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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발자국 소리에 일상에서 깨어나다, 홍신자의 ‘고도를 기다리며’

 

지난 7월 3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안무가 홍신자의 ‘고도를 기다리며’공연이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용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댄스드라마이다.

이번 춤극 홍신자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 현대무용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안무가 홍신자가 데뷔 35년을 기념하여 준비한 공연이다. 홍신자는 지난 35년 동안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 속 인물들인 에스트라공(고고)나 블라디미르(디디)처럼 “세상의 모든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누구 혹은 무엇이며 언제 올까?”라는 의문과 함께 절대자 고도를 기다려 왔다고 한다. 그러한 그녀는 35년간의 춤과 명상의 인생을 이번 공연을 통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삶에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단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이제 인생의 완연한 황혼에 접어든 안무가 홍신자가 준비한 인생의 파노라마는 어떻게 펼쳐질까하는 관객들의 기대감 속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암전이 걷히며 안무가이자 명상가로서 담백하게 살아왔던 홍신자의 지난 세월을 반영하는 듯한 단촐한 무대가 드러났다. 무대 위에는 항아리 속에 몸을 묻은 나무 한 그루, 하얀 천이 커버처럼 씌워진 미니멀한 침대가 놓여있었다. 잠옷을 연상시키는 온몸을 감싸는 흰 원피스를 입은 홍신자는 자신의 작은 체구가 꼭 알맞게 차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막 깨어난 아이처럼 몸을 뒤척이던 그녀는 한 손에 강아지풀을 들고 자신의 몸 곳곳을 문질렀다. 그 동작이 일흔을 바라보는 무용가의 몸짓이라고는 믿기 佇좆� 만큼 천진하고 순진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관객들은 놀라운 표정으로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무언의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이어 영롱한 실로폰의 맑고 단조로운 연주가 들려오고 관객들은 저마다 순수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구두 속에 담긴 걸음
침대 위에서 내려와 세상을 탐색하듯 무대 위를 서서히 누비던 홍신자의 발걸음이 주술적인 느낌의 북소리와 함께 빨라졌다. 무대 중앙에는 각기 서로 다른 용도로 쓰이는 네다섯 켤레의 구두가 한데 엉켜 있었다. 무릎을 꿇은 그녀가 아이를 안듯 조심스런 팔 동작으로 그 구두들을 감싸 안았다가 다시 바닥으로 ‘쿵’ 떨어뜨렸다. 홍신자는 구두 무더기 속에서 빨간 하이힐을 꺼내 신고 입고 있던 치마를 걷어 올리며 골반을 흔들며 걷기도 하고, 자신의 어깨까지 올라올 만큼 긴 신발끈이 달린 신발을 등 뒤로 질질 끌며 계속해서 무대 위를 돌았다. 돌고 도는 인생을 상징화한 듯한 그녀의 걸음은 구두들과 함께 인간 홍신자의 여성으로서의 삶, 순례자로서의 삶을 보여주며 무대 위에 진한 잔영을 남겼다.

에고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 가지 불안한 사회 현상들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 요인을 외부적인 환경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빠르게는 인간 내면세계의 주인인 자아, 바로 에고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에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불확실한 자신을 응시하며 치열하게 에고를 향한 방랑의 길을 걸었던 홍신자는 한 남자의 기나긴 독백이 울리는 무대에 앉아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죽음. 우리가 죽으면 몸도 사라지고 에고는 사라지는 것 아닌가?”, “불확실한 나를 불안해하는 또 다른 나 아닌가?” 라는 자조적인 음성의 남자의 목소리 속에서 관객들은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믿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무가 홍신자는 무대 천정에 매달려 바닥까지 늘어져 있는 밧줄을 모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밧줄을 ‘악’ 물었다가 바닥에 흩어 놓으면서 급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하고 터지며 고요한 극장을 가득 메웠던 홍신자의 너털웃음은 공연의 종료를 알렸다. 홍신자의 댄스드라마 ‘고도를 기다리며’는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었던 ‘장자의 꿈’ 일화처럼 묘한 여운을 남기며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발걸음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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