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쓰릴미는 진화하는 공연’ 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이번 시즌 ‘쓰릴미’의 진화는 무엇인가요?

“작년에는 실제 인물들이 19살 소년들이었단 점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번에는 이들의 삶의 깊이를 좀 더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연령대를 높여서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바꿔봤습니다. 지난 공연에서 좋았던 것들을 가지고 오고 거기에 새로이 발견한 것들을 덧입혀간다는 의미에서 진화라는 단어를 썼어요. ‘쓰릴미’는 아주 많은 싸움을 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제 자신과, 배우들과, 관객과도요.(웃음) 이전하고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번엔 제 생각을 배우들에게 너무 강요했던 데 아닌가, 과연 배우들은 주어진 틀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생각과 해석을 더 많이 녹여내 보려고 했습니다. 정말 잘해 보고 싶었어요.”

- 무대의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피아노가 무대 위 세트로 올려지고, 배심원석이 생겼어요.

“이러한 시도는 이번 작품만이 아니라 작년 ‘청이야기’도 그렇고 더 이전에 ‘갈매기’에서도 했던 작업들이에요. 저는 특히 소극장에서 프로시니엄(proscenium: 무대와 관객 사이를 구분하는 아치)은 방해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소극장에서는 관객과 배우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공간 안에서 벽을 치고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말하는 공간 안에 연기자들이 들어와서 함께 호흡하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소극장 공연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작년까지는 프로시니엄을 지켜야만 했었기 때문에 그런 재미가 덜했죠. 무대와 객석의 벽을 허무는 것이 제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부분인데 ‘뮤지컬 해븐’에서 고맙게도 이번에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열어주셨어요. 처음에 무대 디자인을 할 때는 객석 전체를 무대 양 옆에 놓는 방향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기차역 플랫폼처럼요. 그런데 극장의 공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있어서 관객들을 무대 위에 배심원으로 올리고 그들과 배우들이 공유하게 하자 싶었습니다. 관객은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의 목격자로 존재하는 겁니다.”

- 피아노의 경우는요? 피아노가 무대 위로 올라가 배우들을 내려다보는 형태인데요.

“일단 작년에 피아노를 객석 앞으로 옮겼더니 몇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첫번째는 오른쪽 객석에 시야 장애가 발생했고 음향 밸런스가 좀 문제가 됐었어요. 피아노를 올리는 것 가지고 여러 의견들이 있었는데, 소리와 시각적인 밸런스상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봤습니다. 또, ‘쓰릴미’의 피아노는 제 3의 배우입니다. ‘나’와 ‘그’, ‘피아노’ 이렇게 3명의 배우들이 무대 위에 고르게 분포가 돼 있어서 같이 지켜볼 수 있게 하고 싶었고요. 피아노가 위에 있는 것이 ‘나’와 ‘그’의 템포를 리드해가는 데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자도 하나의 배우로서 3개의 구심점을 가지고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 ‘쓰릴미’ 무대 위에는 ‘나’와 ‘그’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니아들이 많습니다.

“네, 누군가는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저주할 겁니다.”

- 사실 지난 시즌 소년 버전의 '쓰릴미‘도 호불호가 좀 나뉘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만들 때 관객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정확한 것이 먼저라고요. 그 확신을 지키며 나아가야지, ‘혹시 이것이 관객에게 불편하지 않을까? 이것이 가능할까?’ 라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작품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요. 그건 만드는 사람들에게 독약입니다. ‘쓰릴미’는 특히나 더 야단을 많이 맞을 수 있는 공연인데요. 하지만 제 안에 확신이 있고, 같이 하는 스텝, 배우들과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확신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보여준다면 관객들도 수용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 인물의 심리와 결말에 대해 해석의 폭이 무궁무진했던 시즌 1,2에 비해 지난 시즌은 일정한 틀 내에서 상상의 여지를 줬던 것 같아요. 이번엔 어떻습니까?

“저더러 설명적이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요. 기본적인 텍스트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답은 텍스트에 있으니까요. 물론 보시는 분들의 몫까지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번에는 ‘나’와 ‘그’가 어떤 목적으로 만나고 있는가. 어느 지점에서 힘의 균형이 변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만들고 있어요. 최대한 설명적이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말씀하셨듯이 ‘쓰릴미’의 핵심은 두 인물의 팽팽한 심리전에 있죠. 이번 시즌을 아우르는 ‘쓰릴미’의 정서는 무엇인가요?

