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독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무용단 감독
매년 여름 한국의 무용가들이 춤공연과 수업을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세계 혹은 유럽 초연인 수 많은 공연들과 170여가지의 워크샵들이 열리는 이 축제의 정확한 명칭은 임펄스탄츠-비엔나 국제 무용제(ImPulsTanz - Vienn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이다. 이 페스티벌은 1984년 문화기획자인 칼 레젠부르거(Karl Regenburger)와 무용가 이스마엘 이보(Ismael Ivo)가 오스트리아 현대 무용을 위해 만든 축제로, 현재 세계 무용 축제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축제를 만들고 5회 때까지 예술감독을 맡았던 무용가 이스마엘 이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진보적 춤행로에서 그가 브라질출신의 무용가라는 것은 좀 특이한 배경이다. 아직까지 미국이 아닌 다른 대륙의 흑인 무용가가 세계 무용계에 앞장서있던 적은 없었으니까. 2003 영국 최고의 무용가상을 수상한 이즈마엘 이보는 상파울로에서 연기와 무용을 공부했으며, 1981년, 82년에는 '최고 솔로 무용가'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83년 뉴욕으로 건너가 ‘엘빈 에일리 댄스 센터 Alvin Ailey Dance Centre'의 멤버가 되었고, 1985년 부터 1996년까지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독일 안무가인 요한 크레스닉Johann Kresnik, 산카이 주쿠Sankai Juku의 유시오 아마가츄Ushio Amagastu 등과 관계를 맺으며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러한 다양한 경험은 그가 아프리카계 - 브라질 출신이라는 사실과 어울려 그의 작품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7년, 공연이나 수업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한국의 여름을 즐기고 있는 이스마엘 이보를 만나 보았다. 그의 검은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흰색 린넨 수트차림의 거대한 이보는 마치 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왕 아슬란처럼 문명세계의 백색인간들을 비웃는 듯 지적인 자태를 뽐내는 야수와 같았다. 세계무용계의 흐름을 읽어내는 진보적 식견과 너른 안목을 말하는 그의 낮고 굵은 음성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두 시간 동안 공손히 경청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
(다음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07년 9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반갑습니다. 공연을 위해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신 것으로 아는데 이번이 몇 번째 인가요?
-이번이 일곱 번 째 쯤 되는 것 같군요. 1988년 올림픽 때 초청되어 공연한 것이 첫 방문이었고 그 후로 모다페 초청공연과 LDP 무용단의 안무, 그리고 서울공연예술제를 위해 한국에 왔었습니다. 서울국제콩클의 심사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가능한 한 자주 오고 싶은 나라입니다.
콩클을 통해 본 무용수들 어땠나요?
-아시아 무용수들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특히 최근 3년간을 보면 짧은 기간 안에 한국 무용수들이 놀랍도록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많은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하고 있고 이러한 콩클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의 무용수들을 보면서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된다고 봅니다. 좋은 의미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영감을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인가요? 그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뜻인가요?
- 물론입니다. 한국의 수준 높은 무용수들과 작업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LDP 무용단의 안무를 의뢰 받았을 때 만난 무용수들 가운데 차진엽씨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제 작품의 주역을 맡아 솔로를 추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춤을 추는 사람입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 밖에도 함께 하고 싶은 무용수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많은 무용수들이 유럽무대에 진출하고 있는데 실제로 유럽에서 한국무용수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나요?
-예전에는 유럽의 안무가들이 일본 출신 무용가들에게 관심을 가졌었는데 현재에는 한국 무용가들과 작업하고 싶어 하고 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춤기량 뿐 아니라 감정표현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국제 발레콩클에서도 모든 상을 한국 무용수들이 받자 뉴욕 타임즈가 한국 무용수들이 모든 상을 휩쓸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보도한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안무가의 작품을 본적이 있습니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최근에 본 것은 작년에 공연된 김남진의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 긍정적 인상만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텐데 그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저를 곤란하게 만드는 군요. (웃음) 사실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안무는 그것과 또 다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이른 나이에 안무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 같은데 그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린나이의 무용수에게 안무를 시키는 것 보다 그들에게 창작력을 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발전적인 일입니다. 그 후에 그들 가운데 안무의 자질이 있는 사람을 선별해야겠지요. 춤을 잘 추는 무용수들 가운데에는 본인이 춤을 잘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춤을 추는 것과 춤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개인 적인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처음 무용을 시작하셨나요?
