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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사이레니아’, 밀폐된 공간으로부터의 연대감바다에서 실종된 남자의 마지막 21시간

이 숨막힘과 긴장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배우의 숨소리가 뺨에 닿을 만큼 가깝고, 젖은 몸으로부터 빗물이 튀는 듯하다. 여배우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서 일렁인다. 이렇게나 생생한 감정이라니.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편안함을 무시하고 두 배우의 호흡과 감정이 밀폐된 공간에서 관객의 것과 그대로 서로 얽혀든다.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무대에 관객은 무방비로 ‘놓여’ 있고, 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항해하기 시작한다.

밀폐된 공간이 가져온 아이러니

극에서 관객의 위치를 객석으로 한정짓는 것은 관객을 감상자로서 국한하고 무대를 관객이 있는 곳으로부터 확연히 구분지음으로써 극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적으로 작용해왔다. 객석과 무대를 ‘구분짓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상세계를 구축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실제로 관객 입장에서도 무대와의 적당한 거리감은 ‘지켜본다’ 혹은 ‘목격한다’는 느낌으로 객관적인 감상과 주관적인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처럼 여겨져 왔다.

반면, 연극 ‘사이레니아’는 객석과 무대의 구분을 과감히 없애고, 객석을 무대에 포함한 채 10평 남짓의 밀폐된 공간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막상 객석에 앉으면 생각보다 더 좁고, 더 가깝다. 이는 단순히 구분을 없앴다기보다는 아예 ‘무대로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다. 배우는 코앞에 닿을 듯이 스쳐가고 손 내밀면 닿는 곳에 소품이 놓여 있다. 관객이 살아있는 무대 위 소품이 된 것과도 같다.

밀폐된 공간이 주는 의미는 감금, 혹은 고립, 보호 등 누가 어떤 목적으로 통로를 닫았는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놓인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탈출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망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외부세계에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묘한 안도감과 함께 갇힌 이들 간의 연대감을 낳는다. 연극을 보는 관객들 또한, 망망대해 좁은 등대에 갇혀있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극에 몰입하는 후반에 갈수록 같은 공간에 있는 배우와 관객들에게 묘한 일체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를 등대에 가둔 남자,
누구도 무기력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극의 초반에서 이미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면서, 극의 흐름은 결말 그 자체보다는 ‘왜’와 ‘어떻게’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 집중된다. 바다에서 실종되고 마는 주인공의 21시간 전, 과연 등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블랙록의 등대지기 ‘아이작 다이어’는 관객의 호기심을 받으며 마치 유령처럼 등장한다. 여주인공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대사는 거의 없이 무기력하고 의미 없는 동작들을 반복하며 등대를 부유하는데, 그 어떤 삶의 의욕도 느낄 수 없는 그에게서 관객은 ‘이유 있는 절망’을 감지한다. 누구도 무기력을 목적으로 살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작품이 2인극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가는 관객들은 여주인공의 등장을 기다린다. 여인은 ‘아이작 다이어’에 의해 폭풍 속에서 무방비하고 또한 무기력한 채로 구조당한다. 두 배우의 대화 역시 서로를 완벽한 타인으로 믿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주변에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 남겨진 두 남녀는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조금씩 둘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둘의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맞이한다. 울부짖는 듯한 파도소리와 음산한 푸른조명이 일순 멈추고, 고요하고 따뜻한 조명이 태양빛처럼 흐르면 관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아이작’의 과거를 만나게 된다. 삶의 목적이 있고, 미래를 꿈꾸었던 그 젊은 시절로, 무대의 전환 없이 ‘아이작’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꾼다.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 열린 결말이 갖는 함의

전혀 다른 얼굴로 빛나는 젊은 날을 보여주던 ‘아이작’은 행복의 목전에서 사고를 당해 삶 자체가 표류하게 된다. 그가 왜 스스로를 8년씩이나 등대에 가두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곧 풀린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절망에 공감할 때쯤 또 다른 반전을 맞이한다. 우연히 구조된 줄 알았던 여인에게서 있어서는 안 되는 과거의 한 조각이 발견되면서 그녀를 둘러싼 진실이 또 한 꺼풀 벗겨진다. 이로써 작품의 후반 전혀 다른 두 세계인 줄 알았던 ‘과거’와 ‘현재’가 다시 만난다.

관객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극의 결말, 혹은 여인의 정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말을 어떻게 해석하든, 열린 결말로 여인의 정체를 남겨둠으로써 ‘아이작’의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인상과 그로 인한 쓸쓸함은 더욱 강렬해진다. 다만, 작품의 시작이 조난 사건을 알리는 보도였던 만큼 보다 사건의 결말에서 죽음에의 개연성을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조금 더 제시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밀도 높은 2인극을 매우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70분이라는 공연 시간은 관객이 몰입을 끝까지 잃지 않게 하는 데 적절하다. 바로 앞에 관객이 숨소리까지 들리는 곳에 있다는 것은 관객은 물론이거니와, 배우에게도 크나큰 용기이자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다. 사소한 표정 변화나 손의 떨림까지 전해지는 무대에서 흔들림 없이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해 낸 두 배우의 명연기야말로 이 작품의 든든한 기반이라 할 만하다. 특히, 소녀 같은 순수함부터 서늘하게 돌변하는 여인의 모습까지 다양한 인물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배우 전경수의 표정연기는 가까이서 본 만큼 인상적이었다.

밀폐된 공간에 허락된 30명의 관객만 함께할 수 있는 연극 ‘사이레니아’는 6월 14일 개막해 8월 15일까지 대학로 TOM 연습실 A에서 공연된다.

사진출처_Story P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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