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멎을 정도로 아찔하게 밀착되어 있는 두 남녀. 두 손을 꼭 잡은 남녀 무용수는 가슴을 맞대고 다리를 교차시키며 스텝을 옮긴다. 킬 힐만큼 높고 뾰족한 굽에 의지하여 한 쪽 다리를 재빠르게 휘어 감는 여성 무용수와 그녀가 지탱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남성 무용수가 조화를 이룬다.

지난 10일부터 5일간 충무아트홀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뜨거운 탱고의 유혹에 넋을 잃었다. 일반 대중에게 탱고는 영화 ‘여인의 향기’, ‘해피 투게더’등을 통해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춤이었다. 입에는 붉은 장미를 문 채 이성을 유혹하는 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탱고 시덕션’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탱고는 예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프랑스, 오스트리아, 그리스, 브라질, 노르웨이, 벨기에 등 유럽 전역과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의 관객을 매료시키고 탱고 역사상 가장 관능적인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만큼 현란한 테크닉과 세련된 기교로 탱고를 예술의 경지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한 작품이 ‘탱고 시덕션’이다.

명성만으로도 신뢰를 얻는 이름, 구스타보 루소

세계적인 탱고 스타 구스타보 루소가 내한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탱고 대회에서 최고의 상인 ‘에스텔라레스 델 마르(Estelares Del Mar)’를 7년 연속 수상하였다. 1992년 ‘탱고 패션(Tango Passion)’을 시작으로 브로드웨이와 프랑스, 오스트리아, 그리스, 노르웨이, 벨기에 등 유럽에 탱고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수려한 외모와 남성미 넘치는 체격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탄성을 자아낸다. 흡사 재즈댄스인지 탭댄스인지 모를 동작들을 구사하며 풍부한 표정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이끄는 무용수들 또한 현란한 테크닉과 세련된 절제미를 보여준다.

탱고의 모든 것을 담아낸 구성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어두운 무대 위에 푸른 조명이 지고 6명의 커플이 ‘라 쿰파르시타(La Cumparcita)’에 맞추어 기선을 제압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구스타보 루소와 그의 파트너 사만다 가르시아가 아찔한 춤을 보여준다. 춤이 끝나는 찰나, 무대는 암전되고 새로운 공연이 시작된다.

‘탱고 시덕션’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19세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선술집을 배경으로 사회적 상황을 묘사한다. 매춘부와 술주정뱅이들이 벌이는 코믹한 에피소드를 통해 탱고의 기원을 보여준다. 비틀거리면서도 여인의 손을 놓지 않는 남자, 질투에 눈이 멀어 실랑이를 벌이는 여자, 한쪽다리가 불편한 신사마저도 탱고를 즐긴다.

두 번째 장은 탱고 클래식(Tango Classics)으로 고품격 쇼를 선보인다.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반주와 가수의 노래의 맞추어, 각 커플은 장기를 선보인다. 특히 여성무용수들의 화려한 발 기교가 주목을 끈다.

남성의 주변을 원형으로 도는 히로(Giro), 한쪽 발로 플로어에 원을 그리는 라삐스(Lapiz) 는 짧은 순간 매우 빨리 이루어진다. 남녀가 밀착되었을 때 여성은 한쪽 다리로 다른 다리를 감아올리는 볼레오(Boleo)를 선보인다. 남성의 다리를 자신의 허벅지와 종아리로 재빠르게 걸었다가 놓는 간초(Gancho)는 단연 탱고의 묘미이다. 발레동작을 보듯 유연하게 다리를 스트레칭 시켜 아슬아슬 균형을 잡는다.

세 번째 장은 본격적인 탱고 시덕션(Tango Seduction)이다. 전통적인 탱고에서부터 발레, 모던댄스,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공연을 선보인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도 스텝을 놓치지 않는 남자, 거울이 놓인 연습실에서 또 다른 자아와 춤을 추는 남자, 질투와 배신, 그리움과 사랑으로 얼룩진 커플들의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이어진다. 각 에피소드에 흐르는 다양한 느낌의 음악들이 퍼포먼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19세 관람불가, 가혹한 관람 등급

탱고를 즐기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19세 등급에 다소 당황했다. 공연작품이 이러한 등급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에 의문을 더해갔다. 이는 작품의 후반부,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몇 장면 때문이었다. 질투에 눈먼 남자의 폭행, 여자의 권총살인 등 다소 무거운 내용이 다루어진다.

그 중 마지막 10분이 가장 강렬하다. 주역 무용수인 구수타보 루소와 사만다 가르시아가 상반신을 노출한 채 아슬아슬한 춤을 춘다. ‘탱고 시덕션’의 하이라이트인 이 장면은 아르헨티나의 밀롱가에서 1930~40년대 초반 유행하던 '누드탱고'에서 착안한 것이다. 보일 듯 말 듯 어두운 조명 아래 두 무용수는 탱고 공연 역사상 가장 관능적인 공연을 선보인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노출은 예술이다. 외설적이지 않은 노출에 19세 관람불가라는 등급은 다소 가혹하게 느껴진다.

라이브 탱고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남녀 무용수의 교감이 어우러져 숨 막히는 예술을 만들어 낸다. 대중에게 친숙한 아티스트인 피아졸라의 음악이 공연 전반에 흐른다. 익숙한 선율과 박자에 관객들은 친밀함과 동시에 색다름을 경험한다.

객석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두 환호하던 그 순간, 그들이 얼마나 탱고에 목말라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먼 나라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바다건너 한국 관객과 만나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홍애령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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