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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꽃처럼 타오르는 운명적 사랑,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드라마틱한 피날레, 섬세한 연출 돋보여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듯 전기불빛이 찬란한 궁정극장. 연극 무대로 뛰어든 한 하층민의 분노는 스스로에게 겨눈 한 발의 포성으로 장렬히 폭발한다. “매일 서서히 죽어가느니 차라리 한 번에 눈 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여자의 말은 혁명의 의지로 꿈틀대던 황태자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그렇게 조우한 두 남녀의 뜨거운 운명. 이것은 단순히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다. 절대권력 황제 앞에서 무기력했던 황태자가 진정한 민중의 지도자로 거듭나려는 길고도 뜨거운 정치적 투쟁기이자, 억압받는 한 개인이 평범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려는 실존적 투쟁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 라스트 키스’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한층 복잡한 고뇌와, ‘햄릿’보다 더욱 구체적인 현실적 고민을 담아내 로맨스에 비장미를 더한다. 가혹한 운명의 끝. 자신의 운명에 후회 없이 몸을 던진 황태자는 끝내 비극마저 아름답게 불태운다.

로맨스의 정석, 화려한 의상•소품에 낭만적 조명 연출

전반부를 이끄는 황태자 루돌프와 귀족 여성 마리의 만남과 사랑은 로맨스의 정석이라 할 만큼 낭만적인 전개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마리가 내심 사모하던 저널리스트 줄리어스 펠릭스의 정체가 황태자 루돌프로 드러나는 과정은 키다리 아저씨 류의 전형적 클리셰지만 여성 관객을 설레게 하는 데는 충분하다. 여기에 다양한 무대 연출이 한껏 낭만과 활기를 더해준다. 유혹술에 노련한 라리쉬 부인이 이끄는 넘버 ‘아름다운 전쟁터’에는 색색의 패티코트와 양산이 안무에 유쾌한 볼거리를 더했고,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왈츠 장면에서는 화려한 궁중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 라스트 키스’는 깊은 무대 활용과 다양한 소품과 조명 전환으로 극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연출한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궁중의 내부는 물론이고 스케이트장이나 뒷골목의 사창가, 교회와 마이얼링 숲 등 다양한 공간을 연출해 때로는 낭만적이고 때로는 도발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리고 별처럼 쏟아지는 조명이나 스케이트 씬의 낭만적 감성, 흩날리는 눈발 등이 막을 내린 후에도 관객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겨울로맨스 특유의 여운을 깊게 남겨 준다.

카이-민경아 페어, 관객 홀리는 열창과 열연

이번 공연은 주연 배우들의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루돌프 역의 ‘카이’는 우아한 외모와 깊고 곧은 음색이 황태자이자 뜨거운 혁명가라는 주역에 잘 어울렸다. 그 중에서도 고독한 황태자의 굴레에서 평범한 행복을 노래한 ‘평범한 남자’나, 도망칠 수 없는 시대적 사명감을 느끼는 ‘알 수 없는 길’, 시민들 앞에서 혁명을 선동하는 장면 등에서 ‘카이’는 특히 빛을 발했다. 같은 캐스팅의 비교적 나이 어린 배우들에 비해 진중하고 깊이 있는 그의 연기가 후반부의 비장미를 살리기에는 더욱 유리한 면이 있었다.

맑고 고운 음색을 가진 마리 역의 ‘민경아’ 역시 ‘카이’와의 좋은 호흡으로 객석을 설레게 했다. 그녀는 가상의 인물 줄리어스를 생각하며 두근대는 소녀 같은 모습부터, 사랑에 거침없이 열정을 쏟는 여인의 얼굴, 흔들리며 결단내리지 못하는 루돌프를 몰아세우는 당찬 투사의 얼굴까지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다. 마리 캐릭터의 이런 입체적이면서 주도적인 면모는 그 어떤 뮤지컬에서의 여주인공보다 인상적이다. 그간 대부분의 여주인공들이 사랑의 상대였지, 사상적 동지는 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그녀는 단순한 연인이 아닌 황태자 루돌프를 완성시키는 혁명의 조력자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루돌프에 비해서 그 내면이 섬세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지만 남주인공에 지지 않는 여성 사상가의 모습을 일면 보여줬다는 데서 새로운 캐릭터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민영기-신영숙-전수미, 명품 조연들의 강렬한 어필

루돌프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그의 측근인 타페 수상이다. 특히 타페 수상은 루돌프의 꿈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힐 정도로 끈질기게 루돌프의 행보를 저지하려 한다. 타페 수상 역을 맡은 ‘민영기’는 자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조연임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독보적으로 드러냈다. 2막의 첫 장면인 ‘내 손 안의 세상’은 타페 수상이 마구 회전하는 루돌프의 침대 위에서 군림하며 압도적인 캐릭터의 매력을 뽐내는 대목이다. 주연을 압도하는 조연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대목에서 ‘민영기’는 놓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타페 수상과 라리쉬 백작부인과의 매혹적인 조합도 눈에 띈다. 1막의 후반부에서 조연들의 또다른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케 하는 넘버 ‘증오와 욕망’은 전체 공연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독특한 음악적 색깔과 분위기로 자극적인 요소를 더한다. 다만 둘의 이야기가 전체 서사에서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왜 현재의 관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어 인상적인 장면 임에도 의문을 남겼다. 한편, 황태자비 역의 전수미 배우는 맑고 고운 여주인공 마리와는 전혀 다른 색깔로 자신만의 무대를 선보였다. 여배우들 중에서도 드물게 힘 있고 단단한 고음은 끝까지 황태자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황태자비 스테파니의 날선 연기와 맞물려 주연을 더욱 빛나게 했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는 마지막의 극단적 선택을 드라마틱한 피날레로 느끼게 하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비극이다. 자칫 디즈니 영화처럼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만한 대사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는 전형적인 클리셰도 눈에 띄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는 살아 숨쉬는 캐릭터 ‘루돌프’의 설득력 있는 고뇌가 한 몫을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였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황태자 루돌프의 마지막 죽음이 관객에게 안겨주는 것 또한 허무함이 아니라 강렬한 여운이다. 그것은 그의 선택이 극단적 ‘좌절’도 ‘포기’도 아닌 역동적 저항의 ‘의지’이며, 그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든 빛나는 완성의 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불타는 피날레. 눈이 내리는 데도 객석의 가슴은 뜨거워진다. 

사진 출처_EMK 뮤지컬 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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