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에서 곰은 동굴을 거쳐 사람이 된다. 이때 동굴은 짐승성이 죽는 공간이자, 인간성이 살아나는 공간이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하 오세습)’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굴이 있다. 그리고 선한 고집으로 오아시스 세탁소를 지키는 주인장 강태국이 있다. 오늘날 사막을 헤매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어떤 오아시스를 꿈꾸며 발걸음을 떼고 있을까. 여기 달작지근한 ‘웃음’과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그들의 갈증을 가셔줄 샘물이 있다.

- 진한 사골국물 같은 인물, 강태국

오아시스 세탁소 주인 강태국은 오염된 세상에 물들지 않은 ‘청정지대’ 그 자체이다. 그의 어수룩한 뿔테 안경 속으로 보이는 처진 눈초리와 느릿느릿한 말투에서 선함이 뚝뚝 묻어난다. 잘 표현된 강태국의 ‘선한 인상’은 ‘습격’이란 낱말과 대비를 이루며, 극의 초반부터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의 선한 시선은 ‘정이 메마르고, 물질이 만능이 된’ 이 사회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때 묻은 마음들을 깨끗하게 세탁하려 한다. 그는 습격자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 버리는 환상성도 보여준다. 관객은 ‘소중한 가치가 오염되지 않길 바라는 모두의 마음’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극의 몰입을 이끌어 내는 웃음

이 작품에는 ‘웃음’이 세제의 거품처럼 폴폴 피어난다. 먼저 캐릭터의 적당히 과장된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극 중의 한 여자는 세탁소에서 찾은 옷을 입고, 자신의 몸매를 뽐내기 위해 과도한 안무를 보인다. 그러나 연극 ‘오세습’의 웃음은 관객에게 단순한 재미만 주지 않는다. 좀 더 쉽게 캐릭터를 설명하고, 극의 주제에 도달하도록 돕는다. 작품 속에는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인물들의 모습이 희화화 되어 있다. 병든 노모의 돈을 찾기 위해 세탁소에 몰래 찾아든 인물들은 주인공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고양이 웃음소리를 낸다. 반면에 주인공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순진한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그러나 이 웃음은 주인공의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에서 나온다. 주인공은 아내의 타박에도 허허 웃음으로 넘기며, 자신만의 철학을 고수한다.

- 사막에서 맛보는 샘물, 가슴 뭉클한 감동과 희망

‘오아시스’는 다채로운 색을 지니고 있다. 이 공간에는 ‘희망’이 퐁퐁 샘솟는다. 그러나 오아시스의 배경은 사막이다. 그래서 서걱거리는 모래바람도 분다. 연극 ‘오세습’에는 ‘물질을 오아시스로 여기는 인물들의 습격’이 있다. 이 습격 앞에서 강태국과 관객은 물질에 밀려나 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마음 아파한다.
그러나 이 침통함은 강태국의 진정성을 통해 정화된다. 강태국은 극의 초반부터 관객들로부터 자신의 선한 심성에 대한 믿음을 쌓아간다. 그는 몇 십 년 전에 맡긴 옷도 기쁜 마음으로 찾아주고, 치매 걸린 노인의 똥 귀저기도 세탁해 준다. 강태국은 습격자들 앞에서도 이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 물질에 찌든 이들을 세탁하는 장면은 백미다. 희망의 공간에서 행한 선한자의 이 행동은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정은 앞서 침통함을 경험한 관객에게 가슴 후련함으로 다가간다. 관객은 습격자가 세탁되어 선한 표정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을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과 희망을 경험하게 된다.


정은승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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