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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에게묻다] “연출, 전부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왕용범 연출 ①왕용범 연출 인터뷰 첫번째 연재

‘연출’의 사전적 의미는 각본을 바탕으로 배우의 연기, 무대 장치, 의상, 조명, 분장 등 여러 부분을 종합적으로 지도해 작품을 완성하는 일 또는 그런 일을 맡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전부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고 정의한다. 바로 뮤지컬 ‘삼총사’, ‘잭더리퍼’ 등을 선보인 왕용범 연출이다.

그는 1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출의 길을 걸어왔다. 그 시간 동안 왕용범 연출은 다양한 작품과 만났다.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은 관객에게 다양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에게 연출은 ‘작품을 책임지는 사람’에 가깝다. 그러기에 그는 한시도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고 쉼 없이 노력해야 했다. 연출의 무게를 이겨낸 그와 함께 ‘연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자연스러운 이끌림, 운명적으로 만나다

‘왕용범’ 이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뮤지컬 ‘삼총사’,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한 번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떠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의 곁을 찾는다. 왕용범 연출의 손때가 정겹게 묻어 있는 작품은 이제 그의 이름을 대신한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연출이지만 그에게도 연출을 꿈꾸던 ‘풋풋한’ 시절이 존재한다. 처음 ‘연출’을 꿈꿨던 시절로 돌아가 질문을 던졌다. 언제 처음 연출을 꿈꿨을까.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연극을 했다. 당시 공연에 재미를 들여 연출을 꿈꿨다. 더 하고 싶어 반년 동안 각색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처음으로 연출가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성경에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라는 것이 있다. 안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만이 30배 나아가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많으니 좋은 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마음을 좋은 땅으로 일구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어 연극을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땅 깊숙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 번 뿌리 내린 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비·바람을 이겨내며 무럭무럭 자란다. 그에게도 그런 뿌리 내릴 토양과 성장의 힘이 필요했다. 왕용범 연출은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그는 자기 확신을 가지려 부단히 애를 썼다.

“1995년도에 오태석 선생님이 연출한 연극 ‘백마강 달밤에’를 봤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때 저는 대학에 들어가 연극이라는 것을 공부하면서 회의감에 젖어 있었다. ‘연극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무엇이 나은 걸까’, ‘어떤 가치가 있을까’ 등을 많이 고민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무대가 가진 힘을 알게 됐다. 무대가 전해줄 수 있는 감동을 깨달았다. 무대의 자유로움을 제대로 느꼈다.”

오태석 연출은 좋은 땅을 찾을 수 있게 밝은 빛을 내려줬다. 완벽하게 뿌리내린 나무는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그를 성장시킨 영양분은 오태석 연출에게 받은 감동과 고전이었다. 왕용범 연출은 “브레히트 작품은 미국식 뮤지컬의 원형에 가까웠다. 셰익스피어는 그 자체가 뮤지컬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두 작가와의 조우는 지금의 왕용범에게 큰 힘이 됐고, 그를 뮤지컬 연출의 세계로 인도했다.

몸에 익은 책임감, 옹골차게 여물다

고난은 예고 없이 시시때때로 불시착한다. 갑자기 찾아온 고난은 우려와 달리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슬럼프는 왕용범 연출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만큼 그는 자기방어가 철저하다. 그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고민이라면 어떻게든 글을 써서 끝내는 것이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글을 다 쓰기 전까지는 그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는 지론이다.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예술은 언제나 힘들다. 항상 행복하고 늘 잘 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연출 세계에 몸을 담으며 그가 터득한 지혜다. 고통은 끝나야 없어지며 누구도 중간에 그 고통을 위로해줄 수 없다.

왕용범 연출은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그 철학을 거울 삼아 작품을 선택한다. ‘감동’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그만의 키워드다. 작더라도 감동이 있으면 그 작품은 어김없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감동’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그중 어떤 감동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지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재미있게 웃다 보면 ‘감동’이 되고 슬픔도 감동이 된다. 눈물로 고난을 극복하면 그 순간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는 감동의 이러한 속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15년 동안 작품을 하며 느낀 것은 감동이 크면 관객들이 훨씬 좋아하고 많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은 감동이라고 가치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무대라는 새로운 인생을 만난다. 그 속에서 자신과 다른 모습을 보기를 원하고 그것을 통해 일상생활의 환기를 기대한다.”

