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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암흑 속에서 그려낸 불멸의 선율, 연극 ‘윤이상, 나비이마주’

 

파란 조명에 은은하게 감싸여있는 무대. 무대 위에는 첼로 모양의 소품과 작업한 흔적이 엿보이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무대 뒤쪽에 위치한, 관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피아노 한 대가 전부였다. 간결한 무대는 고(故) 윤이상 선생의 음악철학만큼이나 명증한 상징성으로 다가왔다.


 


첼로 모양의 소품 뒤로 윤이상의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들. 그들은 저승에서 온 원귀의 음산함을 풍기며 하나둘 모습을 감춘다. 이런 그들의 속삭임 위로 작업에 여념 없는 그의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나타난다. 낮게 깔리는 피아노의 선율, 그 선율을 타고 휘청거리며 등장한 그는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가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한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한없는 쓸쓸함과 고독함으로 가득하다. 그 눈빛에는 음악가로서 평생을 경계 넘기에 헌신했던 그의 고단한 삶이 압축돼있는 듯하다.

어디까지나 음악 속에 순수하게 머물길 원했던 윤이상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다름슈타트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의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보여주겠다는 초청장을 받은 그는 한껏 고무된 채 북한으로 떠난다. 오래전부터 음악으로 만들기를 염원했던 사신도를 맞대한 그의 얼굴은 환희로 빛난다.


 


하지만 조국은 그를 간첩으로 낙인찍는다. 반공법 위반과 국가 모독죄로 종신형에 처해진 그는 햇볕 한 자락 들지 않는 골방에서 죽음과 조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맴도는 곡의 선율은 죽음으로부터 그를 구출해낸다. “나는 윤이상이다. 아니다, 한 마리의 나비다. 한 마리의 나비가 동지섣달 차가운 쇠창살 사이로 날아간다. 헛되도다, 봄날처럼 따사로운 삶이여. 죽음이 건네는 손을 잡고 훨훨 생명의 춤을 추리라.” 제 아무리 단단한 감방의 벽도 그의 영혼을 가둘 수는 없었다. 그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날아올라 불멸의 선율을 그려낸다.


 


사회라는 오케스트라의 압박 속에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던 윤이상. 그의 선율은 불가능을 초월해 경계를 넘나든다.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의 5대 작곡가’로 선정됐지만 고향땅 한 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그의 삶은 라이브 피아노 연주와 영상, 그리고 배우들의 몸짓이 더해져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는 자연의 울림을 따라 한 마리 나비로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평생 조국을 등지고 살다가 1995년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90분이라는 시간동안 겪어낸 그의 삶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지난한 삶을 끝내고 저 우주로 훨훨 날아갔을 고인의 빈자리에는 선율의 음색들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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