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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환상의 덫에 걸린 나비는 추락하고, 연극 ‘엠. 버터플라이’계산된 연출의 미학, 김주헌-오승훈 페어 돋보여

남자는 좀처럼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다. 자신이 붙인 애칭 ‘버터플라이’로 부를 때마다 자신이 오페라 ‘나비부인’ 속 초초상을 얻은 핑커튼이 된 기분이 들어서다. 자신의 완벽한 여자 ‘버터플라이’. 그녀는 자신의 권력실험의 거미줄에 걸려 든 한 마리 연약한 나비 같았고, 남자는 그 나약한 순종이 사랑스러웠다. 한없이 도도하고 당당했던 여배우가 어느새 자신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내던지는 순간 남자는 전율한다. 자신이 꿈꾸던 완벽한 여자를 대면한 그 순간, 비로소 자신 또한 완벽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88년 미국 초연 당시 여장남자의 연기와 실화라고는 믿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 전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 초연을 시작으로 배우들에게는 연기력을 검증받는 시험대이자, 관객에게는 잘 짜여진 무대와 상황을 전복시키는 역할 반전, 성별을 초월하는 신선한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원작자인 헨리 황은 1986년 실제 있었던 프랑스 외교관 기밀누설 사건 속에서 서양 백인이 동양 여성에게 품은 제국주의적 환상을 발견했다. 그가 결국 사랑에 빠진 것은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 간첩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완벽하게 정숙한 ‘나비부인’이라는, 서양이 동양에 품은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르네가 품은 것은 ‘욕정’ 아닌 ‘권력’
- 서양의 제국주의적 환상이 만들어낸 ‘정숙한 동양여자’

르네의 송에 대한 사랑의 시작은 개인의 욕정이 아닌 권력에의 도취였다. 르네는 과거에 여성과의 관계에서 소극적이고 경험이 적은 것을 고백하며 남성성의 결여를 스스로 드러내는데, 이것은 권력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복종의 대상을 갈구한 심리적 동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단순히 여성과의 ‘사랑’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여성의 적극적인 주도로 이루어졌던 첫 관계를 ‘불쾌했던’ 기억으로 묘사하는 것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그는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복종시킬 ‘대상’이 필요했다. 결국 그것이 복종의 얼굴을 한 ‘가면’에 불과했고, 20년간의 사랑이 긴 연극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난 후에도, 르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이 연극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나비부인’을 가진 자신은 잔인한 백인 남자 ‘핑커튼’이 될 수 있었으니까.

이 긴 연극을 끝내는 것은 송의 역할이다. 기모노와 가발을 벗고, 검은 알마니 수트의 남성으로 ‘변신’한 송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단숨에 전복시킨다. 권력의 우위가 순종적인 여성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은 백인 남성이 아니라, 교묘한 연기로 줄곧 서양 남성을 속여 온 동양 남성에게 있었음이 드러나는 순간. 농락당하는 ‘버터플라이’의 역할도 함께 전복된다. 오히려 자신이 ‘버터플라이’였음을 알게 된 르네는 자신을 농락한 송을 거부하며, 절망한다. 사랑이 끝났음을 절망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환상이 끝났음을, 더 이상 완벽한 남자로 살아갈 수 없음에 절망하는 것이다.

송 릴링은 왜 기꺼이 르네의 나비가 되었을까
- “난 단지 한 남자가 아닙니다”

송 릴링은 여러 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칭한다. 그에게 있어 ‘여성인척’ 르네를 속이는 행동은 간첩 행위 그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예술을 위한 일종의 ‘예술실험’에 가깝다. 송의 “남성인 자신이야말로 완벽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말에는 상대 배역이 원하는 캐릭터를 정확히 연기해낼 수 있다는 배우로서의 확신과 재능에 대한 자신감이 담겨 있다. 배우인 그에게 있어 르네는 “내 일생 가장 어려운 상대”였고,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는 상대였다. 자신을 완벽하게 순종적인 동양 여성으로 알고 빠져드는 그를 보며 송 역시 자신이 만든 무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는 후에 재판에서 “누군가를 완벽하게 매혹시키는 일이 나의 일”이었다는 진술로 마치 간첩 행위를 배우로서의 도전적인 과제인 것처럼 서술하기도 한다.

