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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연극 ‘해롤드와 모드’ 박정자 "미성숙한 80세, 롤모델 연기해 감사"5월 1일부터 23일까지 대치동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오늘 아침 눈뜨면서 모든 시간, 모든 사람, 그리고 나한테까지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 박정자가 올해 80세를 맞아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 출연 소감을 전했다. 3월 22일 오후 1시 30분 페이지 명동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를 비롯한 배우 박정자, 오승훈, 임준혁과 연출을 맡은 윤석화가 참석했다.

연극 ‘해롤드와 모드’는 작가 콜린 히긴스(Colin Higgins)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동명 영화(1971년)로 알려졌다. 이후 다시 히긴스에 의해 연극으로 만들어져(1973년) 무대에 올랐다. 한국 공연은 1987년 초연을 제외한 여섯 번의 공연에 박정자가 주인공 ‘모드’역으로 출연하며 배우 박정자의 시그니처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003년을 첫 출연 당시를 회상하며 “2003년에는 한 회로 끝날 줄 알았다. 저보다 관객이 더 좋아해서 시키지 않아도 80세까지 하리라 약속했다.”라며 당시 심정을 전했다. 이에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2008년에 예술의 전당 자유 소극장에서 뮤지컬로 선보인 지 13년이 지났다. 그때 박정자가 팔순이 되면 이 작품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 관리 등을 너무 잘하셨다.”라고 전했다.

이어 연출을 맡은 윤석화는 “박정자에게 프로포즈 받은 것은 10년 전이다. 전문 연출가가 아니라서 저로서는 다소 두려운 일이지만, 모처럼 20대부터 80세 배우가 포진한 아름다운 정원에 고목도 있고 묘목도 있다. 멋진 꽃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하고 감사하게 이끌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연출을 맡게 된 계기와 포부를 전했다.

연극 ‘해롤드와 모드’는 자살을 꿈꾸는 19세의 소년 해롤드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80세 모드를 만나면서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 연극과 뮤지컬로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들에서 재생산되며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Q. 작품에 임하는 소감?
오승훈: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의 두 세배 에너지를 준비해야 하는데 부족하다. 많이 배우면서 그만큼 행복한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이 공연이 마지막이라면 빛내드리기 위해 옆에서 충실하게 좋은 연기로 최선을 다하겠다.

임준혁: 선생님이 모드 역을 마지막으로 하실지 몰랐다. 저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같은 대사여도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가슴에 훅 들어온다. 연습하면서 하나하나 에너지를 써서 알려주신다. 작품을 통해 사람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Q. 연습해보니 어떤가?
윤석화: 7번 같은 역을 맡은 배우에게 연출의 디렉션은 무의미한 일이다. 선생님이 첫 무대처럼 맑고 사랑스럽고 귀엽길 바라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박정자의 경험과 깊이는 이루 따라갈 수 없었다. 이미 제 이야기를 들은 듯 2003년 모드로 돌아가 있더라. 작품의 줄거리는 완벽하기에 이번 무대는 배우의 연기가 오롯이 보일 수 있도록 행간이 시가 되길 바란다. 두 해롤드는 아름다운 나무를 꿈꾸는 묘목이다. 대사 분석 등 작품의 줄기를 알려주고 있다. 작품에서 19세 해롤드가 모드를 통해 구원을 받듯이 두 배우가 80세 박정자를 통해 좋은 배우로 자라나길 바란다.

Q. 80세가 되니 기분이 어떤가?
박정자: 다를 것 같았는데 다르지 않다. 80세라는 구실로 이번 무대를 올린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어느덧 이 자리에 와있다. 사실 성숙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미성숙하다. 배우는 너무 성자처럼 지혜로우면 안되니까. 이번 무대가 6번 해왔던 무대보다 더 나으리라 자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너무 감사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연극은 관객이 우선이다. 최근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처럼 끔찍한 것이 없다. 연극은 디지털이 될 수는 없다. 제가 성숙하지 못한 것도 여전히 아날로그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Q. 이 작품은 젊은 청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어떤 위안을 주나?
박정자: 19세는 앞으로 나아갈 길, 희망, 일을 선택하는 등 어둡기만 하다. 80세 할머니 모드는 소유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극 중 마지막에 그야말로 80세 생일에 스스로 삶을 선택한다. 그것도 도전이고 용기라 부럽기도 하다. 모드는 나의 롤 모델이다. 모드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환경 걱정, 싸울 일, 욕심부릴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배우 박정자가 모드를 롤 모델로 삼듯 관객도 80세 할머니 모드처럼 살고 싶길 바래본다.