-왜 무용을 시작했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무용을 해야 한다고 그냥 느낌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마술이나 최면처럼 말입니다. 브라질에서는 무용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흔치 않았기에 나는 무용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인 14살 때 처음 수업을 받았어요. 첫 수업이 끝나고 어디에서 무용을 배웠냐고 선생님이 물으셨죠. 제가 이것이 첫 수업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무용수로 훈련된 근육을 갖고 있다고 하셨어요. 저의 타고난 점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용수로 타고난 점 때문에 주목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큰 도움이 되었죠. 그러나 훌륭한 무용수는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는 안 돼요. 그냥 무용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안 되죠.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너무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무용이 연애와 같다고 생각 되요. 피곤하다고 멈출 수 없고, 귀찮다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한국일정을 마친 후에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베를린과 이태리에서 각각 한 작품씩 안무를 의뢰 받았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이 함께 하는 큰 작품들이예요. 11월에는 브라질과 남미 투어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함께 듀엣을 추자고 제의한 것인데 아직 구체적인 작업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대화를 통해 의논중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현대무용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춤은 보다 광범위합니다. 발레리나와의 듀엣을 안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본인의 무용단을 만들 계획은 없나요?
- 지난 4년간 독일의 스투트 가르트 씨어터에서 예술 감독 및 안무가로 활동했습니다. 물론 무용수로 출연도 하면서였죠. 마샤 하이네와 여러 나라를 투어하며 많은 일정을 소화했고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과의 계약이 끝난 후 이제는 나의 무용단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비엔나와 베니스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아서 그저 구상중일 뿐입니다. 훗날 나의 무용단을 만든다면 한국 무용수들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최고 무용수상을 받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춤이 무용공연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분일 텐데, 춤이 없는 무용공연 즉 non-dance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러한 무용을 컨셉츄얼 댄스(Conceptual Dance)라고 부릅니다. 그러한 형식이 등장한 처음 5년 정도는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유럽에서는 그렇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도 춤추지 않고 있다면 왜 공연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공연 때문에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누구나 안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것입니다. 풍부한 창작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죠.
하지만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non-dance 스타일의 작품들도 있지 않나요? 평론가나 일부 언론의 의견인가요?
- 물론 모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이나 동기가 분명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면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피나 바우쉬 같은 사람은 영리한 안무가라고 생각 합니다. 피나의 작품 중에는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졸기만 하는 여인이 나오는데 정말 non-dance지요. 그러나 그녀 앞에 끊임없이 춤추는 한 남자를 등장 시켜서 그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요. 두 사람의 설정이 분명하기 때문에 무의미한 컨셉츄얼 댄스(Conceptual Dance)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분명한 이유에서 춤추지 않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한국의 안무가들도 춤을 제외한 작품을 만들려면 좋은 동기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군요.
세계적인 춤의 추세를 어떻게 읽고 있나요? 춤이 흥하고 있는 시대인가요?
-재정적으로는 나쁘지만 춤만을 볼 때는 흥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세계적으로 무용이라는 예술은 특히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맞게 자국을 대표하는 특별한 춤색을 갖는다면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볼쇼이 발레나 독일의 피나 바우쉬처럼 한국 춤을 대표하는 명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국처럼 재능 있는 무용수가 많은 곳에서 재정적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강수진과 같은 스타나 스타무용단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무조건 외국에 나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날 강수진과 같은 무용가가 나온 것에는 재정적 이유도 크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컨템포러리 댄스가 어떻게 발전될지 전망해본다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요?
- 미국의 현대무용이 마사 그라함을 중심으로 현대무용의 혁명을 가져왔고 그 후 피나바우쉬가 대표하는 독일 현대무용의 부흥이 유럽의 현대무용에 르네상스를 가져왔다면 다음 혁명지(?)는 어디일까 생각 해 봅니다. 아마도 남미와 아시아가 그 곳이라고 생각 하는데, 특히 아시아에서 새바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 합니다. 솔직한 제 느낌을 말한다면 벌써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루뽀 포르포 무용단을 제외하고는 브라질 출신의 무용가를 많이 보지 못했는데 현재 브라질의 무용은 어떤 위치에 있나요 ?
-역시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약간의 재정적 지원만 이뤄진다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한국의 무용수들처럼 기량이 뛰어나진 않지만 브라질의 무용수들은 또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매우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새롭게 만들고 변형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브라질 출신이라는 것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치나요?
-브라질은 나의 뿌리이고 기반입니다. 유럽에서 성공했지만 한 번도 유럽인이 되고 싶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뉴욕에서 춤을 배웠고 유럽과 아시아를 거치며 발레에서 부토까지 많은 춤을 추어왔지만 브라질적 창의력을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보고 브라질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춤은 세계 공통언어이니까요. 하지만 나의 영혼과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브라질인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때 마다 모든 분들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춤이란 당신 인생에서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 춤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춤을 시작했냐고 물을 때 마다 머뭇거리는 것은 첫 수업이전에 이미 나는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어릴 적에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는데 그러다가 넘어질 때면 다리가 부러지겠다며 어머니가 말리곤 했어요. 하지만 나는 춤추는 동안 내가 날고 있는 것처럼 기쁘게 느껴져서 춤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춤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기쁨이 아닐까요?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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