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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카이의 선한 카리스마, 린아 애절함 빛났다2021년 3월 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세상을 정의로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던 자가 그 믿음의 근간을 잃어버렸을 때, 과연 정의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시작부터 생생한 영상미로 객석을 사로잡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결국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짜릿한 복수의 반전 스토리와 다시 태어난 듯한 주인공의 카리스마적 변신이 ‘몬테크리스토’를 널리 알린 표면적 재미라면,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순수한 선(善)이 어떤 방식으로 악(惡)을 수용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어떤 풍랑에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에드몬드의 태생적 선함과 메르세데스의 순수한 애정이야말로 작품 내내 어둔 하늘을 수놓고 있던 별빛과도 같은 가치다.

사랑으로 귀결되는 ‘순수 로맨스극’의 감동

뮤지컬로 극화된 ‘몬테크리스토’는 복잡한 서사와 에피소드를 다수 생략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에드몬드와 메르세데스의 순수하고도 낭만적인 로맨스다. 극은 지하 감옥에 갇혀 좌절하는 에드몬드와 마을에서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 메르세데스의 모습을 한 무대에서 중첩시키며 원작 소설보다 한껏 더 둘의 감정선을 긴밀하게 엮어낸다. 1막의 이별 상황에서 부르는 듀엣곡 ‘언제나 그대 곁에’가 2막 마지막에 리프라이즈되는 구성도 두 사람의 사랑으로 귀결되는 로맨스극의 감동을 잘 보여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복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는 메르세데스와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어린 커플 알버트와 발렌타인이 둘을 대신해 과거 순수했던 사랑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알버트를 살리기 위해 뛰어든 발렌타인의 대사 “사랑은 베푸는 사람에게 이루어지잖아요.”가 메르세데스가 했던 말과 똑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복수를 다짐하는 몬테크리스토의 서슬 퍼런 “아멘”역시, 과거 그의 간절한 무사귀환을 바라던 메르세데스의 간절한 기도 “아멘”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강렬한 인연은 작품 속에 내내 암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막 후반부, 결국 몬테크리스토가 복수 대신 용서를 택했을 때 그는 평온한 자신의 삶과 가족을 되찾는다. 악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 복수보다는 놓아주는 것, 그리고 끝까지 변하지 않고 선한 것들의 가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작품의 결말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달된다.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돌아온 백작의 복수는 물론 짜릿했지만, 따지고 보면 악은 스스로 자멸한 셈이다. 내면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타인에 대한 악의가 그들을 덫과 절벽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카이의 선한 카리스마, 린아의 애절함 빛나

2016년도 이후 두 번째로 무대에 선 카이는 우아하고 올곧은 중저음으로 전반부 ‘메르세데스’의 선원 시절부터 빛을 발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가진 특유의 선한 에너지와 올곧은 음색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변한 후에도 그가 잃어버리지 않은 내면의 선함을 표현하는 듯했다는 점이다. 요약된 서사 속에서도 복수의 내적갈등이나 메르세데스에게 흔들리는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이 작품의 에드몬드와 몬테크리스토는 약으로 완전 다른 인격이 되어버리는 지킬과 하이드와는 결이 다른 이중성이다. 그런 점에서 카이의 선한 카리스마는 극 전체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일관된 본성으로 결말에 이르는 감정선의 변화까지 충분히 납득시키는 힘이 있었다.

역시 2016년 이후 두 번째로 메르세데스로 분한 린아의 연기는 객석의 가슴을 크게 울렸다. 그녀는 오직 한 남자만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믿으며 기쁨과 슬픔, 사무치는 그리움과 애절한 재회의 심경까지 다양한 감정선을 격정적으로 넘나들었는데 특히, 1막의 ‘기도’, ‘아무 소식 없는 건가요’의 그리움에 사무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후 2막에서 ‘세월이 흘러’를 부르는 회한에 찬 부르짖음은 그녀의 맑고 강인한 음색과 만나 폭발하는 듯한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메르세데스의 아름다운 의상 또한 눈길을 사로잡았다. 초반의 새하얀 드레스는 마치 천진난만한 줄리엣을 연상시켰고, 후반의 녹색드레스는 상처 끝에 성숙해진 스칼렛 오하라를 떠오르게 했다. 긴 세월에 걸쳐 에드몬드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과 깊은 모성애로 이어지는 그녀의 강인한 본성은 린아의 성숙한 연기, 아름다운 의상과 만나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듯했다.

화려한 무대 연출과 앙상블의 다채로운 합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화려한 연출과 앙상블의 다채로운 합으로도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모차르트!’,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등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구윤영 조명디자이너와 송승규 영상디자이너가 이번에도 나란히 합류해 곳곳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지하감옥의 무대미술이나 탈출 장면의 생생한 영상, 보물이 가득한 동굴의 화려한 공간 연출은 원작이 가지는 극적 지점들을 드라마틱하게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원작팬들에게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안겨주었다.

또한, 해적선이 등장할 때와 같은 바다 장면에서 영상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앙상블의 웅장한 합창은 모험활극적인 분위기와 함께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그밖에도 곳곳에서 앙상블이 활약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는데, 지하감옥에서의 칼싸움 신이나 가짜 주식회사인 ‘LERROM’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신은 장면의 역동성을 잘 살려내 연출과의 합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원조 복수극’으로 명성이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결말을 알고 봐도 빛을 잃지 않는다. 화끈하게 해적선을 이끄는 여선장 루이자나, 적에서 친구이자 동료가 되는 자코포의 충직한 매력, 깊은 내공과 유머러스함을 모두 갖춘 인생 스승 파리아 신부까지. 뜯어보면 매력적인 캐릭터가 극중에 넘쳐난다. 천방지축으로 보이는 순수청년 알버트와 몬테스리스토가 선보이는 짧은 케미도 결말의 반전을 알고 본다면 더욱 흐뭇하게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이 된다.

다채로운 볼거리와 원작을 재해석해낸 캐릭터들의 연기는 올해 10주년을 맞은 ‘몬테크리스토’를 단순히 복수극으로 평가하기엔 아깝게 만든다. 원작의 명성을 그대로 녹여내려 애쓴 이 작품 속에는 빠른 전개와 짜릿한 복수의 쾌감도 있지만, 낭만적인 로맨스극의 요소와 뜨거운 혈육애, 스릴 넘치는 모험활극이 모두 녹아 있다.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관객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이 작품의 비결에는 바로 그런 다채로움이 있는 게 아닐까.

사진 제공_EMK 뮤지컬 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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