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슈만탄생 200주년을 맞는 해다. 국내 여기저기에서 위대한 작곡가 슈만을 기리는 다양한 연주 활동이 활발하다. 금호아트홀은 슈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슈만특집’을 선보인다. 19세기 낭만주의를 꽃피운 슈만의 피아노 소품, 바이올린 소나타, 실내악, 가곡에 이르는 주요 작품을 연주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성주, 한동일, 김정은, 김규연, 김석철, 트리오 탈리아, TIMF앙상블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뭉쳤다. 그들이 들려주는 슈만의 삶과 음악은 그 동안 날 것 그대로의 연주에 목말라했던 관객들에겐 안성맞춤의 공연이 될 것이다.

이번 무대에서 ‘카니발’과 ‘크레이슬레리아나’ 등을 연주할 피아니스트 김정은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슈만의 음악을 보다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풀어내고 싶다”고 밝혔다. 오랜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된 상황이었지만 연주활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활동을 병행하느라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 고독하고 치열했던 슈만의 일생

금호아트홀의 ‘슈만특집’은 그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작품 수가 많은 피아노 독주곡과 가곡이 위주로 선곡됐다. 특히 그의 가곡은 슈베르트가 개척한 리트 형식을 계승하고 시와 음악을 결합시켜 보다 예술성이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정은은 슈만에 대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작곡가예요. 그의 음악은 문학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음악신보라는 잡지에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글도 많이 기고를 했어요. 슈만처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이나 심리, 갈등, 고뇌 등을 잘 파헤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슈만은 평소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의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교향적 연습곡’, ‘카니발’ 등은 사랑에 빠진 여인 클라라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이다. 그는 지나친 피아노 연습으로 손가락에 부상을 입자 피아니스트의 꿈을 단념하고 작곡과 평론에 집중한다. 김정은은 “슈만은 평소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많이 썼다고 알려졌어요.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이라는 두 별명을 통해 대비되는 성격을 표현하기도 했죠. 지고지순함과 순수함을 오이제비우스라고 한다면 반대로 공격적이고 악마적인 성격을 플로레스탄이라고 지칭을 했어요. 곡을 쓴 다음에 ‘F.’ 혹은 ‘E.’이라고 표현해 암시하기도 했죠”라고 전했다.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은 슈만이 갖고 있는 두 개의 내적 자아를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변덕스러운 이중성을 음악을 통해 표현했다.

1836년 어머니를 잃은 슈만은 클라라에 대한 친밀감이 더욱 강렬해진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한 슈만은 거의 피아노곡만 써왔던 작품 활동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이 해 갑자기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슈만은 평생 작곡한 2백 50여 개의 가곡 중 반수를 이 1년 동안에 내놓는다. 김정은은 “슈만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저도 몰랐는데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가족 중에 정신 병력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슈만도 정신병에 조울증을 앓고 있었던 터라 감정의 추이가 너무 급격하게 일어나요. 그런 변화를 한 무대 안에서 표현한다는 게 어렵죠”라며 털어놨다.

음악 작품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바흐는 감정과 이성이균형적이며 절제를 이루는 반면 슈만은 인간의 모순, 고뇌하는 내면 자체를 던져놓은 듯하다. 피아니스트 김정은은 “슈만의 그런 인간적인 면에 끌려요. 슈만의 멜로디는 친숙하지 않죠. 수많은 공연에서 연주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치면서 갑자기 ‘뭐였지?’ 생각할 때가 있어요. 항상 새롭고 독특하고 잘돼있지 않지만 낯설고 끊임없이 샘솟는 신선함이 매력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무대에서 슈만의 ‘카니발’과 ‘크레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한다. “두 곡은 모두 슈만의 대표 레퍼토리에요. ‘크라이슬레이아나’는 호프만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이기도 해요. 3부 형식을 지닌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이죠. 곡 안에서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를 연상시키는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켜요.” ‘카니발’은 슈만이 1835년 사순절 기간 중 마스크를 쓰고 흥청거리는 사람들의 모양을 그린 피아노 소품이다. 21곡이 묶여 있는 이 작품은 네 음을 모티브로 한 독특하고 흥미로운 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생애를 연주하는 김정은

대범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피아니스트로 정평이 나있는 김정은은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카를스루에 국립음대에서 석사 및 최고연주자 과정,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음악원 독주 및 실내악 콩세르티스트 과정을 마쳤다. 그녀는 “유럽음악을 접하다 보니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어요. 있다 보니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욕심도 생겨서 오랫동안 외국 유학생활을 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저의 음악관이나 세계관이 어느 곳을 가도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았어요. 어느 정도 구축이 됐다, 변하고 발전은 있겠지만 어디서 음악을 해도 제 연주는 마찬가지라고 하는 제 주관이 뚜렷해지면서 고국으로 들어가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녀는 귀국하자마자 이화여대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연주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나 에너지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하니까요. 시간을 배분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효율적으로 잘 분배해서 둘 다 잘 이끌어갈 수 있게 해야죠.”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하는 바쁜 스케줄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다.

김정은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스스로를 ‘교수’이기 이전에 같은 길을 먼저 걸어 간 선배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새기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선배로서 어떤 도움을 주고 싶어요. 지식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사고하는 법,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법을 심어주고 싶어요. 혼자서 독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입시라는 게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입시가 지나도 인생은 항상 시험의 연속이에요. 입시가 아닌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고 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학교를 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에요. 그런 자세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귀띔했다.

김정은은 마지막으로 금호아트홀 ‘슈만특집’을 보러 오시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 인사를 남겼다. “제가 실내악을 연주하면서 느낀 것은 자칫 잘못하면 피아노랑 나랑 둘이 대화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여러 사람과 교감한다는 걸 잊은 거죠. 결국은 청중들과의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매개체가 되고 작곡자가 써놓은 걸 제가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중간자인 셈이죠. 그러려면 결국 작곡자가 뭘 원했는지를 잘 찾고 느끼도록 제가 노력해야 해요. 이번 공연을 통해 조금 낯설 수 있는 슈만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전달받고 가시는 공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정은이 연주하는 ‘슈만특집’은 7월 22일 금호아트홀에서 공연된다.

(* 이 글은 삼호뮤직 7월호에 실린 글임)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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