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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좌담] 연극 ‘킬 미 나우’ (2016)불편해도 괜찮아, 나의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 이 글은 공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연극 ‘킬 미 나우’가 연극열전6의 두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의 최신작이다. 작품은 선천성 장애를 지닌 소년 ‘조이’와 전도유망한 작가였으나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제이크’의 삶을 담아냈다. 예기치 못한 장애와 그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그들의 삶은 관객들로부터 일상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한다.

이번 공연은 오경택 연출가와 지이선 작가가 맡았다. 무대에는 배수빈, 이석준, 오종혁, 윤나무, 이지현, 이진희, 문성일이 올랐다. 배수빈과 이석준은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헌신하는 아버지 ‘제이크’역을 맡았다. 오종혁과 윤나무는 ‘조이’를 통해 선천성 장애를 가진 사춘기 소년을 연기했다. 연극 ‘킬 미 나우’을 관람한 3인의 기자가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인물들


이기원(이하 이) : 작품 속에서 ‘제이크’는 굉장히 완벽한 부성애를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아버지로서의 희생정신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장애를 가진 아들에 대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심 같은 게 깔려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태은(이하 최) : 갑자기 ‘제이크’에게 심각한 장애가 생겨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제이크’와 ‘조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전까지는 ‘제이크’와 ‘조이’ 모두 스스로가 가장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제이크’에게 장애가 생기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아들 역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허윤선(이하 허) : 맞다. ‘제이크’와 ‘조이’를 보며 역지사지(易地思之)란 한자성어가 떠올랐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상황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고 느낀다. 본인이 상대방의 상황에 처해보지 않는 이상 온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작품에서 ‘제이크’와 ‘조이’는 서로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이해하고 성장해나간다. ‘제이크’ 부자의 모습을 보며 역지사지를 통한 인간의 성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꼈다. 

이 : ‘트와일라’와 ‘라우디’의 이야기만 따로 보면 정형적인 러브라인이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반감을 가졌다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푹 빠져버리는.

최 : 두 사람 역시 ‘제이크’와 ‘조이’처럼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인물들인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분출하기만 하는 ‘라우디’와 감정 분출을 제대로 못 하고 참기만 하는 ‘트와일라’가 만나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힐링한다. 조금은 클리셰적이지만, 그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허 : ‘로빈’이란 여자가 ‘제이크’를 사랑한 건 알겠다. 그런데 그의 어떤 점을 사랑했는지, 또 어떤 점을 보고 성장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로빈’이란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최 : ‘로빈’이 자신이 둘째 아이를 유산했을 때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된 채 살고 있다가 ‘제이크’의 소설을 읽고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이성적으로 사랑했다기보다는 그저 각자 위로를 받기 위해 만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 : ‘제이크’ 역시 ‘로빈’을 만나는 것이 잠시의 일탈이고 사치를 부리는 거라고 표현하지 않나.

이 : ‘제이크’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하게 되면 아들에게 헌신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잠시 잊고 즐길 수 있는 관계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 장애가 생겼을 때 그렇게 쉽게 ‘로빈’과의 연락을 끊을 수 있었을까.

최 : ‘로빈’ 역시, 그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만의 관계를 보자면 ‘제이크’보다는 ‘로빈’이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가 연락을 끊자 녹음기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고, 집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하지 않나.

허 : ‘로빈’ 역시 ‘제이크’ 덕분에 소설을 완성한다. 두 사람 다 위로를 받았다는 점에서 서로 손해를 보는 관계는 아니었다. ‘로빈’이 ‘조이’에게 ‘제이크’의 소설 ‘춤추는 강’을 읽어주는 과정 또한 ‘로빈’이 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 메시지를 전달하는 탁월한 소품 사용

최 : ‘욕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연극의 시작도 ‘욕조’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욕조가 있는 곳이 다른 공간보다 높게 설치돼 있고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앞집 창문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 : 블라인드로 가려서 객석에서 욕실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욕실 분위기도 ‘제이크’의 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련됐다. 그러다 보니 욕실이 비밀스럽고 신성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최 : 그런데 ‘제이크’가 아프게 되고 나서 ‘조이’와 동등한 입장이 됐을 때, 욕조의 위치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욕조의 위치 변화가 두 사람의 관계 변화처럼 느껴졌다. 욕조가 높은 곳에 있을 때는 ‘제이크’와 ‘조이’의 관계가 수직적인 느낌이었다면 욕조가 낮은 곳을 왔을 때는 두 사람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했다.

