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켰다. 유명배우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실컷 욕을 써놓고 나니 스트레스가 싹 풀렸다. 다음날, 뉴스에서 그 배우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왜 자살하고 지랄이야, 씨발.”

관계의 치밀함과 대사의 섬세함을 추구하는 작가, 고재귀가 일상 속에서 흔히 벌어지는 ‘죄’에 관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바로 연극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2009년 여름 서울프린지 페스티발, 2009년 가을 광주 평화 연극제를 통해 관객에게 소개돼 큰 호평을 받았다. 지난 11월 혜화동 일번지에서 공연됐고, 오는 2010년 1월 31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앙코르 공연이 진행된다.

연극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는 여러 형태의 사랑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남긴 상처들이 난무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경찰서를 배경으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치 범죄 수사물을 보고 있는 듯한 시간 순서와 내용 전개는 이 작품만이 갖는 힘이다. 관객들은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구성과 CCTV 영상은 그러나 이 모두를 단순하게 풀 것을 강요한다. 주제와 형식의 진보를 고민하는 윤한솔 연출은 이 두 가지 장르의 혼합을 사실적 무대와 전복된 공간의 교묘한 만남으로 섞어 놓았다.

윤한솔 연출은 “이 작품은 죄의 가닥을 풀어 그 끝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죄의 시작과 끝을 보여준다. 현 시대의 피폐해진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태초의 악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준다. 원하지 않는, 감추고 싶은, 지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한 대면을 통해 인간은 시대가 요구하는 다음 단계로 진화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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