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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성의 The Stage 169] 뮤지컬 ‘미드나잇’인간 내면의 본성을 번개처럼 몰입한 극강의 무대
  • 유희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1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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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_액터뮤지션’ 뮤지컬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아세르바이잔’의 국보급 작가 엘친(Elchin)의 희곡 ‘Citizens of Hell’을 원작으로 영국의 극작가 티모시 납멘(Timothy Knapman)과 작곡가 로렌스 마크 위스(Laurence Mark Wythe)가 협업한 작품이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밀도 높은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드라마의 극적 구성과 상황, 캐릭터의 심리적 상태와 도약이 빛을 발하는 중독성 있는 넘버가 배치됐다. 기존 일상화된 뮤지컬 형태에서 벗어나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양식화되어 새로운 형태의 소극장 뮤지컬로 거듭났다.

‘액터뮤지션’은 액터 뮤지션들이 단순히 극 구조의 형태와 접목, 장치적인 부분에 국한하지 않고 파워풀한 연주와 다양한 군중과 색다른 이미지를 방출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풍성한 볼거리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피아노를 기본으로 기타, 더블베이스, 바이올린, 퍼커션 등을 활용해 카멜레온적인 음악적 변화와 깊은 완성도로 작품의 밀도 높은 음악적 형식뿐 아니라 캐릭터의 심리를 자극하거나 끌어내며 제3의 캐릭터로서의 이미지까지 상상하게 하며 작품 전체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다.

 
극작가 ‘티모시 납멘’은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 ‘쓰루 더 도어’로 한국 관객과도 친숙한 작가다. 작품은 소련 치하의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시, 때는 스탈린 체제하의 1937년 12월 31일 자정 전후. 스탈린은 1925년부터 30여 년에 걸쳐서 무려 2천만 명을 숙청했었는데 1937년에는 그 잔혹함이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불안했고 서로를 의심했으며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처럼 숫제 일상생활까지 감시당했다. 피비린내 나는 고문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고 살기 위해서는 무고한 사람까지 고발해야 했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경계가 불명확한 시절, 한밤중 ‘미드나잇’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의 나약함과 악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소비에트 연방 스탈린 지배 아래 매일 밤 사람들이 어딘가로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공포시대. 그럼에도 사랑과 믿음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부부 ‘맨’과 ‘우먼’이 있다. 1937년 그 참혹한 공포의 시대에서도 꿋꿋하게 사랑으로 가정을 지켰지만 12월 31일 밤 자정 직전 쾅! 쾅! 쾅!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손님 ‘비지터’로 인해 숨기고 싶던 두 사람의 치욕스러운 비밀들이 밝혀진다. 이내 혼란에 빠져 결국 최후의 선택을 강요받으며 이들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시대적 상황과 극적 상태에 의한 불안과 초조, 상식을 벗어난 사건과 사고가 난무한 시대에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도 누구라도 믿지 못할 불행한 시기. 숨 막히는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날 선 배우들의 극한 연기는 극장을 순식간에 공포와 사건의 연속 반전으로 당혹해하며 이내 긴장에 이은 막막한 연민에 그저 숨죽이는 탄성을 지르게 했다.


그만큼 배우들의 열정과 쏟아내는 에너지의 내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할이기도 했고 퇴장이 없는 뮤지션들의 전천 후 연기와 연주 또한 드라마에 녹여 들거나 연주자로서의 탄탄한 앙상블을 더하며 내공 깊은 음악적 브랜딩을 구축해 냈다.

‘맨’역의 현석준 배우.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 사랑 안에서 자기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한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내면에 대해 여지없이 드러내는 속 깊은 연기로 캐릭터를 수긍하게 했다. 그동안 꾸준히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무대에서 그 존재감을 쌓아가고 있는 모습. 캐릭터에 따른 가창과 연기의 표현 방법에 대한 고민과 매번 성실하게 역할과 무대에 임하는 자세를 보며 차츰 믿음이 깊어지는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먼’역의 김소향 배우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한국 뮤지컬의 독보적인 뮤지컬 디바로 손꼽히는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무대에 임하는 자세와 초집중하는 모습은 가히 경외감이 들 정도로 매번 경건하다. 온전히 극적 상태에 몰입하면서도 세련된 연기와 가창, 세련된 움직임으로 배우로서의 우아한 품격과 절제미를 유지하며 숨죽인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곤 하는데 이번 ‘우먼’ 역할도 김소향만의 팔색조 캐릭터를 완벽하리만치 구축해 냈다.

‘맨’을 만나 불안한 시기를 견뎌내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애쓰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극도의 순간에 나타나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번개처럼 순식간에 섬뜩하리만치 몰입한 극강의 표현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비지터’ 역의 조환지 배우는 이미 대학생 때 ‘딤프 뮤지컬스타’에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졸업 후 다양한 작품에서 탁월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그 존재감을 인정받고 뮤지컬 차세대 스타로서의 암묵적으로 화자 되곤 했다.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증명이라도 하듯 절대 쉽지 않은 고난도 음역의 넘버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며 등장하는 장면마다 본인만의 특별한 깊은 음악적 색깔로 혼을 쏙 빼놓듯 온몸으로 곡을 연주해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동화되게 했다.

가볍게 속삭이듯이 내뱉는 입술 발음부터 온몸을 다 쓰는 통성과 벨팅 창법까지 악상의 음가와 피치를 자유자재로 강약 조절을 하며 한 호흡으로 내달음치다 급격히 휘몰아치고 금세 다시 바람처럼 귓가에 속삭이는듯한 휘스퍼링의 고난도 기교와 유니크한 스토로크 주법의 기타 연주까지 그가 머무는 순간, 모든 상념을 잊고 음악에 홀릭 되게 한 마법 같은 배우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연주자와 배우들이 하나가 되었다가 더러 협력자가 되거나 때로는 따로 또 같이 하모니를 일구어낸 공연의 톤앤매너 양식미가 차후 ‘액터뮤지션’ 뮤지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 같았다. 배우와 함께 곡을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 안무하고 연기하며 배우의 손끝 하나에 모두가 하나같이 몹 씬을 구축한다거나 때로는 흩어지며 매 순간 무대 지킴이로서 혼연일체가 된 앙상블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무한 볼거리와 특별한 공연 미학을 구축해 낸 5명의 액터 뮤지션들의 존재감 또한 특별했다.

거기에 윤색의 한지안 작가, 황희연 협력연출, 이범재 음악감독, 이현정 협력안무, 심플하면서도 미니멀한 김정란의 무대, 감각적인 민선홍의 조명, 독보적인 음향디자인 권도경, 세련된 의상 디자인의 조문수. 김민경 협력 분장 디자인 등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팀과 한국의 출중한 협력 스태프들의 재창작으로 작품은 금세 4연차 재공연으로 이어지며 흥행을 견인하고 있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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