이 : ‘제이크’와 ‘조이’의 관계처럼 작품과 관객인 나와의 관계도 함께 변하는 것 같다. 공연 초반에는 제 3자처럼 두 사람의 생활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제이크’가 아프고 난 후부터 두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들의 고통에 좀 더 빠져들었다.

허 : 욕조에서 시작해 욕조에서 끝나는 작품의 구조가 인상 깊었다. 작품 속 욕조는 ‘고통’, ‘장애’, ‘타인의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보호 받고 철저히 보살핌을 받는 곳이다. 마냥 아버지의 욕조 속에 있을 것 같던 ‘조이’가 어느새 성장해 ‘제이크’를 자신의 욕조 안에서 보살펴주는 장면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집약 뿐 아니라 부모의 품을 벗어난 아이의 독립을 잘 드러냈다.

최 : 나는 욕조만큼이나 간이침대의 의미도 궁금하다.

이 : ‘로빈’의 입장에서 간이침대는 생활 조건이나 환경보단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실제로 자신의 집에는 비싸고 좋은 침대가 있지만, 그녀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행복해하는 공간은 ‘제이크’와 함께 있는 간이 침대다.

허 : ‘제이크’와 ‘조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간이침대는 ‘육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잘빠진 침대가 정상인의 몸이라면 접이식 간이침대는 뭔가 삐걱거리는 장애를 가진 몸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행복감이 결정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 과감하지만 담백한 메시지 전달

허 : ‘제이크’가 장애를 입고 나서 “보통의 가정이라는 거, 축복이야”, “중요한 걸 다 놓치고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대사가 마치 관객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이’와 ‘제이크’의 상상씬에서 더욱 강렬히 보여주듯이 말이다.

최 : 나는 ‘제이크’의 대사가 지금의 행복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도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나. ‘조이’와 ‘제이크’ 모두 스스로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에게 장애가 생기고 난 후, 그가 정상인이었을 때 아들 ‘조이’와 보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인지, 그 순간에 집중해서 얼마나 즐겼어야 하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허 : 동의한다. ‘제이크’에게 장애가 생긴 이후에, 그는 다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몸이 정상적일 때는 쓰지 않았던 글이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글을 쓰지 못한다.

이 : 하고 싶은 걸 지금 바로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제이크’가 글을 쓰지 못하는 장면에서 그가 글을 불러주면 ‘라우디’가 받아 적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라우디’의 역할은 ‘제이크’가 망친 글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찢어 버리는 것에서 멈춘다. 

최 : 연극 ‘킬미나우’는 소재도 무겁고 주제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연출하거나 연기할 때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다.

이 : 작품에서 조금 아쉬웠던 게, 주연부터 조연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치유되고 성장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거다. 인물들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담으려다 보니 ‘트와일라’와 ‘라우디’의 관계 변화나 ‘로빈’의 태도 변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 : 그래도 각 인물이 성욕부터 창작욕, 사회적 동물로서의 소속감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나 욕망을 제대로 대변하고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허 : 안락사와 장애, 성 등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다 안고 있는 이 작품이 그 메시지를 밝고 유머있게 전달하는 방식이 좋았다. 다만 너무 많은 주제를 관객들에게 던져줘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운오리들의 성장기’는 위로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간절히 ‘힐 미 나우’를 외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좌담_이기원, 최태은, 허윤선
정리_최태은 기자
사진_박민희 기자
 

최태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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