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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모든 배우가 살아 숨 쉰다, 연극 ‘3일 간의 비’

3일 동안 비가 내렸고, 비가 내리는 동안 세 젊은이는 사랑했고 미워했고, 고통스러워했고, 그리고 계속 살아갔다는 것.

다른 시대, 같은 이야기, 이중 플롯을 활용한 극적 긴장감

비슷하거나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대조되거나 연결되면서 결국에 하나의 드라마로 이어지는 희곡 극작 양식인 이중 플롯은 영국 셰익스피어 시대의 희곡에 자주 활용된다. 특히 이 양식은 당대를 풍미했던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두드러진다. 이중 플롯의 극작법을 능수능란하게 썼던 셰익스피어는 이 양식을 적절히 활용하여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갈등의 드라마의 비극성을 증폭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중 플롯의 기법은 이렇듯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의미를 투영하기 위한 연결고리로 쓰이며, 이때 과거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상의 모태가 되어 작가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연극 ‘3일간의 비’ 역시 이중 플롯의 극작법이 활용된 작품이다. 작품은 오늘날의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워커와 그런 동생을 감당하기 힘든 낸, 이 둘을 지켜보는 핍, 이 세 젊은이 앞에 놓인 유산과 이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그렸다.

공연은 네드가 자신이 아끼던 집을 자식인 워커와 낸이 아닌 친구의 아들 핍에게 물려주면서 시작된다. 연극 ‘3일간의 비’는 1990년대를 사는 세 젊은이의 우울하고 시니컬한 단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듯 보이지만 절친한 친구 사이었던 네드와 테오, 그리고 레이나의 관계와 비가 오던 1960년대의 ‘그날’의 진실까지 동시에 전개하는 이중 플롯의 방식을 활용한다. 이는 두 시대의 감정들을 생생하게 소환하여 ‘진실’을 밝히는 일에 대한 박진감을 더한다.

무대 위에서 모든 인물은 살아있다
이 작품에서는 세 명의 배우가 각각 자신의 부모세대의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전원 1인 2역을 맡아 연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그 어느 연극에서보다 생동감 있으며 전혀 다른 인물로 살아 숨 쉰다. 배우 윤박이 연기하는 워커 역의 경우 시크하고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쏘아붙이는 인물이다. 또 하나의 인물인 네드는 말더듬이에 소심함이 가득하다. 윤박은 워커를 연기할 때 객석의 관객들이나 상대 배우와 정확히 시선을 마주치며 대사를 치고, 연기 동선 역시 길게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네드를 연기할 때는 시선을 땅으로 떨어뜨리고 연기 구역 역시 상대 배우의 동선을 앞지르지 않는 선에서만 활용한다. 그렇게 윤박은 워커와 네드 두 인물로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었다.

핍과 테오를 연기한 배우 서현우의 경우 연기의 디테일을 가장 많이 살린 배우이다. 핍은 유쾌하고 너그러운 성격을 가졌지만, 워커에게 쩔쩔매는 상황에 놓여야만 했던 트라우마를 간직한 인물이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일상을 표현하는 이른바 ‘생활연기’의 패턴으로 연기 하지만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대사와 행동이 2배속 빨라진다. 테오는 호탕하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는 성향을 가졌다는 점에서 핍과 유사한 면이 많아 이 둘을 한 배우가 다른 인물로서 표현하기에는 그 구체성에서 어려움이 많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서현우는 평상시 친구와 애인에게 사교적인 테오가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격하게 분출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택한 표현 방식은 평상시의 핍과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하다가 어떤 순간에는 다른 모습을 보는 것으로 연기적 디테일에 차별성을 도모하는 ‘따로 또 같이’의 방식을 활용한 것 같다. 낸과 라이나 역을 동시에 소화해야 했던 배우 이윤지는 우울하고 어두운 성향의 낸을 연기할 때는 몸 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밝고 엉뚱한 매력을 뽐내는 인물인 라이나를 연기할 때는 몸을 활용한 연기를 결합해 평소에 브라운관을 통해 많이 노출되었던 발랄한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부각하는 전략을 썼다. 이렇게 이 작품의 인물은 모두 살아있었다.

액션과 리액션, 그리고 ‘사이’
연극 ‘3일간의 비’의 여섯 인물은 각각의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살아 있었는데 이런 생명력의 근원은 ‘사이’를 잘 활용한 데 있다. 대사와 대사의 사이, 행동과 행동의 사이에서 배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앞서 언급한 인물이 가진 각각의 성향을 고수하며 ‘사이의 시간’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의 대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연기를 펼치는 식이 아닌 그사이의 ‘서브 텍스트’를 미리 파악하여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이다. 그렇게 한 덕에 관객은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작품에서 배우들은 단 한 번도 관객을 향해 손짓하지 않았다. 실제로 독백이나 방백의 장면으로 미루어 보이는 장면에서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대사나 연기를 하지 않았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관객이 오히려 작품에 다가갔다.

이제껏 이렇게 몽환적인 무대 전환은 없었다!
관객이 완전히 작품에 몰입한 증거는 무대 전환 시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탄식의 소리다. 이 작품은 무대 전환 때마다 독특한 연출 덕에 탄식이 쏟아졌다. 무대 전환 동안 피아노 연주와 빗소리 음향, 푸른 조명과 미러볼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 무대의 연기 구역뿐 만 아니라 객석에까지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극적 분위기를 극장 전체로 확대하여 장면의 감정을 객석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였고, 관객은 가랑비의 옷 젖듯이 장면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되는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전환 시간을 이용하여 객석에 비가 내리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연출을 통해 작품 속에 관객을 자연스럽게 이입시킨다. 드라마 속 감정에 관객이 동참하게 하며 자신이 가진 비 오는 날에 대한 기억에 대해 떠올리게 만드는 방법 이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배우 겸 연출가 오만석? 아니, 연출가 오만석!
배우 오만석은 연출 하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을까? 그가 사랑받는 배우라서 이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기보다는 그가 배우로서 했던 고민이 연출의 역할을 할 때 색다른 방식으로 녹아 나왔다는 점이 인상 깊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각기 다른 개성으로 등장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몽환적인 미쟝센이 드러난 미술적 시도를 통해 관객의 관심을 능동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이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사랑 고백을 받는 고수의 연애 기술과도 같은 방법의 일환으로 배우 오만석, 아니 연출가 오만석은 ‘인물과 인물이 대사하는 그 사이에 행동과 호흡을 놓지 않는 것’과 ‘인물을 입체적으로 연기하는 것’ 이 두 가지에 핵심을 두었다.

 

사진제공_악어컴퍼니

나여랑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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