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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처방한 의사들2] 엑스레이는 감성을 깨우는 빛, 정태섭 교수

 

미래엔컬처(구 대한교과서)에서 2010년에 발행한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꽃이 빅뱅’이란 작품이 실렸다. 정태섭 교수는 이 작품을 엑스레이를 이용해 만들었다. 그는 예술에 과학을 접목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물체의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한 점 한 점 작품을 만들어 왔다고 말하는 그. 정태섭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 순간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의 눈빛과,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고자 하는 학자의 눈길이 교차된다. 그리고 그 교차점 뒤로는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이 있다.

 

- 과학 속에서 눈뜬 예술

 

현재 강남세브란스 병원의 영상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태섭. 국내 엑스레이 미술의 시작은 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 미국에서 돌아온 그가 매일 밤 논문을 쓰던 때다. “논문에 매달려 있을 때, 가족들이 저에 대한 격리감을 느낀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을 병원으로 불러 해골가족사진을 찍었죠. 해골가족사진에는 저의 전공과 취미, 가족의 구성애 등 많은 감성과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해골가족사진은 단순한 엑스레이 사진을 넘어서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태섭 교수의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가족해골사진은 단란하게 웃고 있는 듯하다.

 

그의 연구실 벽면은 그동안 작업해온 작품들이 붙어져 있다. 우리는 병원을 아파서 찾는 차가운 공간으로 인식한다. 정태섭 교수는 병원이 차가움을 제거하고,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구실은 물론, 병원 로비에도 그의 작품을 기증했다. 그의 작품을 본 환자들의 표정은 점점 부드러워져 갔다. “처음에는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병원에서 진찰할 때 쓰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엑스레이가 예술로 다시 태어나서 신기하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요즘 와서는 엑스레이 미술에 많이 친숙해지신 것 같아요.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하시고, 따라하겠다는 분들도 계세요”

 

그는 미술에 조예가 깊으신 아버지 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을 보며 고운 감성을 키우며 자랐다. 크면서 그는 집안의 권유로 연세 의과대학교에 진학한다. 만들기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방사선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엑스레이를 통해 예술을 시도하게 된 것. 그렇게 잠들었던 그의 감성은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엑스레이를 예술에 접목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컸다. 정태섭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라,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본인 스스로 공업디자인을 통해 미술을 공업에 응용하는 것을 보여 여주셨다. 의학자란 길에서 예술을 꽃피운 그는 말한다. “꿈이 있다면, 너무 서두르려고 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마세요. 때론 너무 빨리 꿈을 이루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어요. 사회적인 자기 직위를 갖고도,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꿈을 살릴 수 있어요.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걸어 왔던 길이 꿈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도 하거든요”

 

- 엑스레이에 담은 색으로 감성에 물을 주다

 

그에게 엑스레이는 우리의 감성을 깨울 수 있는 새로운 빛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빛이라고 하면 가시광선만 생각하기 쉽다. 가시광선은 물체에 닿아 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에, 물체의 표면만 볼 수 있다. 그러나 빛의 일종인 엑스레이는 물질을 투과해서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는 이 내면의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물도 내부의 골조가 미적으로 구성 되어야, 건물의 외벽이 아름다워요. 성형수술에서 내부의 뼈를 깎아내는 것이, 외부의 아름다움과 직결되잖아요.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을 밝혀내고, 알려주는 게 아름다움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태섭 교수는 엑스레이는 아날로그로 디지털 영상에 비해 부드럽고, 감성을 표현하기 좋다고 말한다. 여기에 그는 색을 추가해 예술 작품을 만든다. “휴대폰을 찍은 엑스레이에 파란색을 넣으면, 문자를 기다리는 차분한 마음이 표현 되요. 하지만 여기에 붉은 색을 넣으면 문자를 보낼 때의 들뜬 마음이 표현되지요. 그렇게 우리의 감성을 추가해 넣는 거예요”

 

정태섭 교수는 엑스레이로 손, 꽃, 고양이, 강아지, 휴대폰 등 다양한 사물을 찍는다. 그중에서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는 꽃이다. 그는 장미와 튤립을 주로 찍는데, 일부러 양재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샤샤, 델라, 비탈 등 다양한 종류의 장미 중에서 작품에 맞는 장미를 고르기 위한 것. 작품에 대한 그의 세심함과 열정이 보였다. 그는 정성껏 구한 꽃을 동양화적인 배경에 놓고, 은은한 색을 주어 감성을 표현한다. “저는 익숙한 것을 따뜻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꽃은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소재죠. 그만큼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이 꽃에 따뜻함을 넣어 주고 싶어요. 현대예술 중에는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철학을 가진 듯 보이는 것도 있어요. 그러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에도 철학이 있어요.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점차적으로 자극을 줘서 마음에 스며들도록 하죠. 이러한 것을 만들고, 보고 있으면 제 마음도 부드럽고 편해져요” 정태섭 교수는 그의 미술을 병원 환자들의 마음에서 일반인들의 생활에도 젖어들기를 바란다고 한다. “제 미술이 거실의 액자로, 벽지의 문양으로, 혹은 가구의 문양으로 생활의 한 구성요소가 되길 바라요. 그래서 엑스레이 미술로 사람들 마음에 따뜻함을 주고 싶어요”

 

“의학과 아트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요. 오늘날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원래 큐레이터는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환자에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었어요. 옛날에는 의학과 예술이 크게 구별되지 않았어요” 그는 의사의 예술 활동 참여를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정태섭 교수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상무이사, 새화폐 과학자 얼굴 올리기 운동 추진위원장, 영동세브란스병원 환자와 주민을 위한 별관측 행사, 어린이 과학책 컬럼니스트, 어린이 과학방송 ‘아하 그렇구나’의 MC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그의 시간이 빠듯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취미가 있고, 그것을 조금씩 발전시킨 것이라 괜찮다며 웃는다. 과학적인 빛이 새로운 영상으로서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되도록 한 정태섭 교수. 과학자로서 혹은 미술가로서 그의 약진을 기대해 본다.

정은승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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