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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주크박스] 돈키호테가 바치는 뜨거운 찬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Dulcinea’6월 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공연

5월 1일 오디컴퍼니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Dulcinea(둘시네아)’ 뮤직비디오를 공식 유튜브와 SNS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돈키호테 역 오만석 배우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돈키호테의 운명의 여인 둘시네아를 향한 애절한 고백을 담아 주목을 끈다.

지난 4월,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국내에서는 2005연 초연을 시작으로 올해 8번째 관객을 맞고 있다. 1964년 뉴욕에서 초연된 지 벌써 4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식과 매력적인 넘버, 가슴을 울리는 가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맨 오브 라만차’에서 가장 서정적인 넘버라고 할 수 있는 ‘Dulcinea’의 작품 속 역할과 그 가사의 매력은 특별하다.

‘Dulcinea’, 내면의 진정한 자아를 일깨우는 노래
- 조롱받는 ‘여관 하녀’에서 존중받는 ‘레이디’로

작품의 1막에서 ‘둘시네아(Dulcinea)’가 울려퍼지기 전. 허름한 여관을 배경으로 불리는 노래 ‘밥, 술, 알돈자’와 ‘다 똑같아’의 가사는 한 여인에 대한 조롱과 남자들을 향한 경멸로 일관된다. 행동이 거친 노새끌이들이 힘든 노동 끝에 밥과 술을 찾듯이 알돈자를 탐하고 그녀를 희롱한다. 이 장면에서 알돈자는 노새끌이들마저 함부로 대하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자각하며, 사내들에게 “어떤 놈도 다를 게 없다”며 “돈이나 듬뿍 달라”는 식으로 자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삶의 절망에 빠져 자신을 ‘똥구덩이’에 빠진 ‘구더기’ 정도로만 생각했던 알돈자 앞에 초라한 행색의 한 노인이 나타난다.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라고 스스로를 칭한 노인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며 칭송하고, 알돈자의 삶은 고귀한 이름 ‘둘시네아’에 의해 반전을 맞는다. 돈키호테는 그녀의 본래 이름인 알돈자를 “비천한 하녀에게나 붙이는 이름”이라며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고귀한 레이디 ‘둘시네아’로 칭하며 그녀를 향한 사랑의 찬가를 목놓아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댈 꿈 꿔 왔소. 나의 마음은 언제나 그댈 알고 있었소.
기도로 노래로 볼 순 없어도 마음은 언제나 하나였소.
둘시네아 둘시네아 하늘에서 내린 여인 둘시네아
천사의 속삭임같은 그대 이름 둘시네아 둘시네아

그대의 머릿결 손을 뻗어서 탐함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것이 꿈인지 정녕 현실인 것인지 알고싶을 뿐이니
둘시네아 둘시네아 그댈 위해 살아왔네 둘시네아
그댈 만남은 기다림 끝에 영광 둘시네아 둘시네아

1막에서 불리는 노래 ‘둘시네아’는 정신이상자로 취급받는 돈키호테와 같이 조롱의 대상이 된다. ‘둘시네아’는 원래 스페인 구어로 ‘사랑스러운 여인, 귀여운 여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누가 봐도 비천한 모습의 알돈자를 고귀한 숙녀 대하듯 찬양하는 돈키호테의 자세가 진지할수록 노래와 그 노래가 향하는 대상 알돈자 역시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노래와 변치 않는 칭송은 알돈자의 내면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하고, 알돈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과 함께 새로운 자아를 깨닫게 된다. 자신을 향한 멸시와 조롱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 자신을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으로 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과 위안이 되는지를 처음 깨닫는다. 노래 ‘둘시네아’가 그녀에게 스스로의 진정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삶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붙여준 이름, ‘둘시네아’
- 알론조를 다시 ‘돈키호테’로 되살려낸 노래

2막에서 거울의 기사로 인해 ‘돈키호테’의 삶이 자신이 만든 환상에 불과함을 알게 된 알론조는 절망에 빠져 자리에 눕고 만다. 이 때 알돈자가 그를 찾아온다. 2막의 후반부에 등장한 알돈자는 수많은 모멸과 역경을 거쳐 온 세월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고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짓밟힐수록 강하게 일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야생화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을 바꾼 이의 이름, ‘돈키호테’를 부르며 그의 꿈과 환상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묻는 돈키호테에게 그녀는 1막에서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불러준 노래 ‘둘시네아’를 그대로 되돌려 불러준다.

처음은 수줍은 듯한 그러나 불꽃처럼 서정적으로 타오르는 노래 ‘둘시네아’가 알론조를 다시 ‘돈키호테’로 되살려낸다. 겉모습이 초라한 행색의 노인이든, 여관의 비천한 하녀든 그들에게 더 이상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들에게는 꿈꿀 자유, 삶의 희망을 노래할 자유가 있다. 내면에 일렁이는 ‘라만차의 기사 정신’과 아름답게 빛나는 ‘숙녀의 고결함’이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 객석은 ‘둘시네아’의 이름이 자신의 가슴에도 울려퍼지는 것을 느낀다.

사진 출처_오디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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