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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흑백 다방’ 혼돈의 시대, 누가 흑이고 누가 백인가

정의와 부정의의 기준은 사건의 합법적 사실과 더불어 그것을 재단하는 기준의 진정성을 모두 검증해야 한다. 그 과정이 비로소 ‘정의’의 확립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난제에 대해 중요한 물음을 이끌어내는 연극

대통령 탄핵을 전후하여 가장 두드러진 국민 정서의 흐름 중 하나는 ‘세대 간의 가치 갈등’이다. 물론 보수와 진보로 이분돼는 정치적 색채를 구세대와 신세대로 일반화하는 것은 모순적 구분 방식이다. 그러나 보수의 간판이라 불리는 여당에서 출마한 대통령의 탄핵은 구시대를 대변하였던 보수 집단에 내집단의 붕괴로 인한 예기치 못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의 실망감은 감정을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았고, 일부 새롭게 개량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것이 바로 태극기 부대이다. 서울 광장을 중심으로 진보 진영과 진보의 성향을 가진 시민들이 책과 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시위가 빈번히 진행되어 온 적은 많았지만, 보수 진영이라 주장하는 집단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현 시국의 격돌이 새로운 형국이라 일컬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이 격돌의 핵심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현재 대한민국에는 헌정 사상 그 어느 때보다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러한 시국을 두고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단 하나이다. 무엇 때문에 갈등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개인의 이야기에 담긴 거대한 사회 담론


2017년 3월 선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흑백 다방’은 바로 그 갈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 구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왕년에 심문을 잘하기로 소문났던 경찰 이황의는 학생 운동을 하던 윤상호를 심문했고, 그 과정에서 윤상호는 청력을 상실한다. 과거 가해를 당했던 기억을 가진 윤상호는 식칼을 들고 사람들의 고민을 카운슬링 해준다는 흑백 다방에 찾아 자신을 짓밟았던 이황의에게 가해를 하고자 마음먹지만, 이 ‘흑백 다방’이라는 곳에서 계획한 가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윤상호가 이황의에게 가한 가해로는 이황의의 아내의 무덤을 파헤쳐 제멋대로 화장을 하고 그 뼛가루를 그의 앞에 들고 온 것인데 이런 대단한 가해를 저지른 윤상호는 어렵게 마련된 복수의 순간에 결국 이황의를 해치지 못한다. 그의 나약함은 그가 자신의 범행을 경찰에 예고했다는 점과 복수의 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에 연락을 취한 것뿐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시민 윤상호는 젊은 날 세상의 개혁을 부르짖다가 권력에 의해 무너졌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을 가해했던 권력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윤상호의 미약함과 윤상호로 대변되는 젊은 날을 투쟁으로 보낸 젊은이들의 미약함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해와 피해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진 지 오래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지난날에 대한 두 인물의 첨예한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젊은이들을 짓밟으라 명령하는 권력의 톱니바퀴로 살면서 청춘을 희생당한 이황의 역시 청춘에게 무참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장면을 노출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갈등의 상황에서도 서로의 옷을 바꿔 입는 행위를 통해 두 인물의 갈등이 상대방을 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상처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치유하고 싶다는 것이 작품에서 던지는 숨은 메시지라는 점도 가해와 피해의 양자 구도를 허물고자 한 시도의 근거가 된다.

무거운 소재, 이유 있는 엔딩


윤상호는 오랜 세월 귀머거리로 먹먹하고 막막한 세월을 살아내며 복수의 날을 손꼽았지만 결국 자신을 귀머거리로 만든 이의 말을 통해 다시금 세상을 소리를 듣게 된다. 작품 내내 들리지 않던 엘피판의 음악 소리가 마지막 장면에야 노출한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음악적 연출이다. 권력의 톱니바퀴로 사는 시민이든, 사회의 제도 개혁에 대해 부르짖는 시민이든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권력의 이기 앞에서 갈등하던 두 인물은, 그들로 대변된 두 집단은 자생적으로 화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이 이 작품이 추구했던 엔딩이다. 시국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갈등 또한 갈등의 원죄가 되는 권력에 의한 근본적 해결이 아닌 집단 간의 소통과 자생적 화해를 통해 시국이 안정될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의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진제공_(주)후플러스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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