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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에게묻다] “창작뮤지컬 미래, 콘텐츠에 달렸다” 왕용범 연출 ③

공연장은 크게 객석과 무대로 구성된다. 객석과 무대는 그 안에서 철저하게 분리된다. 경계는 종종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날카롭게 선을 그어 자기 영역 표시를 확실히 한다. 잘 차려진 공연은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관객은 작품에 관심을 갖고, 관심은 때때로 호기심을 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둔 무대와 객석만큼 관객도 공연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수북이 쌓인 ‘궁금증’은 닿을 수 없어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왕용범 연출에게 물었다. 그동안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던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중 가장 반짝이던 질문을 추리고 추려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밀접하게 관계 맺으며 생생하게 전해졌다.

 

오디션, 필요한 것은 자기 연마의 시간

연출은 오디션을 볼 때 무엇을 중점적으로 볼까. 왕용범 연출은 “가장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번에 답했다. 오디션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작품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구축된다. ‘이 작품 속, 그 캐릭터는 이런 모습이다’라는 이미지가 또렷하게 그려진다. 종종 예외도 발생한다.

“때로는 오디션에 의해 확실했던 캐릭터가 깨지기도 한다. 어떤 배우가 자신이 구축한 또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할 때 고정관념은 무너진다. 배우들은 오디션을 볼 때 심사위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심사위원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면 관객의 마음도 결코 흔들 수 없다.”

그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배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인터뷰 내내 왕용범 연출은 무대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마음은 무심코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진심은 대답 곳곳에서 묻어났다. 그가 전한 오디션 노하우는 장황하지 않고 간단했다. 그럼에도 분명 도움이 될 만큼 현실적이었다. 오랜 시간 고민해온 ‘돕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현실과 맞닿았다.

“충분한 기술을 가졌을 때 오디션을 봤으면 한다. 충분한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오디션을 보면 ‘실력도 없는데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라는 선입견만 만들게 된다. 보면 딱 티가 난다. 물론 실력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 늘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도 함께 쌓인다. 우리나라에는 뮤지컬 심사위원이 몇 명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 좋은 선입견을 만들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디션은 실력을 쌓은 후 봐야 한다. 그래야 결과도 좋다.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는 좌절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시는 그 심사위원에게 오디션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은 접는 것이 바람직하다. 왕용범 연출은 “오디션 때 절대 능력자를 뽑는 것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오디션으로 뽑을 사람은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는 배우 한지상을 예로 들며 오디션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배우 한지상이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분명 노래는 잘했지만 빛이 나지 않았다. 캐스팅할 수 없었다. 이후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로 다시 만났다. 그때는 빛이 작게나마 보였다. 이제 막 빛이 나기 시작할 때였다. 그 빛을 보고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 캐스팅했다. 한지상이 완벽해서 캐스팅한 것은 아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작업을 같이 하면서 그 빛이 점점 커졌다. 이런 것이 서로 윈-윈하는 경우다. 그 빛은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생길 수 없다.”

배우가 가지고 있는 ‘빛’은 칼에 비유된다. 제아무리 좋은 칼도 빛을 내기 위해서는 계속 갈아야 한다. 빛이 난다고 모두 좋은 칼이 아니고, 빛이 나지 않는다고 나쁜 칼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자세다. 갉고 닦은 시간만큼 칼은 눈부신 빛을 뿜어낸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자신을 연마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가져야 한다.

아이돌,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기자리 찾기

왕용범 연출은 유독 아이돌과 인연이 깊다. 그가 연출을 맡은 작품 중 상당수가 아이돌 캐스팅으로 주목을 받았다. 뮤지컬 ‘삼총사’에는 샤이니의 키와 제국의 아이들의 박형식이 출연했다. 이어 공연된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에는 비스트의 장현승까지 합류해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했다. 한창 연습으로 바쁜 뮤지컬 ‘올슉업’에는 아이돌이 대거 출연한다. 아이돌 캐스팅에 대해 왕용범 연출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일단 그 작품과 잘 맞는 아이돌의 캐스팅은 괜찮다고 생각한다”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뮤지컬 ‘올슉업’은 아이돌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록앤롤 캐릭터를 그만큼 소화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는 없다. 뮤지컬배우들은 클래식한 느낌이 강해 록앤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것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캐스팅이다.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이 진행되면 정말 힘들다. 제가 연출한 작품 중에도 그런 경우가 몇 있었다.”

고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작을 맡은 컴퍼니는 으레 그래 왔던 것처럼 아이돌 캐스팅을 진행한다. 그렇게 해야 투자가 이뤄지는 풍토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만 그것을 반대할 수는 없다. 왕용범 연출은 “반대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실제로 공연이 진행되면 스타 캐스팅, 아이돌 캐스팅에 따라 객석 수 차이는 상당하다.

“아이돌도 배우의 일부라 생각한다. 아이돌이라고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력을 갖춘 아이돌이 더 많다. 아이돌은 준비된 스타다. 그들만큼 그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신인 배우가 있을까? 없다. 단지 바라는 것은 그들이 그들과 어울리는 작품을 만나 잘 성장하는 것이다.”

