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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웃자고 만든 십년 전 쇼, 마방진극공작소 연극 ‘락희맨쇼’

 

대학로 어느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붉은색 포스터와 간판이 나온다. 그것은 후미진 골목 풍경과 이질적으로 붉다. 사위가 어두운 겨울 저녁 그 붉음 혼자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포스터 속에는 한 사내가 요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사내라 단정 지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 배트맨의 얼굴, 헐크의 상체와 원더우먼의 하체, 스파이더맨의 팔, 그리고 슈퍼맨의 망토까지. 그야말로 세상의 ‘센’ ‘맨’들을 다 모아 놨다. 그 옆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웃자고 만든 십년 전 쇼래요~’ 그래서 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이 공연은 도대체 어떤 연극이란 말인가. 그 답은, 공연을 봐도 모른다.

조선 태조 12년 2월 금주령이 떨어졌을 때, 단 하루를 살아도 마시고 죽자는 ‘락희도당’이 언제나 술을 찾아 침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한편 11대째를 이어온 한 밀주업자는 주구장창 술 연구에만 빠져 살다가 ‘락희도당’의 침에 필이 꽂혀 그들의 침을 깔때기로 잔뜩 모았다. 이 침들을 아침이슬과 섞어 숙성시키니 이른바 새롭게 탄생한 침이슬! 이것이 하느님만 드신다는 천상의 명주가 된다. 이걸, 이 귀한 것을 지구 사는 아줌마가 챙겨 다시 지구로 날랐다. 연극 ‘락희맨쇼’는 이 천상의 매력을 얻을 수 있다는 명주 ‘침이슬’을 차지하기 위한 지상 최대의 고공분투(?)가 시작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음악, 춤, 영상, 카툰, 슬랩스틱이 모여 있는 연극 ‘락희맨쇼’는 ‘세상이 뒤숭숭해서 웃자고 한 번 만들어봤다’고 말한다. 이 요란한 공연을 보려면 이성과 논리를 버려야한다. 리얼함이나 사건의 연계성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의상에 말도 안 되는 인물이 등장하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된다. 변신도 말도 안 되게 간단하다. 그저 옷을 벗으면 그 안에 대충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요상한 의상이 나온다. 제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지퍼 올리면 끝이다.

그러나 신기하다. 이 어처구니없음에 짜증이 나야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입을 벌리고 공연을 따라가고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모여 오히려 조화된 하나를 이룬 느낌이다. 연극 ‘락희맨쇼’는 오로지 웃음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연극을 버리진 않았다. 작품 안에는 정극하는 사람들의 코미디, 정직한 웃음, 힘이 되는 에너지가 가득하다. 연극 ‘락희맨쇼’의 고선웅 연출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대학로의 상업적 코미디와 비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그들의 연극과 분명 차별화된 나름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며 “이 작품은 연극적 시추에이션과 정확하게 맞물려 있으며, 배우들은 이 작품의 연기적 메소드에 대하여 반드시 고민을 해야만 무대에서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공연 속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품’이다. 지상 최고의 쪼잔남부터 헛다리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호들갑의 완성녀까지. 말도 안 되는 역들을 자기 것으로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불안하고 씁쓸한 현실에 쓸려 다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찾게 만드는 연극 ‘락희맨쇼’. 고선웅 연출은 “향후 마방진의 다양하고 자생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을 위해서도, 또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연극 ‘락희맨쇼’는 필요하다”며 “이것이 이 분분한 시대에 연극 ‘락희맨쇼’를 올리는 이유다”고 전했다.

오늘이 답답하고 내일이 깜깜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원래 세상이란 앞뒤 안 맞고 정신 나간 것들뿐이다. 세상의 기준에 들어맞지 못한 별난 종족이 ‘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보다 더 요상한 그들과 함께 신나게 웃어보자. 십년 전에 웃자고 만든 쇼가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즐겁게 할 것이다.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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