송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공산당원과 뚜렷하게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도 그의 남다른 예술가 정신을 느끼게 한다. 공산당원은 당의 원칙에 맞지 않는 행동, 이를테면 화려한 서양 드레스를 입고, 동성애라는 추악한 행위를 하며, 금발아기를 데려와 자신의 아기로 둔갑시키기까지 하는 송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목적이 당에 충성하는 것이라기에는 그의 행위는 지나치게 위험천만하고 윤리적 타락에 가까운 극단적인 것들이다. 자신에 대한 질책과 비난을 송은 “저는 배우잖아요.”라는 말로 태연히 일축한다.

결국 송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그는 자신을 갑자기 남자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르네에게 분명하게 자신은 “단지 한 남자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본질을 봐줄 것을 요구한다. 송에게 있어 삶은 그 자체가 연기였고, 무대였다. 송은 “나는 어떤 차림을 해도 나였다”는 말로 자신의 연극을 완성하려 한다. 자신은 르네가 원하는 환상을 보게 해주었을 뿐이고, 르네 역시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는 것. 짧은 꿈에서 나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르네의 몫이라는 것을,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는 당당히 고백하는 것이다.

계산된 연출의 미학, 김주헌-오승훈 페어의 합 돋보여

연극 ‘엠. 버터플라이’의 미장센은 잘 계산된 연출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무대와 조명, 배우의 동작, 소품들까지 하나하나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스스로를 가엾다 말하며 흰 기모노를 입고 버터플라이가 되기를 택한 르네와 더 이상 당신의 환상이 되지 않겠다며 검은 양복차림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은 송이 완성하는 미장센은 압도적이다. 나비부인이 섰던 자리에 군림하는 듯한 남성의 모습으로 서 있는 송, 나비가 되기 위해 화장을 마친 르네가 힘없이 쓰러지는 순간은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아주 완벽하게 아름다운 몇몇의 미장센들이 순간을 박제시키는 듯한 위력으로 객석의 숨을 멎게 한다.

이번 공연에 새롭게 캐스팅된 김주헌-오승훈 페어의 연기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두 배우는 상황의 전복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의 다층적인 면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과거의 모든 사건이 재구성되는 작품의 특성상 대사량이 많고 설명적인 르네의 캐릭터를 김주헌은 빠르고 리드리컬한 호흡과 풍부한 감정선으로 풀어내 관객을 흥미롭게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승훈의 송은 극의 후반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전반부 도도하면서도 순종적인 팜므파탈의 얼굴로부터 후반부 광기어린 예술가의 얼굴로 변하는 이중적 연기를 통해 섬뜩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무너지는 르네와 그를 일으켜 자신을 직시하게 하려는 송 간의 팽팽한 갈등 장면은 반전의 충격과 함께 객석에게 깊은 잔상을 남긴다.

‘모욕’하지 않는 ‘사랑’, 역할 뒤에 숨은 ‘나’를 발견하는 일

르네의 사랑은 제국주의적 환상으로만 보지 않더라도, 남성이 사랑에 빠지면서 여성에게 씌우는 흔한 환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의 본질을 궁금해 하지 않으면서 환상 속에 가두는 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여성’으로 보이는 순간까지라는 조건. ‘너’라는 인격체를 배제한 채 시작하는 이런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모욕에 가깝다. 그렇게 환상을 사랑하려는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남성의 완벽한 삶을 장식하는 하나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많은 역할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런 무수한 역할들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본질의 조각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인격은 타인이 부여한 역할의 합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고유한 ‘어떤’ 것이다. 인격이 무시되고 역할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오리엔탈리즘과 젠더 이슈에서 더 나아가 ‘나’라는 본질을 마주하는 진정한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를 역할이 아닌 개별적 인격체로 대하는 일에 얼마나 소홀하고 또한 무지했던가. 송에게서 ‘초초상’만을 찾으려한 르네는 어리석었고, 환상의 덫에 걸린 그는 결국 스스로 나비가 되어 추락했다. 우리는 알마니 양복을 입고도 여전히 아름답고 충분히 매혹적이었던 송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차림을 해도 나였어요.”

사진제공_연극열전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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