그는 잘 성장한 사례로 슈퍼주니어의 ‘규현’을 꼽았다. 왕용범 연출은 “규현은 뮤지컬 ‘삼총사’에서 처음 만났다. 촌뜨기 ‘달타냥’ 역에 잘 어울렸다. 이후에는 자신에게 맞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역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만큼 음악적인 실력도 갖췄다. 그에게 조언하는 것은 ‘연기적인 깊이감’이다. 이제 그런 것에도 도전할 만큼의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어 종종 이야기를 꺼낸다”라고 밝혔다.

 

창작뮤지컬 지원, 양질의 콘텐츠가 우선

창작뮤지컬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투자도 지원도 어느 것 하나 넉넉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건만 유독 올해 더 힘들어하는 분위기다. 창작뮤지컬의 지원 방법은 무엇일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간다. 대안이 나오기는 하지만 ‘옳다구나’ 할 만큼은 아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제작할 때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아무도 손을 뻗어 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그때 깨달았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제도적인 지원이 아니다.”

그의 지적은 따끔했다. 왕용범 연출은 “일단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저 역시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의 경쟁상대가 누구인지 똑바로 볼 것을 당부했다. 한국뮤지컬은 세계적인 작품과 경쟁해야 한다. 그 경쟁은 치열한 혈투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가히 최고라 손꼽히는 작품들과의 맞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강자만큼 강해져야 한다. 그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대안을 제시했다.

“결국에는 작가가 작품을 잘 쓰는 수밖에 없다. 잘 쓰기 위해서는 대극장을 자주 경험해야 한다. 대극장 시스템을 경험하지 않고 대극장 작품을 잘 쓰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후 온전히 마침표를 찍는다면 상관없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연은 작가의 손을 떠난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본격적인 시작은 그때부터다. 공연을 올리는 것은 함께 일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뭐가 됐든 그 안에서 경험하고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한둘이 아니다. 왕용범 연출은 보조 작가 공고를 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청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협력 작가 공고를 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많은 작가들이 그냥 방 안에서 쓰기만 한다. 필요 때문에 공고를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가 가진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공고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왕용범 연출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올 것을 부탁했다. 창작 고통은 치열하게 싸울 때 그 빛을 제대로 발휘한다. 물론 제도의 변화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쪽만 강한 의지를 보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는 ‘부의 분배’가 올바르게 이뤄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가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영화 작가가 많이 생겼다. 드라마가 잘 나갈 때는 드라마 작가로 젊은이들이 몰렸다. 정확한 부의 분배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들이 좋은 글을 쓰고, 관객의 호응을 받으면 그에 따라 로열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서 미흡하다. 드라마 작가처럼 부와 명성을 두루 갖춘 작가가 탄생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제2의 김수현을 꿈꾸듯이 뮤지컬 작가 중에도 부자가 나와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상징’이다. ‘부’ 자체가 목적이 되서는 안 된다. 뮤지컬 작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일이 할만한 일이구나’, ‘내가 이 일을 하면 긍지를 느낄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례가 만들어져야 한다.”

도전, 기회 없다고 탓하지 말자

왕용범 연출은 하루에도 수통의 메일을 받는다. 그 속에는 연출을 꿈꾸고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의 치열한 사연들이 가득하다. 그는 이들의 열정을 높이 평가한다. 도와줄 수 있다면 한껏 손을 뻗어 그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하려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누구도 세상에 없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잘 썼다고 생각하면 유명한 창작자를 찾아가 보여줘야 한다. 왜 기회를 만들지 않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육기관과 전문 아카데미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인스턴트식인 것 같다. 2시간 상담받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거라 믿는다”라며 질책했다. 한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몇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단지 몇 시간, 몇 개월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절대 누가 대신 만들어 주지 않는다. 쉽게 얻은 기회는 빼앗아 가는 것이 더 많다. 자기의 길은 스스로 찾아갔으면 한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 정성에 감동해 같이 일하는 친구도 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현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그 친구들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또 다른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공연계에는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신인과 흥행 작가가 혼재해 있다. 신인은 흥행 작가를 바라보며 그들과 닮기를 희망한다. 왕용범 연출은 “그들은 괜히 흥행 작가, 스타 작가가 된 것이 아니다”라며 의견을 피력했다. 사람들은 왜 저들에게만 기회를 주고 자신에게는 동등한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불만을 터트린다. 그는 이에 대해 “바보 같은 짓이다. 자신은 그 사람만큼 투자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제론 대부분 그렇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왕용범은 어떤 각오로 임해야 하는지 찬찬히 되짚으며 방향을 제시했다.

“수업에 나가면 ‘뮤지컬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만큼 쉬운 일이다. 하지만 뮤지컬을 잘 만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쉬운 일이라 생각한다.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쉽게 망각한다. 그 차이를 알았으면 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들은 많다. 그들은 자신이 조승우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왜 자신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 출연할 수 없느냐며 되묻는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따지기 바쁘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이 이상하고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며 의심하려 든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시스템을 의심하기보다는 냉철하게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차이가 무엇인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백초현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왕용범프로덕션/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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