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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평범한 소년이 제왕이 되기까지, 뮤지컬 ‘엑스칼리버’소년 아더 ‘김준수’의 격정적 성장기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가장 드라마틱한 운명을 부여받은 한 인간의 격정적인 성장기다. 소년 ‘아더’는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한 종족을 책임지는 제왕의 길을 가야하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고, 혈통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용의 불길(통제할 수 없는 분노)과 싸워야만 한다. 1막에서 2막으로, 소년에서 제왕으로 방황과 갈등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가며 수많은 조력과 깨달음을 통해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한 영웅담과는 다른 의미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날 때부터 완벽한 영웅도, 당연하게 모두의 사랑과 신뢰를 얻어내는 영웅도 아니다. 의심과 질책, 시기와 모함 속에서 자신의 결점과 일일이 마주하며 나아가는 불완전한 영웅이다. 그런 방식으로 뮤지컬 ‘엑스칼리버’의 서사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의 방황이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용, 주술, 종족 간 전투… “고대 전설의 판타지적 부활”

이 작품의 특별함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무대의 스케일과 고대 전설의 판타지적 재현이다. 장면의 곳곳에서 특유의 무대 배경이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규모와 섬세함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몰입감이 높다. 고대 숲 속 마을인 카멜롯의 신성함과 색슨족에 의해 파괴되는 수도원의 불길, 펜드라곤 성의 웅장한 내부 등은 다양한 분위기의 전환으로 드라마틱한 서사를 완성한다. 특히, 모르가나의 주술로 용이 깨어나는 장면, 아더가 내면의 용과 대면하는 장면 등은 파격적인 영상과 음악의 매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타의 작품이 스크린을 활용해 영상을 입히는 것과 달리 배경 그대로에 영상을 입히는 방식으로 고대 주술적인 느낌을 살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작품 속 음악에도 주목할 만하다. 다른 작품에서는 들을 수 없는 특유의 켈틱한 음악과 강렬한 록비트, 타악기의 변주가 신비한 분위기부터 스릴과 공포감, 원시적인 느낌을 살리기도 했다. 자연의 신성함이 가득한 카멜롯 마을에서는 플롯 중심의 켈틱한 음악이 서사를 이끌었다면, 색슨족의 등장과 전투 신에서는 강렬한 붉은 조명과 타악기를 활용한 비트감 있는 음악이 긴장감을 높였다. 작곡에 참여한 프랭크 와일드혼이 “이 작품에서 플롯과 드럼 등이 만들어내는 켈틱한 사운드는 그 시대로 우리를 데려간다”고 평가한 것을 실감케 했다.

김준수의 ‘아더’, 소년의 해맑음부터 제왕의 고뇌까지
- “왕이 된다는 것”, 감정연기 몰입도 높아

처음 작품의 컨셉과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김준수의 아더 왕 캐스팅은 내심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간 독특한 캐릭터 소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였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강인한 아더왕 역할에 그의 여린 이미지가 맞지 않는 낯선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른 아더는 평범하게 해맑은 소년이었다가 가혹한 왕의 운명을 강요받고 힘겹게 자신의 운명과 싸워나가는 성장형 캐릭터였기에 오히려 김준수의 캐스팅이 적격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반 고음 위주의 곡이 다소 힘겨워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깊어진 저음부는 전과는 다른 단단하고 힘 있는 음색을 새로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의 운명을 맞닥뜨리는 1막의 ‘난 나의 것’이나 2막 아버지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심장의 침묵’은 섬세한 표정 연기와 격정적 동작, 호소력 짙은 음색이 어울려 몰입도 높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방황과 좌절 끝에 다다른 ‘아더’의 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2막 후반 넘버 ‘왕이 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곡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엑스칼리버’의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대 전설을 각색한 서사에서 왕의 분노는 평범한 인간의 감정이 아니다. ‘용의 불길’이라는 선천적인 결함인 동시에 잘 다스리면 나라를 창조적으로 이끌어갈 ‘용의 숨결’이 되는 양면성의 무기다. 왕의 딸인 모르가나는 이 ‘용의 불길’을 다스리지 못해 파멸하는 인물이지만, 똑같은 ‘용의 불길’을 가졌지만 끝내 아더는 용서와 절제를 배워 진정한 왕으로 거듭난다.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오히려 쉽지 않기에 그의 마지막 승리에 더욱 감격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아더 왕은 당연히 주어지는 성공이나 승리가 아닌, 의지와 용기를 통해 힘겹게 깨우쳐가는 한 인간의 성장을 보여준다. 홀로 무대를 채우며 ‘왕이 된다는 것’을 부르는 김준수는 청년기를 지나 어느새 뮤지컬 배우로 우뚝 선 그 자신의 모습과 묘하게 중첩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연과 욕망 저마다 다른 개성적 캐릭터들
- 악역에도 공감, 비극적 서사에는 치밀함 아쉬워

