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여름 밤의 꿈’을 선보인 후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09)’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해 이탈리아 국립 아떼르발레또 무용단이 다시 한 번 한국을 찾았다. 특히 지난 15일 공연된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발레단의 ‘라디오와 줄리엣’과 같은 소재로 창작된 작품이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양한 예술장르가 혼합된 무대
‘라틴계의 윌리엄 포사이드’로 주목받는 안무가 마우로 비곤제티의 연출이 돋보인 무대였다. 감각적인 움직임, 음악, 미술, 조명 등이 조화를 이루어 웅장한 무대를 탄생시켰다. 유수의 예술장르별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비곤제티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이러한 종합예술적 면목을 보여주었다. 클래식과 모던을 넘나들며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과 파브리치오 플레시의 비디오 아트가 겸비된 무대 디자인이 작품의 예술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현대적 감각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줄이고 이미지만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다소 상징적인 무대로 이루어졌다.

육체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 춤
암전된 무대 위에 남성 무용수의 상반신이 보인다. 그동안의 연습을 짐작케 하듯 온몸을 휘감은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강한 남성미를 보여준다. 점차 무대가 밝아졌을 때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의 왼발은 검은색 헬멧을 끼운 채 중심을 잡고 있었다. 왼발을 쿵쿵거리며 지지하여 아슬아슬하게 발레동작을 취해본다. 남성 무용수의 뒤를 가로막았던 검은 막이 치워지자 6명의 남녀무용수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흰색 판 위에 누워있다. 편안한 안식을 취한 듯, 혹은 묘지에 안장된 시체를 보는 듯 오묘한 기운을 뿜는다. 이들을 뒤로 한 채 남성 무용수는 헬멧을 끼운 왼발을 활용하여 균형동작을 선보인다. 운명에 발이 묶여버렸으나 그것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발버둥치는 동작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동작과 지휘에 따라 흰색 판 위에 누워있던 남녀무용수들도 격렬하게 꿈틀거린다.
이탈리아 국립 아떼르발레또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클래식발레작품을 넘어서서 인간의 신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무용수들은 살색과 검은색의 짧은 팬츠와 상의만을 입고 맨발로 발레의 모든 테크닉을 소화한다. 검은 헬멧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때론 결투를 신청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며 남성무용수들의 발을 옥쥐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안무는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졌으며 18명의 남녀무용수들이 캐논동작을 하기도 한다. 특히 남성 무용수들은 온몸을 사용하여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스파르타 전사들의 건장한 모습을 연상시키며 남성미를 보여주는 도약동작과 회전동작을 보여주었다. 여성 무용수들이 한명씩 달려와 안기는 장면도 반복적으로 등장하였다. 각각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순차적인 파드되(pas de deux, 남녀무용수의 2인무)를 선보였다. 아크로바틱한 기예 수준의 스트레칭과 아찔한 높이의 리프트(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가 이어져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무대세트의 극적인 등장
작품의 초반부에는 황금빛 금속성의 환풍기형 구조물이 등장한다. 고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발코니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였다면 현대의 그들은 대형 환풍기 앞에서 관능적인 춤을 춘다. 남녀무용수들은 그 둥그런 공간 속에서 서로의 몸을 받치고 밀어내면서 인간의 신체가 지닌 무한한 표현성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종반부에 남녀무용수는 붉은 석양을 뒤로하고 거대한 폭포 모양의 구조물을 오르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반대편에서 바라보며 그리워한다. 태고의 에덴동산에서 결별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연상된다.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검은색 하트모양으로 비춰진다. 비디오 아티스트 파브리치오 플레시가 연출한 영상이 폭포모양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작품의 곳곳에는 극적인 찰나를 연출하는 무대세트가 활용되었다. 육감적이며 관능적인 움직임과 더불어 상징적인 구조물의 조합은 매우 웅장했다.

많은 이들의 갈채를 받으며 거듭된 커튼콜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끝으로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09)’도 막을 내렸다. 다양한 시각으로 새로운 작품을 갈구하는 관객들에게 오감을 충족시키는 무대가 아니었나 생각하며, 우리의 무용공연에서도 이러한 섬세한 연출과 대담한 표현들이 자주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홍애령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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