Q. 나와 비슷한 점, 다른 점?

박정자: 모드가 해롤드에게 “매일 새로운 걸 해보자”라고 한다. 모드는 아직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매 순간 살아있음을 몸, 언어로 보여준다. 연기하면서 스스로 나에게 다짐하거나 배운다. 매 순간 매일 새로운 것을 해보자. 가끔 엉뚱하게 모험 아닌 모험을 할 때는 주변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때로는 엉뚱함이 에너지로 바뀌어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도 있다. 배우가 같은 역만 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미지를 강요하는 것만큼 불편한 진실은 없다. 그동안 맡아온 역은 제 생각에도 다양하다. 왕비, 오필리어 아버지, 정신과 닥터, 무당, 시어머니 등이 있다. 배우 스스로 연출가에게 저 자신을 이야기했다. ‘위기의 여자’, ‘페드라’ 등은 제가 얻어낸 작품이다. 배우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주저앉아있는 것은 직무 유기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무대 위에 나타났을 때 관객의 기쁨도 있다. 60년을 그렇게 정리하고 싶다.

Q. 해롤드 역을 맡은 두 배우를 칭찬한다면?
박정자: 강하늘보다 훨씬 미남이다. 강하늘이 들으면 큰일 나겠네. (웃음) 매번 해롤드를 사랑했다. 싫으면 호흡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는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다. 사실 그 장면쯤 가면 슬쩍 긴장한다. (웃음) 그 순간은 모드와 해롤드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만나는 찰나다. 두 명의 해롤드를 얻게 되어 어안이 벙벙하다. 더 큰 사랑의 보따리를 만들겠다. 이번 공연에 역대 해롤드를 초청하겠다.

Q.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될지?
오승훈: 제 인생의 큰 획이 될 것 같다. 작품 안에서 해롤드가 사랑을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처럼 공연 끝나고 한 단계 성장하고 변화하는 큰 첫 계단이 되는 시간이다. 힘들 때도 있겠지만 치열하게 부딪히려고 노력한다. 선생님을 더 귀찮게 할 것 같다. 연습 중에 갑자기 박정자 선생님이 맛있는 걸 사주셨다. 힘을 주시려고 한 것 같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박정자: 떡볶이, 순대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자주 사겠다. (웃음)

임준혁: 19살 아이가 죽음을 동경하게 되고 대외적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그 아이의 감정의 변화가 저에게 중요했다. 모드를 통해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그대로 저에게 들어왔다. 지금까지 생각한 것이 고착되지 않고 아이같이 깨끗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큰 의미가 될 작품이다. 무대에서 뵙기 쉽지 않은 선생님들과의 작업 그 자체가 행복하다. 성장하는 사람 임준혁이 될 것 같다.

Q. 59년 연기했다. 앞으로 행보는?
박정자: 내년이면 60년이 된다. 아침에 일어날 때 계단 오를 때 버스, 지하철 탈 때 모든 순간이 정말 감사하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200% 감사하다. 나이 먹고 편안해지고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Q. ‘해롤드와 모드’를 더 할 생각은 없는지?
박정자: 어떤 사람은 90까지 하라고 한다. 이제 욕심이 없다. 가벼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사뿐하고 가뿐하게 ‘해롤드와 모드’는 이쯤에서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모습일 것 같다.

Q. 이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예정인가?
윤석화: 끊임없이 작품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표현되는 것이 가장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청년은 삶에 밀착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하거나 소외당한다. 해롤드가 모드를 만나면서 자기 자신을 회복하고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것은 엄청난 부조리극이다. 조화롭게 승화하는 것은 연기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작품 해석은 다른 문제다. 삶을 내려놓으려는 모드에게 오히려 해롤드는 삶을 발견하는 것이 아이러니고 부조리다.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이라는 끈을 회복하면 좋겠다. 동시대에 50~70대 사람들은 앞으로의 더 아름다운 인간을 꿈꿀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박정자: 배우 윤석화는 무대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연극 ‘나는 너다’를 연출하고 제작해서 무대에 올린 사람이다. 함께 많은 시간을 살아와서 감사하다.

윤석화: 박정자 80세라는 타이틀 때문에 부담도 있다. 내려놓으려고 굉장히 마음을 다지고 있다. 이 작품을 맡은 것은 박정자라는 배우와 윤석화 후배가 연극이라는 길 위에서 동지애, 연극 외에 아무 이유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 더 다가서고 관객에게 보여지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드가 하는 이야기 중에 “어쩌면 이렇게 달라졌을까,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이 대사는 연극을 향해 늘 함께 열정, 사랑, 연민으로 온 제가 박정자와 이 작품을 통해 가야 할 목표를 말한다.

박정자: 우리 둘 사이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생에 내가 윤석화와 어떤 인연인지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똑같은데 너무 다르다. 그게 장점이다. 너무 똑같으면 발전이 없다. 둘 사이는 편안해 보이지만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 (웃음)

연극 ‘해롤드와 모드’는 5월 1일부터 23일까지 대치동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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