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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분청사기 축제 거행
계룡산 도예촌과 KBS대전방국이 주최하고 계룡산 분청사기 축제 추진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시와 토’라는 주제로 <3회 계룡사 분청사기 축제>를 계룡산 도예촌에서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거행한다. 이 행사에 충청남도와 공주시가 후원하는 축제로 청자와 백자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3대 도자기로 계룡산 일대에서 제작된 철화분청사기이다. 이 그릇은 계룡산 도자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지역적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도자기이다.
행사개료로는 선인들의 철화분청사기장 추모제, 도예촌 작가 테마전, 창며작가 원크샵, 시의 테마전, 창작가마시연, 도예체험마당 등 다체로운 행사가 이루어진다.

계룡산 철화 분청사기는 전남 강진의 상감청자와 경기 광주의 청화백자와 더불어 한국도자의 3색중 하나로 다른 기법의 분청사기와 차별이 될 만큼 개성이 뚜렷해 계룡 산 분청이라는 별칭이 있는 공주지역의 고유의 유산이다. 일본의 有田町(아리따)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자기의 고장으로, 이 도시는 일본 자기의 발상지이며, 바로 有田의 도조 이삼평공이 충청도 계룡산 출신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도 타 지역은 이미 그 가능을 활성화하 여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은 기반시설이 미흡한 상황에서 전통 유산을 복원하고 지역활성화를 꾀하고자 2004년부터 개최되어 올해 세 번째 개최된다.

가.주변여건
해발 845m 민족의 영산 계룡산 기슭에 위치하여, 대전과 인접 (버스로 유성에서 10분,공주에서 20분거리 위치) 14호의 이삼평 후예 젊은 도공들이 명맥을 잇기 위해 분주하다.계룡산 분청사기 시즌에는 새 봄을 알리는 인근 동학사 벚꽃 도 만개하여 축제 분위기를 한껏 드높히고 있고 겨울 동안 움 추렸던 만물이 꽃의 개화를 통해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한다. 철화분청사기의 유적지인 사적지 333호 가마터와 아리타 도조 이삼평공의 현창비가 도예마을의 징표로 우뚝 솟아 있고 일본 학생들이 단골로 찾아와 참배하고 가는 단골 관광지로 자리 매김 된 곳이다.천년 고찰 동학사,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 계룡산 온천, 산림 박물관 등이 주변에 있어 하루관광 거리에 제격이다.

나. 도예촌 현황
대전에서 박정자를 지나 공주방향으로 국도 32번을 따라 5분 쯤 지나면 계룡산 도예촌 간판이 나온다. 왼쪽 방향으로 운전대 를 돌려 계룡산골짜기 속으로 정감어린 시골길이 임금봉과 신 선봉을 끼고 거슬러 돌아가다 보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시 골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층층 다랭이 논, 구비쳐 흐르는 계곡물, 여기 저기 붉은 깃발, 하얀 깃발 꼽은 무당집들, 돌무덤에 감긴 동아리, 당간지주 등 이 그것. 계룡이 온갖 신들의 고향임을 입증한다.
1594년경 이지방 사람인 이삼평공이 일본 유전에서 일본 최초 로 자기질 백자를 만들어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 한 곳으로서 지금도 도자촌에서는 철화 분청사기를 복원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도예가(14호)들이 집단 마을을 이루고 불과 흙의 뜨거운 예술혼을 불태우는 도공들의 생생한 삶을 느낄 수 있다.
다.계룡산 철화 분청사기가 다른점
다른 지방과 쉽게 구분될 만큼 태토가 거칠고 철분이 많이 포 함, 검게 보이는 태토를 감추기 위해 막걸리색 분장토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사기의 문양은 반쯤 칠한 막걸리색 귀얄 자욱과 철화문으로 자유스러우며 힘찬 필력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민족의 미(美) 의식과 지역인의 심성을 나타내며 독특한 개성과 예술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대부분 소지의 색깔은 암록색, 암갈색, 회록색, 흑색, 검은자색 등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산화염이나 중성염 소성의 결과 이고 소리자체에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룡산 철화 분청사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지나면서 사라지다 조선중기 이후 철화 백자를 낳게 하는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철화 분청은 다른 곳에서는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진한 백토, 흑갈색의 조잡한 태토, 간결하면서도 거침없이 그려 진 추상성이 강한 철회문 다소 거친 맛을 내는 투박한 듯한 기 면과 오뚝한 굽 등은 계룡산 분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미감이다.

라.역사적 배경
공주 학봉리 계룡산 쪽 일대는 조선 전기에 철화분청사기를 생산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분청사기란 분장회청사기( 粉粧灰靑沙器 )의 준말
일본인들이 미시마(三島)라는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아니하여 1930년대 분장회청사기라는 이름을 사용 하면서부터 유래되었다. 분청사기는 제작되던 당시의 이름이 아니어서 옛문헌에서 분 청사기와 같은 도자기를 무엇이라고 지칭하였는지 그 근거는 찾을 수 없다.
분청사기는 14세기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발생한 것으로서 15 세기초 조선 왕조의 기반이 닦여진 시기와 때를 같이 하여 퇴락해 가던 상감청자가 일변하여 새롭게 서서히 탈바꿈한 것이다.
14세기 중엽경 발생하여 16세기 중엽경 까지 약 200여년간 생산되었으며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순박하고 활달 한 민예적 성격을 띠고 있다.
분청사기는 분장 기법에 따라 인화분청, 상감분청, 박지분청, 조화분청, 철화분청, 귀얄분청, 덤벙 분청 등이 있다. 계룡산에서 7가지 모두가 출토되고 있으며 가장 개성이 뚜렷 한 것은 단연 철화분청사기다. 공주 학봉리에는 동학사가 있고 동학사로 들어가는 좌우 산자 락에는 10여기가 넘는 분청사기와 백제 가마터가 있다. 이곳 가마터는 1927년 일본사람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되었다.
1992년 국립중앙 박물관에 의해 제5호 가마터를 발굴함으로써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5호 도요지는 길이 42m, 너비 2.4m에 13개의 방과 측면 출입구가 확인되었다.
「 세종실록」「지리지」에 학봉리 요가 공주 동학동의 중품 자 기소라 표기된 이후 중앙관청에 공납 되었다.
학봉리 요지는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된 후 쇠퇴하기 시 작, 백자 위주로 체계 개편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도자 교류사를 보면 대략 17세기 전반을 기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도공들만 해도 5만~10만정도, 이들은 일본 땅에서 망향의 한을 삭이며 재작활동에 참여하였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은 일본 도자사의 황금기인데, 이삼평은 조선 장인들 중 가장 많이 주목받아온 인물이다. 그가 활약한 지역이 일본 자기의 발상지라고 일컬어지는 아리타이고 그가 최초로 자기를 구울 수 있는 원료를 발견 하는 등 일본 자기 사에서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삼평의 고향이 계룡산 이다.



편집부 강현mokh57@korea.com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5월 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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