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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전의 탄생, 연극 ‘날 보러와요’

레퀴엠과 날 보러와요의 평행이론

레퀴엠, 죽은 자를 추모하기 위한 미사곡이다. 신원 미상의 한 남자가 ‘모차르트’에게 의뢰를 하여 쓰여지기 시작한 곡으로 ‘모차르트’가 미완성작으로 남긴 것을 제자 ‘쥐마이어’가 완성시켰다.

2016년 공연된 연극 ‘날 보러와요’에 가장 많이 삽입된 곡은 바로 레퀴엠이다. 작품의 큰 맥락으로 드러나는 범인 잡기의 일환으로 이 음악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나타난 때 방송되었다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작품의 매커니즘은 두드러진 교집합을 보인다. 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곡이라 그런지 곡의 색채 역시 장중하고 진지하고, 스산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음악적 색채는 연극 ‘날 보러와요’의 색채와 연결된다.

레퀴엠은 당대 권력가들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재능을 돈으로 매수하여 자신의 재능인 양 뽐내는 흐름과 비슷한 맥락으로 등장한 작품으로 발단했는데 이 연극 역시 권력의 이기 속에서 사그러가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파헤쳐 본다는 점에서 굵은 맥락의 흡사함을 드러낸다.

‘모차르트’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결국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었던 레퀴엠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결국에는 ‘쥐마이어’가 완성게 되는데 결과 색출에 대한 미완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실을 향한 여정을 그린 이 연극의 구조와 같은 구도를 보인다. 게다가 이 ‘모차르트’의 곡으로 알려진 이 곡이 ‘모차르트’가 지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물론 ‘모차르트’가 가진 권위를 통해 이 곡의 정체성이 ‘모차르트’에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지만 몇몇의 작곡가를 거치면서 분명이 이 곡은 ‘가공’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의 정체성이 ‘모차르트’에만 있다고 보기에도 어색하다는 입장이다.

레퀴엠의 정체성 문제는 ‘모차르트’의 죽음으로 인해 진실은 정면으로 목도되지 못하고 증발되어 버린 셈인데, 진실을 색출하기 위해 여러 인물이 용의자로 지목되며 미궁 속으로 사건이 흘러가는 여정을 담은 연극 ‘날 보러와요’의 드라마 구조에서도 포착되는 지점이므로 레퀴엠과 연극 ‘날 보러와요’는 교집합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연극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공소시효가 없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86년부터 91년까지 일어난 사건으로 이미 2006년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미해결 사건에 대한 관심의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96년 초연된 김광림 작, 연출의 연극 ‘날 보러와요’다. 2003년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어 흥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역시 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 환기를 돕는 도화선이 된 작품이다.

이 사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작품은 언론에 빈번히 노출되어 국민들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이러한 과정은 사건의 재발에 대한 의식과 제도를 바꾸는데 이바지 할 때가 종종 있다. 법적으로는 사건의 공소시효가 있어서(2016년 기준 공소시효법은 없어짐)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건이었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회자되고 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어떠한 사건도 공소시효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사회 현상과, 사건, 난제(難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 높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커다란 사건부터 사소해보이지만 권력의 이기 속에 침잠되는 중요한 사건까지 연극인들이, 예술가들이 다루어야 할 ‘사회’는 아직도 많이 있다.

중극장에서만이 표현 가능한 정서, 고독한 진실

96년 초연 당시 연극 ‘날 보러와요’는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됐다. 그 이후로도 주로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일이 잦은 공연이었다. 그 바람에 형사들이 근무하는 경찰서 내무실 이외의 공간에 대한 부분은 실제적 구현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신 작은 공간이 가진 특성을 살려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사건의 답답함을 공간의 색채에 녹여 표현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공연된 연극 ‘날 보러와요’는 중극장을 택하였다. 무대의 크기를 다르게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 연출적 의도에 색채 변화를 주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이전에 연극적 공간보다 더 넓은 공간에 꾸며진 이번 공연은 풀리지 않는 진실에서 말미암은 답답함보다는 부유하는 거짓의 물결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 애쓰지만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 진실을 앞에 두고 망망대해에 갇힌 인물들의 고독과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

내무반을 무대 정 중앙에 정사각형으로 설치하고 그 주위를 온통 갈대밭으로 둘러싸 내무반을 마치 외딴 섬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하여 시각적 미쟝센을 살렸다. 더불어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가 내리는 장면 역시 이러한 디자인에 적합하게 맞물려 살인이 일어나던 날의 을씨년스러운 정서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연극 ‘날 보러와요’의 현대적 시의성


20년 전에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희곡 ‘날 보러와요’의 매력 요소 중 하는 역시나 ‘시의성’이다. 물론 살인 사건이란 시대를 막론하고 일어나는 범죄이지만 수사의 과정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쓰인 이 작품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를 제외한 다양한 부분의 각색이 여지를 두었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 공연이 되던 시의성의 지점을 부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령 수사의 과정에서 범죄의 증거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장면들에서는 프로젝터나 영상 등의 신기술을 통해 이전 공연에서의 장면 표현보다 장면의 목적성을 더 부각시킬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한 문제 해결 방법의 관점 차이에 대한 부분도 각색이 가능하다. 신세대로 대변되는 김형사의 수사 방법도 첨단 장치를 통해 사이버 수사를 하는 오늘날의 수사방법에 비하면 올드하다. 그래서 시대적 흐름에 맞는 수사법이 드러난 장면으로 각색해 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극작이 바뀌어야 하므로 앞으로 작품이 재연한다면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형사들 간에 생기는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와 그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은 시대가 변하여도 있음직한 모습들이다. 이 장면은 수사의 과정에서 형사들의 동선이 자신의 업무 구역에 머물며 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형사들이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협동 작업을 하려 하지 않으려는 행동양태를 표현하기 위한 섬세한 연출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제공_​프로스랩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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