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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론] 구름의 뼈

 

구름의 뼈 - 배 용 제

Ⅰ.
말목들판 아득히
굽은 척추처럼 늘어선 조각구름 아래
웅크린 저 헐렁한 구름은 어느 노쇠한 짐승의 흔적일까
아무렇게나 제 몸을 흘리며
빈 들판 가득 출렁이는 바람 속, 얇은 그림자를 헹구는
가벼운 구름들도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버티는 뼈의 고통이 있는지

오래 목과 허리에 디스크를 앓고
기력이 다해 겨우 흐르듯이 걷는 아버지
주무를 때마다 형체 없이 무너진 구름의 내부에선
습한 바람 소리가 자꾸 새어나온다.
아득한 것들과 빈 곳만을 탐하며 지나온 그의 방향에선
어느 골짜기에서 한꺼번에 쏟아붓고 왔는지
이젠 습관적으로 떨구던
발등을 적실 몇 방울 눈물도 말라
헐거운 아버지를 견디는 구름의 뼈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들만 모여드는 말목들판
노을 속의 저 노쇠한 짐승은 아버지의 그림자일까

아버지를 주무르다 뒤뜰에 서서 바라본 허공
천천히 굽은 척추를 펴며 일어서는 구름의 뼈
구름은 구름의 길을 가면 그뿐
어떤 햇빛도 죽은 풀잎을 덮은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리라
스스로 무너져내릴 때까지
구름의 저 아득한 뼈들이 세상의 빈 곳을 지탱하고
수만 가지 어둠들은 그곳에서 안식하리니.


Ⅱ.
비유는 하나의 관념을 구체화 시키는 작업이다. 비유 중 가장 거시적인 것이 구조적 비유이다. 배용제의 ‘구름의 뼈’는 ‘구름의 뼈’와 ‘아버지’라는 비유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생에 관해 통찰을 하고 있다. 구름이라는 행로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의 경로를 비유하면서 인식의 깊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훑어보면 한줌의 흙 같은 인간의 가벼운 유한성과 존재론적인 결핍의 부재 속에 살아갈수록 드러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버티는 뼈의 고통’ 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 삶 앞에 놓여있는 것들을 ‘아득한 것들과 빈 곳만을 탐하’는 인간의 근원적 호기심과 환경의 포획, ‘까마득한 봉우리를 넘던 전설’ 미지에 대한 도전과 신의 창조물에 근접하고자 하는 끝없는 발견, ‘어느 골짜기에서 한꺼번에 쏟아붓고’의 혼을 다하는 마음과 사람과 사람 아닌 것에 대한 배려를 말하면서, 이 시인은 그것의 근접이 아버지라는 자리를 차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이 살아가야하는 궁극적인 행로와 행위를 제시하고 있다.
‘어떤 햇빛도 죽은 풀잎을 덮은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리라’ 라는 신의 영역에 수응하는 마음과 아울러 인간의 한계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므로서 존재를 분명하게 비어낸다. ‘구름의 저 아득한 뼈들이 세상의 빈 곳을 지탱하고 수만 가지 어둠들은 그곳에서 안식하리니’ 라는 말을 통해 ‘구름의 뼈’에 대한 가치와 세상과의 관계성을 정립하면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응시를 보여준 아주 좋은 작품이다.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1월 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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