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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성의 The Stage 170] 뮤지컬 ‘포미니츠’2021. 4. 7.~ 5. 23. 국립정동극장
  • 유희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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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는 2007년에 국내 개봉했던 크리스 크리우스 감독의 동명의 독일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2004년, 세상을 떠난 실존 인물 거트러드 크뢰거의 삶을 바탕으로 제작 기간만 8년이 걸렸으며 2007년 독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국내 창작진이 최초로 뮤지컬로 개발한, 2021년 국립정동극장의 기획공연 중 한 작품이다.

기획, 개발 중심의 ㈜몽타주컬쳐앤스테이지와 제작 전문극장 국립 정동극장의 협업으로 몇 차례 개발 단계를 거쳐 2021년 4월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이번 작품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하는 양준모 배우가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접하게 되고 그 감동을 어떻게든 뮤지컬로 무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공연의 기획은 시작되었다.

이후 2016년 11월, 맹성연 작곡가에 의해 30분 분량의 리딩 대본과 음악이 탄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2019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작품 기획 개발사 ㈜몽타주컬쳐앤스테이지를 설립했다. 다양한 루트로 수소문 끝에 저작권 계약을 마치고, 급기야 2019년 대본 초고와 다섯 곡의 음악 샘플을 들고 국립정동극장 김희철 대표에게 찾아가 작품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2020년 7월, 대망의 제니를 찾는 오디션을 실시했고 2020년 8월 대본과 음악이 마무리되어 테이블 리딩을 시작했으며, 이후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이와 병행해 제니와 뮈체 배우들은 작품에 반드시 필요한 특훈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뮤지컬 ‘포미니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의 종착지, 루카우 교도소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 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분노의 살인죄로 복역하고 있는 스무살 ‘제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부정했던 자잭의 죄의식을 숙명처럼 간직한 채, 상실과 후회로 점철된 삶에도 60년간 재소자들에게 묵묵히 피아노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는 노년의 피아니스트 ‘크뢰거’.

두 사람의 처음 만남에서부터, 제니는 교도관 뮈체를 폭행하고 독방에 갇히게 되고, 크뢰거는 제니가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확신해 조심히 다가가지만, 어떠한 도움도 간섭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를 학대하고 나날이 분노는 가중되어 사사건건 문제로 엮이게 되고 그로 인한 지독하리만치 첨예한 분노의 행동이 폭발한다.

긴장과 갈등의 연장선에서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제니의 일상, 그런 제니를 묵묵히 지켜보며 그저 곁에서 할 일을 하는 크뢰거.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의 부족으로 제니의 재능을 시샘하고 크뢰거의 관심을 구걸하는 듯한 교도관 ‘뮈체’와 주변인들의 매서운 시선과 부딪힘의 시간들이 늘 팽팽하게 혼재한 가운데, 크뢰거와 제니, 사랑하는 사람을 부정했던 크뢰거의 죄의식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제니의 분노는 커진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갈등과 아픔이지만 어느새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깊은 신뢰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그로 인한 깊은 감동의 울림으로 탄식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고통과 좌절이 난무하고 막다른 골목의 어둠뿐인,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의 연속으로 급기야 나락으로 추락해버린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 어느새 콩쿠르에서 살인자가 아닌 인간에게 허락된 4분 동안 자기 방식대로 한 인간의 영혼으로 혼신을 다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제니를 통해 작품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마침내 자각할 수 있는, 더불어 누구에게라도 마지막 순간이라 할지라도 한순간 끝내 빛날 수 있는 희망의 찰나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어쩌면 모두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상처와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진솔한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그 순간에 극한의 광란과 환상의 폭발적이고 화려한 4분의 퍼포먼스! 숨이 멎을 것 같은 그 순간을 지나고, 어느새 누구라도 그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깊이 향유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거듭 태어났다.

마지막 연주가 끝난 후, 제니와 크뢰거의 마주한 눈빛과 표정에서 영혼과 육신을 그토록 힘겹게 한 고통과 트라우마의 무게에서 서서히 해방되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눈빛이 영롱하게 빛으로 반사된다. 그 감동의 벅찬 살아있음이 희망의 날개짓으로 극장 안을 가득 채워 모두와 함께 공유하게 하는 기적이 찾아온다.

뮤지컬 ‘포미니츠’는 원작 영화를 무대 언어로 재구성해 음악의 활약을 최대한 이끌어낸 뮤지컬 ‘호프’의 강남 작가와 그동안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워치’ 등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을 고급지게 이끌어 가는 맹성연 작곡, 다양한 작품에서 매력적인 안무를 구축하고 이 작품에서도 앙상블의 시선을 통한 동작의 구축으로 제니와 크뢰거의 심리적인 반향까지 이끌어낸 홍유선 안무가 함께했다.

다양한 무대 작업을 통해 상징적이고 세련된 무대 미쟝센을 이끌어내는 최영의 무대 디자인, 최근 연극과 음악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으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소영 연출을 비롯해 많은 스태프들의 열정이 결합된 무대는 영화와는 또 다른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무대 미학의 결을 공고히 하고 세련되게 뽑아냈다.

또한, 무엇보다도 크뢰거역의 김선영 배우가 압도적이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와 품위로 모든 것을 해탈하고 초월한 듯한 삶의 선험자로서의 깊은 눈빛과 신뢰할 수 있는 대사 톤, 안정적이고 탁월한 가창력으로 크뢰거 역에 완벽 빙의해 무대를 압도한다.

제니역의 김환희 배우 또한 그동안 쌓아 온 작품 속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역할에 도전하여 믿을 수 없는, 도발적이고 거칠고 야생적인 본능을 깨워낸다. 그전에 보았던 김환희는 없고 완벽하게 제니역으로 거듭 태어난 듯, 그 자체로 뜨겁게 열연한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뮈체역의 육현욱 배우 또한, 늘 다재다능하고 성실한 자세로 무대에서 믿고 보는 배우였지만 이 작품에서도, 한편으로는 소심하면서도 어느 순간 본능적인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인간적인 뮈체역을 통해 제니와 크뢰거의 불화를 조장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돈독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결정적인 신들을 구축해낸다.

또, 임현수 배우와 박란주 배우의 깜짝 놀랄만한 동작의 운용, 안정적인 가창과 전천후 활약 또한 작품의 양식을 구축하고 품격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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