‘감동’을 놓지 않으려는 고집은 때로는 고민을 부추긴다. 그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세상은 너도나도 ‘감동’ 코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새로운 감동은 어디로 숨었는지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감동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골몰한다. 앉으나 서나 ‘이 작품만의 매력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되묻는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그는 자신에게서 고민의 열쇠를 발견한다.

“일단은 제가 느낀 감정을 작품 안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연출은 작품 안에 제 영혼을 넣는 작업이다. 제가 작품 안에서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면 관객도 공연을 보는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럼 거짓된 공연이 된다.”

나만의 연출 스타일, 고민은 현재진행형

내가 받은 감동을 다른 이도 공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상대방과 공감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때로는 어떠한 문제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왕용범 연출은 그래서 더 바삐 움직인다. 많이 생각하고 더 오랜 시간 고민한다. 소통은 트렌드다. 그렇기에 연출은 트렌드를 쫓지 못하면 도태된다. 관객과의 소통은 단절되고 공감은 몰이해로 이어진다.

“어느 정도 대중적인 연출이 되어 이제는 흥행 연출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부분에서 그동안 게으르지 않았구나 싶다. 요즘은 너무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다. 한가지 색을 가진 연출이 되어야 하나 싶어 생각이 복잡하다.”

감동을 나누고자 한마음은 뚝심 있던 그를 세차게 흔든다. 왕용범 연출은 자신의 연출 스타일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으려 한다. 그 답을 찾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날도 늘어간다. 고민의 답은 없다. 자신이 맞다 생각하면 그것이 답이다. 그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고민할 것이다. 그가 연출하는 동안 그 답은 물음표로 남아 그를 채찍질한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작품’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작품을 맡게 되면 그 작품에 제가 가진 색깔을 섞는다. 요즘은 너무 다른 색을 가진 작품을 맡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연출도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된다. 불안한 것은 근래 들어 이런 고민이 늘고, 그러한 작품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그는 모든 작품이 소중해 늘 최선을 다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작품에 책임을 지고 그 작품에 애정을 쏟는다. 애정으로 빚은 공연은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부모에게 사랑받은 아이가 밖에서도 사랑을 받듯이 사랑받는 작품을 선보이려 노력한다. 그만큼 애정을 다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이후에는 무겁지 않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런 작품이 들어올 때마다 사양하지 않고 함께했다. 이번에 준비 중인 뮤지컬 ‘올슉업’도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밝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했으니 내년부터는 작품이 다시 무거워질 것 같다.”

연출이란, 책임질 줄 아는 사람

그의 연출 인생 중 최대의 고비는 언제였을까. 왕용범 연출은 “늘, 지금이 고비다”라고 답했다. 이번에 올리는 작품이 실패하면 연출에게 다음은 없다. 음악, 조명 등은 각자의 소임을 잘하면 되지만 연출은 다르다. 전체를 조율하는 사람이기에 그에게 만큼은 엄격한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작품이 실패하면 다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이유다.

“성공은 크게 작품성과 흥행성으로 판가름된다. 요즘에는 작품성이 있어도 흥행을 못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반대로 작품성이 없으면 절대로 흥행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정서상 마냥 웃긴 공연은 흥행에 실패한다. 지금의 관객들이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관객의 고민을 함께하는 작품이 사랑을 많이 받는다. 그런 작품이 흥행에도 성공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연출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전부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로 돌아왔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연출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의 마음은 진실 됐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업계의 책임감을 견뎌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연출이 되는 것 같다. 연출이 되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희생하라 말하고 싶다. 내가 희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욕심만 부리는 연출은 모든 것을 잃는다. 희생하고 자기를 깎아내리는 리더십이 있을 때 비로소 전체를 지휘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다.”

백초현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충무아트홀, 왕용범프러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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