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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in] 뮤지컬 ‘인터넷 데이팅’의 기품 있는 망가짐. 배우 장혜리, 엄마와 캐롤, 버그를 연기하다

                       

 

 

그녀는 배우처럼 보인다기 보다 우리의 학창시절에 등장할 법한 ‘무서운 선생님’ 같은 인상이다. 저 반듯한 턱선, 누구라도 잘려나갈 듯한 차가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단박에 상대방을 압도하는 그녀의 카리스마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는다. 그녀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역할은 과학자나 커리어우먼 같은 딱딱한 것들뿐이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배우 장혜리의 목소리는 더 가관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여자의 음성이 ‘중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토요미스테리’의 성우를 맡아도 무색할 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으로 깊게 깔려있다. 이러한 아우라를 가진 그녀이기에 통통 튀어 다니며 갖은 익살을 떠는 다른 배우들에 가려 그녀의 존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아마, 처음부터 그녀를 주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인터넷 데이팅’에서 주인공 제니의 엄마, 직장 상사인 ‘캐롤’ 그리고 인터넷 바이러스 버그(?) 역을 맡으며 ‘안면몰수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 3가지의 외로움을 관통하는 그녀의 캐릭터!

“80마리 물고기만 있다면 외롭지 않아”, 직장 상사 ‘캐롤’
그녀는 가장 먼저 주인공 ‘제니’가 다니는 회사의 상사로 등장한다. 너도 나도 연애 얘기로 수다스럽던 사무실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만 남을 뿐이다. 너도 나도 쉬-이 하자 혹시 내 험담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다. “무슨 일 있어?” 인터넷을 통해 여자 친구를 만든 회사 동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녀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콧방귀를 낀다. ‘다섯 마리의 강아지 그리고 이구아나와 80마리의 물고기면 전혀 외롭지 않다’는 그녀, 강아지 다섯 마리로도 모자라 80마리의 물고기로써 그 외로움을 달래는 고독한 솔로였다!

“연하도 상관없어요”, 제니의 엄마
인터넷 데이팅을 해보겠다는 딸 ‘제니’를 보는 엄마 장혜리의 시선은 우려로 가득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변태나 사기꾼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일 것이다. 도저히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나보다. 갑자기 무대에는 검붉은 조명이 깔리고 그녀의 표정은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한마디, “널 검색하겠어!” 대체 뭘 검색하겠단 소릴까? 자세히 들어보니 내 딸과 인터넷을 통해 만나는 ‘놈’들의 신원을 모조리 검색해주겠다는 강렬한 모성본능의 한마디였다. 이 밤이 다가도록 ‘놈’들의 신원을 모조리 검색하고 있을 제니의 엄마! 그러던 그녀도 딸을 쫓아 인터넷 데이팅에 빠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그 외로움을 달래기엔 밤이 너무 길었나보다. 그렇게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간 그녀의 자기소개서에는 남편과는 사별했고 딸년, 아니 딸아이는 독립했으며 중후한 남성을 원하지만 연하도 상관없다는 글이 적혀있다. 그렇다, 그녀는 연하도 상관없는 고독한 솔로였다!



사이버 세계의 고독한 방랑자, ‘버그’
또다시 그녀의 독무대가 펼쳐졌다. 관객들은 아마 ‘널 검색해준다던 사악한 엄마 버전이 다시 나왔나?’했을 것이다. 헷갈리고 있는 관객들을 위한 그녀의 친절 서비스, “아직도 내가 엄마인지 버그인지 모르겠지, 하지만 난 버그야.” 그렇다. 그녀는 다름 아닌 ‘버그’였다. 이것을 단순히 외국식 이름이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터넷 데이팅’에 등장하는 ‘버그’란 밀레니엄 ‘버그’할 때 그 ‘버그’를 말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소재로 한 작품이니만큼 그 등장인물도 생소했다. 난데없는 ‘버그’의 등장, 관객들은 이 황당한 출연에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버그’는 과연 어떤 역할일까? 그녀는 사방에서 날아든 이메일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디지털계의 해충이었다. 이 얼마나 고독한 설정이던가? 홀로 사이버 세계를 둥둥 떠다니며 아무 메일이나 탐식하고 있을 저 ‘버그’의 모습은 고독 그 자체이다. 나중에는 사이버수사대에게 잡혀 그 생을 마감하는 ‘버그’, 그녀는 진정 바이러스의 행렬 같은 고독한 솔로였다!

그녀가 내뱉는 개그는 기품 있다. 그녀는 막춤을 출 때도, 섹시한 댄스를 출 때도, 괴팍한 표정을 지을 때도 모두 기품 있게 망가진다. 설사 그녀가 저 바닥까지 망가지며 당신을 웃겼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놓지 말자. 그녀는 또다시 정색을 하며 당신을 조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쉽게 웃어도 쉽게 진지해져서도 안 된다. 무표정으로 굳어진 차가운 얼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반전의 코믹연기, 그녀를 보는 관객들은 ‘웃기다’기 보다 ‘골 때린다’는 반응을 내보인다. 그렇다. 그녀는 정말 골 때린다. 관객들은 어느덧 그녀만 등장했다하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내비치며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연기 잘 하는 배우란 무엇일까? 자신이 반짝 반짝 빛이 나면서도 다른 상대 배우역시 빛나게 해주는 배우가 아닐까? 장혜리가 그러하다. 그녀의 독무대에서 그녀는 한 없이 빛난다. 한 없이 웃기며 한 없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과 함께 등장할 때 그녀는 있는 듯 없다. 딱히 거창한 리액션도 유쾌하게 받아치는 대사도 없이 무대 한 귀퉁이에서 자기 역할만 다 할 뿐이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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