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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잔인한 연극, 그보다 더한 현실을 비추다9월 6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현실은 때론 연극보다 더 잔인하다. 아무도 차지하지 못한 금고의 열쇠처럼 허망하지만 부조리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수도 있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엘레나의 생일날 새벽, 발로쟈, 빠샤, 비쨔, 랄라 네 명의 학생이 엘레나의 집에 찾아간다. 졸업을 앞둔 이들은 엘레나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꽃과 선물을 전달하며 생일을 축하한다. 새벽부터 찾아온 학생들은 단순히 축하만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졸업 후 미래를 언급하며 걱정하는 이들은 졸업시험 점수를 위해 엘레나에게 답안 보관 금고의 열쇠를 요구한다.

언제나 학생에게 바르고 올바른 길을 인도하는 엘레나는 당연히 열쇠를 주지 않는다. 발로쟈를 필두로 학생들은 엘레나를 설득하고 어르고, 비난하더니 마침내 폭력까지 서슴치 않는다.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열쇠를 뺏는 과정은 일대다(一對多)가 취하는 폭력,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언어를 통해 정신적으로 더하는 폭력까지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품 속 폭력은 한 사람에게만 취해지는 것이 아닌, 가해자까지도 무너지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청소년에 대한 극을 써 달라는 구소련 정부의 요청으로 ‘류드밀라 라주몹스까야’가 집필했으나 1981년 초연 직후 구시대의 몰락과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를 그린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의뢰한 정부에 의해 공연이 금지됐다. 이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방정책인 ‘글라스 노트’의 영향으로 1987년부터 재개되었다. 2020년, 한국에서 이 극이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지금의 관객이 판단할 부분이다. 인물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삶에 있어 진정한 양심의 척도는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가’, ‘도덕은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도덕, 양심, 선과 악 등은 시대를 관통하는 고민거리다. 이 시대에도 충분히 토론해 볼 만한 주제이지만 폭력의 전시가 꼭 필요한 점인지는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학생 중 유일한, 홍일점인 랄랴의 비중은 초연보다 커졌지만, 결국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폭력을 당하는 모습은 좌절감을 안기기도 한다.

초연보다 좁아진 세트는 인물의 밀집도가 높아지며 더 집중력을 높였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구분된 구역들 너머 이야기의 주체가 되지 않는 인물들의 표정까지 두루 살피게 된다. 인물들은 경계를 철저하게 구분하지만, 목적을 달성한 발로쟈는 보이지 않는 벽 너머 객석을 향해 “이 긴 역사 속에서 너희는 어떤 인간으로 남아야 할지 잘 생각해보라고”라고 말한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배우 정재은, 우미화, 양소민, 김도빈, 박정복, 강승호, 김현준, 오정택,최호승, 김효성, 김주연, 이아진이 출연하며 오는 9월 6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윤현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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