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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성의 The Stage 115]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유희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16.12.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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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겨울이 왔다. 사각사각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세기의 로맨티스트요, 모던보이였던 그이, 백석 시인이 기다리던 흰 눈 같은 시린 사랑의 나타샤를 떠올릴 수 있어 참 좋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의 빠져버린 연인 백석(본명 박기행)과 기생 자야(본명 김영한)와의 목화 같은 러브스토리에 우리는 한겨울 내내 애틋하고 따듯하며 애잔한 사랑의 기억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 낼 수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 시인의 대표적인 연애 시다. 그런, 그의 시와 그 사람에게 반하고 사랑했던 한 여자 자야가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회고하는 모습을 그려 내며 아름다운 소극장 뮤지컬로 탄생했다. 자야는 백석과의 달콤하고 뜨거운 연애 시절을 보내고 그와 헤어지고도 평생 그를 잊지 못한다. 백석을 한없이 그리워하고 순정의 마음을 준 오직 그를 위한 기다림과 끝없는 그리움을 기억하는 작품이다. 우란문화재단에서 개발하여 2015년 12월 리딩 공연, 2016년 2월 트라이아웃 공연, 2016년 11월 본 공연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알차고 완성도 있는 콘텐츠로 거듭났다.

 

그동안 백석 시인에 대한 활발한 연구나 소개는 그렇게 흔치 않아서인지 그의 시 애호자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그렇게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사슴’을 통해 그의 향토 성 짙은 감수성과 정갈한 시어들은 단박에 문단의 화제가 되었고 열혈 추종자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 또한 그의 시에 완전히 매료되어 주변에 널리 알렸고 어른이 읽은 동화작가이자 현대시인인 ‘안도현’ 시인 또한 백석시를 베끼기 위해 시를 썼다 할 정도로 저명 시인들이 닮고 싶어 하고 인정한 시인으로 회자가 되었다. 그의 시를 알고 나면 누구나 그의 시를 애송하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러한 백석 시인이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재직 중 회식자리에 나갔다가 기생이었던 한 여자를 만나자마자 단박에 사랑에 빠졌다. 그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라고 단도직입적인 고백을 털어놨다. 이 고백에 즉각적으로 사랑에 빠져버린 한 여자, 子夜(이백의 시구에 나오는 이름으로 백석이 불러주었다)와 3년간의 뜨거운 사랑과 기억, 끝내 함께하지 못하고 애절하고 처절한 심경으로 그를 한없이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자야의 생명이요, 고백 같은 기억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마지막 죽음에서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장면은 숨을 쉴 수도 없는 깊은 회한과 울컥 치밀어 오는 동정을 넘어 선 묵직한 감동으로 막이 내리고도 한동안 눈시울을 붉히며 오래도록 먹먹하게 한다.

 

작년에 이어 백석시인을 모티브로 한 연극 ‘백석우화’와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무대화되었다. 올해 다시 공연되며 두 작품 모두 열렬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백석과 백석 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연극은 시인 백석의 해방 전후의 굴곡진 삶을 얘기한다. 판소리로 작창한 그의 시 ‘여우난곬족’을 시작으로 백석의 문학을 대사화했고 당대 문인들이 등장해 백석을 얘기하며 백석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환생한 백석의 삶을 그렸다. 뮤지컬은 백석의 시어들을 가사화하여 채한울 작곡에 의해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로 거듭나게 했으며 백석과 기생 자야와의 신분을 뛰어넘은 애절한 러브스토리는 백설의 대나무숲과 한옥의 창살 문양과 토담, 그리고 평상으로만 꾸며진 정갈한 무대와 이야기의 흐름을 은은한 조명의 변화만으로도 시간과 공간의 전이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자야의 기억 속에만 있던 백석의 빼어난 모습과 백석과의 지난 추억을 오롯이 되새긴다. 깊고도 깊은 그들만의 영원한 사랑의 순간들을 움직임과 동선으로 무대에 뿌리고 세련된 의상으로 한결 고고하고 소담스럽게 형상화했다. 사각거리는 댓잎 바람과 고상한 여인네의 곱디고운 한복 옷깃은 서정적이듯 휘몰아치는 피아노 선율을 타고 소담스럽고도 아름답게 무대에 존재했다.

실제 노년의 자야는 당시 1,000억 원 상당의 ‘대원각’ 요정을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동하여 스님께 시주하여 오늘날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로 남겨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백석 시문학을 길이 전해 그와의 영원한 사랑의 기록을 지켜냈다. ‘1,000억 원의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내가 죽으면 눈 많이 오는 날 길상사에 뿌려 달라’했다. 마치 백석의 시처럼 눈이 푹푹 내리던 날 나타샤가 되어 백석에게 되돌아갈 듯이...사랑하지만 떠나야 하고 이내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해도 만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의 그리움들을 뒤로한 채,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돌아서서 흐느끼는 슬픔을 삭이고 또 삭이며 한 떨기 만개하지도 못한 목화송이처럼, 바람이 불면 그렇게 흰 눈과 함께 그들의 먹먹하고 시린 사랑은 다시 눈꽃이 되어 시대를 거슬러 다시 피어나고 있다.

 

자야 역의 정인지는 마치 그녀, 자야가 환생한 것처럼 여리고 강한, 지고지순하면서도 톡톡 쏘는 상큼 달콤한 체리처럼 동양적인 매력과 더불어 매혹적인 모던 걸의 이미지를 카멜레온같이 천연덕스럽게 섬세한 연기로 마음을 가게 했다. 또한, 새로운 역할을 만날 때마다 변신을 거듭하며 안정적인 보이스 톤과 가창으로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하는 백석 역의 이상이의 매력 또한 짙은 잔향으로 오래도록 그 안에 머무르게 한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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