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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공포스러운 움직임, 리을무용단의 ‘귀신이야기’

 

‘귀신’이라는 소재를 무용극에 도입하며 신선한 공포바람을 몰고 왔던 리을무용단의 제23회 정기공연 ‘귀신이야기’가 지난 6월 21일과 22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최근 다양한 소재와 표현방식을 취한 창작 무용공연이 각광받으며 무용 인구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가운데 ‘귀신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철학적으로 조명해왔던 이희자가 안무를 맡았으며, 무자비한 폭력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세상과의 끈마저 놓은 여인들의 삶을 귀신의 도입을 통해 처연하게 관망하는 작품이다.

소스라침의 스타트
“공포물 영화나 드라마는 넘쳐나는데 무용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무용에도 공포적 드라마를 끼워 넣고 싶었다”라며 작품의 의도를 밝힌 이희자 안무자의 계획대로 이 작품은 공포적 카타르시스와 함께 출발했다. 무대 오른쪽에는 흰 벽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 뒤돌아 서있던 한 여자가 돌연 그 아래로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객석 여기저기에서 ‘흠칫’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벽 옆에 놓여있던 대형 스크린에서는 머리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섬뜩한 여인의 영상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관객들은 아까보다 더 크게 놀랐다는 듯, 훨씬 거세진 ‘흠칫’ 소리를 뿜고 있었다. ‘시꺼멓다’라는 표현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을 만큼 검디 검었던 그 여인의 머리는 이내 동양적 신비로움에 휩싸인 수묵풍의 나무그림으로 변해갔다. 스크린과 벽 사이로 얼빠진듯한 무용수들이 촘촘히 걸어나올 때까지 그 영상은 계속되었고 관객들은 마치 비밀의 저택을 모험하는 어린아이처럼 점차 ‘귀신 이야기’가 방출하는 공포의 음습함 속으로 몰입되어 갔다.

잿빛 사이로 번진 피
공연 내내 무용수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으며 그들이 입고 있던 회색 빛의 의상은 더욱 그 생기를 앗아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꺾고, 비틀고, 누워서 꿈틀대는 생명력 없는 동작들은 진정 귀신을 연상케 만들었다. 이러한 표정과 몸짓, 의상으로 인해 무대 위의 분위기는 퍼석퍼석 떨어지는 담뱃재처럼 생기 없는 ‘잿빛’을 연출하고 있었다. 극의 중간, 마치 귀신처럼 기괴한 몸짓으로 춤을 추던 무용수 사이로 임신을 한 듯 배가 부른 여자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펑……. 춤을 추던 무용수는 돌연 임신한 여인의 배를 머리로 박았고, 그 여인의 배는 ‘펑’ 하고 터지며 가랑이 사이로 피를 쏟아냈다. 이 효과적인 무대 연출과 소품의 사용은 잿빛으로 물들었던 무대를 금세 시뻘건 피로 덧씌우며 극의 공포스러움을 정점으로 몰아갔다. 처음 관객들은 ‘저 피가 무엇일까?’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아마도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그 피 같은 아이를 잃었나 보다’라는 생각과 함께 깊은 동정과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기괴함의 나열
극의 후반부, 영상에서는 올챙이 알 같은 눈알들이 오밀조밀 진동하고 있었고, 네 명의 무용수들은 그 앞에 서서 연신 몸을 비틀어댔다. 또 그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무대 왼쪽에서 한 무용수와 그 뒤를 따르는 신발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무용수 발에 안 보이는 실로 묶여 있어 마치 귀신이 그녀를 쫓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기묘한 영상, 무용수들의 비틀거림, 적막함 속에 걷고 있는 신발은 저마다 무대 위의 한 공간을 차지하며 그로테스크한 장관을 표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중간중간에는 기괴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연출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는데 무대 끝과 끝까지 머리를 늘어뜨린 소녀의 흔들거리는 춤, 높은 벽 위에서 아래로 점핑하기, 붉은 조명과 붉은 영상들이 그것이었다. 이 기괴한 장면들이 사이사이 나열됨으로써 귀신이야기가 뿜는 공포스러움은 더욱 고약한 피 냄새를 풍기는 듯 보였다.

리을무용단의 작품 ‘귀신이야기’는 ‘귀신’이라는 한국 고유의 캐릭터를 재해석하면서 현대와 전통을 이었고, 더욱이 무용이라는 장르와 연계시키면서 무용을 고단하게 생각했던 관객들에게 ‘공포’를 통해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귀신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였던 귀신의 모습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으며, 그것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상처받은 영혼 모두를 이르는 듯 보였다. 그러하기에 귀신은 발이 없고, 소복을 입고, 피를 흘린다고 해서 귀신이 아니라 나, 혹은 너……. 우리의 잠재된 의식 속에 머물고 있는 상처와 고통의 기억이 형상화된 이름, 그것이 ‘귀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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