“‘치밀함’입니다. 서로의 계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큰 소리로 왕왕거리며 싸우기보다 한마디 한마디에 가치를 두고 나아갔으면 해요. 작년에는 버럭대며 싸우고 액션도 크고 그랬었는데 소년 버전에서는 그게 어울렸어요. 하지만 이번 청년 버전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부딪힘은 좀 아끼고 서로의 생각들이 어떻게 상대에게 다가서고 거기에 반응하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배우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역대 최다 출연자예요. 8명, 4팀이나 되요.

“저는 ‘쇼는 같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블 캐스팅이라도 모든 동선과 디테일을 똑같이 갔는데 이번에는 4팀의 느낌이 워낙 다르다보니 같은 디테일로 4팀을 만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험이 시작됐죠. 예를 들어서 이번에 제가 김무열, 최재웅, 김재범, 조강현을 만났다면 똑같이 갔을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최지호, 최수형. 또 아주 어린 김하늘, 지창욱이 끼니까 어디에 레벨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그들의 수준과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밸런스를 하나로 맞춘다는 게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큰 큐는 맞추되 작은 것들은 다르게 해서 배우들 각각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그래서 팀별로 큐에 영향을 주지 않는 동선, 대사들을 달리 했는데 지난 시즌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죠. 이건 저도 처음 해보는 건데 굉장히 재밌지만 또 힘들더라고요. 완전히 다른 공연을 볼 수 있어서 관객 분들에겐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각 페어별로 확정돼서 만들어진 것은 끝까지 지켜갈 겁니다.”

- 새로운 얼굴이 가장 많은 시즌입니다. 특히 최지호, 조강현, 지창욱 씨 등 무대 경험이 적은 배우들이 많은데 이들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셨나요?

“날 것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어설픔이 아닌 해석의 신선함 말입니다. 이율 씨가 이 작품 초연으로 데뷔를 했는데 노련한 배우였으면 리처드를 그렇게 근사하게 하지 못했을 거라고 봐요.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배우 분들은 자신의 장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 장점에 캐릭터가 녹아들게 되는데 그러면 그 배우도 아닌 것이 인물도 아닌 것이 애매한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최지호, 조강현, 지창욱 씨 같은 경우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고 연기 경험이 적기 때문에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고 빠릅니다. 경험은 적으나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로서 아주 솔직하고 정확한 연기들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 그렇다면 노련미 넘치는 원조 커플, 최재웅·김무열 씨는 어뗳습니까?

“이 분들하고 연습을 하면 다른 분들보다 시간이 배로 걸려요. 생각이 다른 것이 굉장히 많고 그것들을 맞춰가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최재웅 씨는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거든요. 10년 만에 처음 작품을 같이 하는데 굉장히 사적으로 친하고 좋아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쓰릴미’ 안에서 만날 때는 되게 어려워요. 저는 걔가 배우로서 어렵고, 걔도 연출로서 저를 어려워해요. 왜냐면 그동안 스타일이 너무 다르게 성장해왔기 때문이죠. 사적인 얘기지만 재웅이나 무열이를 보면 좋은 배우로 잘 자라서 아주 기분이 좋아요. 이번에 텍스트 분석할 때도 제가 못 봤던 것들을 알려주고 제안한 것들이 많고요. 설득력이 있어서 채택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잘 성장해 줬어요.”

- 지난 시즌에 ‘그’의 언더스터디로 데뷔했던 김하늘 씨가 이번에는 ‘나’로 출연하죠.

“재능이 있고 장점이 많은 아이예요. 배우로서 하나하나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늘이는 ‘나’를 해도 좋고 ‘그’를 해도 좋은데 상대역인 지창욱 씨에 비하면 ‘나’가 어울리죠. 또 가능하면 하늘이가 좀 더 깊이 있게 인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만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보다 지금 역할에 어울린다고 느껴지고요. 본인도 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공연 기간이 6개월이에요. 장기 공연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공연이 변질되는 것이에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쇼는 같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서울에서 쇼를 본 사람이나 내일 부산에서 볼 사람이나 똑같은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최종 리허설이 가장 정확한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배우들이 무대에서 약속되지 않은 애드립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공연 기간에 모니터링을 자주 하죠. 장기 공연을 하면서 배우들이 익숙해지면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8월 정도에 팀을 섞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물을 만나보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쓰릴미를 사랑하는 관객 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저희보다 작품을 더 많이 공부해주시고 호흡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무척 재밌고 즐겁게 생각해요. 다만 단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연출은, 저 배우는 이 공연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왜 그렇지?’하는 의심까지는 좋지만 ‘그건 아닙니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은 작품 자체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요. ‘세상에 사실은 있는데 진실은 없다’라고요. 어떤 일의 팩트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저마다 다르거든요.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걸 틀렸다고 할 수 없고요. 배우들과 저도 이야기할 때 ‘그건 아니야’ 하고 말하진 않습니다. 서로의 세계관을 인정하고 존중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