서 체감한 것들이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편인가

 

배우는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직업이다. ‘이렇게 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서인지 남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배우 생활 오래하면 거의 반무당이 된다고 하지 않나.(웃음) 연기를 하면서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그것들이 상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 되도록 배려하려고 하는 편이다. 서로를 믿고, 서로를 배려해 주는 게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 연극을 하면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소신 같은 것이 있나

‘가짜’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느낀 만큼만 움직이고, 생각하고, 보여주려고 한다. 그 이상을 보여주려고 하면 자꾸 가짜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연극 ‘나와 할아버지’에도 그런 대사가 있다. “진짜로 해야지. 왜 가짜로 하냐.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어 보이려고 하면 안 된다.”(웃음) 맞는 말 같다. 과장해서 하다보면 서로 힘들어지고 망가진다.

사실 코미디는 사람을 웃기기만 하는 장르가 아니다. 정말 좋은 코미디는 정말 진지해야 하고, 그 안에서 굉장히 절실해야 한다. 그래야 바깥에서 그 상황을 봤을 때 웃음이 나온다. 자꾸 상대를 웃기려고만 하면 ‘가짜’가 되어버린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는 상황들은 정말 진짜 같고 안타깝지 않나. 그런데 웃음이 난다. 그게 진짜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 왜 배우라는 직업이 왜 있는 것 같나.

 

아, 어렵다.(웃음) 나의 경험을 보면, 우리 와이프가 종종 그런 말을 한다. “당신은 배우 안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라고. 내가 배우를 하면서 가슴에 막혀 있던 것들을 뚫어버린 다더라. 아내가 심리학 쪽을 하고 있는데, 외려 밝은 척 하는 사람들이 다 담아두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말을 한다. 나는 배우를 하면서 풀어내기 때문에 또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받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배우가 필요한 이유는 ‘치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누군가가 오늘 당장 죽으려고 공연을 하나 봤는데, 마음이 정화돼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내가 보람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거지 않나. 요즘 음악을 많이 듣는데, 노래라는 것이 정말 좋은 것 같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감정을 쥐고 흔든다. 우리가 아무리 1시간 반을 난리를 쳐도 전혀 안 움직일 때가 있는데.(웃음) 음악이나 연극이나 사람들한테 움직임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 싶다.

-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연기자로 살아가고 싶나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게 다다. 무대 위에서건, 아래에서건 모두 다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기도 짧은 삶이지 않나. 어차피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그 시간동안 인상 쓰고 해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스토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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