이 작품은 주인공 ‘아더’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사연과 욕망으로 객석의 공감을 사는 데 성공한다. 악역 ‘모르가나’는 이복 동생 아더에게 자신의 지위와 사랑을 모두 빼앗기고 깊은 상처를 입은 인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나 사랑하는 멀린 모두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특히 ‘모르가나’를 연기한 신영숙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더욱 캐릭터를 돋보이게 했다. ‘모르가나’의 대표 넘버 ‘아비의 죄’는 강렬한 록사운드와 신영숙의 능숙한 가창력이 만나 압도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이 넘버는 작품 전체에서 객석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가장 뜨겁게 터져나온 명장면이기도 했다.

신비로운 캐릭터 ‘멀린’은 아더에게 운명을 부여하고 그를 왕으로 이끌어주는 조력자 역할이다. 그 신비한 분위기와 역할만으로 고대 전설을 되살려낸 작품의 매력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멀린’이 ‘모르가나’와 함께 페어를 이룰 때는 그 애증의 관계와 함께 대립구도가 극명해지며 둘의 이중창이 짜릿한 쾌감마저 안겨준다. 이 밖에도 검의 선택과 기네비어와의 사랑을 모두 차지하게 된 아더를 그림자처럼 지켜보며 자신의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 ‘랜슬롯’이나, 진취적인 가치관을 가졌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기네비어’가 그리는 비극적인 서사도 매력적이다. 다만 둘의 배반이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막장서사가 아니라, ‘모르가나’의 흑마술과 아더의 ‘용의 불길’이 만나 빚어진 개연성 있는 비극임이 더 강조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때로는 웅장한, 때로는 절절한 넘버들
- ‘검이 한 사람을’, ‘눈에는 눈’, ‘오래전 먼 곳에서’

이 작품의 넘버들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 대규모 앙상블을 동원해 어떤 신화적 비장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아더가 ‘엑스칼리버’를 뽑아들자 민중들이 환호하며 부르는 ‘검이 한 사람을’은 앙상블에 극적인 조명 연출과 웅장한 바위산의 무대 장치가 더해져 신성한 신화적 비장미를 만들어낸다. 강렬한 선율과 반복적인 가사, 여러 번의 리프라이즈로 제대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넘버로는 색슨족이 이끄는 ‘눈에는 눈’이 있다. 관악기의 긴장감 있는 연주가 스릴감을 주는 데다가 “살이 썩어 흙이 되리 검은 영혼 길을 잃었네”의 가사 반복이 관객의 귓가에 중독적으로 달라붙는다.

가장 행복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에 동시에 등장해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곡도 있다. ‘오래전 먼 곳에서’는 2막 시작, 아더와 기네비어의 결혼식 장면에서 사랑에 빠진 둘의 표정과 함께 아름다운 만남과 영원을 맹세하는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작품의 후반 둘이 가슴 아픈 이별 끝에 재회한 후 부르는 비극적 노래로 변주되기도 했다. 결혼식 때 부른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기억한다면 이별 장면에서 같은 곡이 들려오는 순간 두 인물의 비극적 운명에 공감하며 슬픈 감성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이 장면에서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넘버의 변주를 가장 아름답고도 극적으로 해낸 곡으로 손꼽을 만하다.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화려하고도 장엄한 무대의 스케일이나 액션과 전투신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일리쉬 선율과 플롯, 드럼을 활용한 켈틱한 사운드, 고대 신화적 영웅담을 새롭게 재해석한 서사도 독특한 지점이라 할 만하다. 다만, 대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축약과 장면의 극대화로 강약조절이 더 필요해 보이고, ‘엑스칼리버’ 하면 떠올릴만한 강렬한 절정의 포인트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인공 아더는 물론, 다양한 매력적 캐릭터를 등장시킨 만큼 그 매력을 살리기 위한 치밀한 서사와 연출의 수정도 더해지길 바란다. 액션은 더 액션답게, 영웅은 더 영웅답게, 악역을 더 악역답게 돋보이게 하는 것. 관객이 기다렸다 환호할 만한 지점을 만드는 것은 대중예술인 뮤지컬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역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합심한 만큼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초연 무대를 보여줬다. EMK는 뮤지컬 ‘웃는 남자’에 이어 이번 ‘엑스칼리버’로 국내 창작뮤지컬의 세계적 성공 가능성을 또 한 번 입증한 듯하다.

사진제공_EMK 뮤지컬 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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