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1.26 목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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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창작 뮤지컬이 나아가는 정도(正道), 뮤지컬 ‘명동 로망스’

▲연극 ‘명동로망스’ 공연 장면_프로스랩 제공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가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 ‘목마와 숙녀’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젊음의 거리, 명동

1950년, 많은 예술가들은 명동에 모여 전쟁 즈음의 허무와 혼돈에 대해 자신들의 방식대로 토로했다. 시인 박인환 역시 명동의 번화함을 가르며 세상에 팽배한 허무와 괴리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오늘날 명동 역시 주말마다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번화가 중 한 곳으로써 아직도 많은 상권과 높은 땅값을 자랑하며 번화했던 지난날의 명성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 명동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과 마주하는 한 젊은이 산호를 중심으로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시작된다.

명동이 가진 상징성을 잘 활용하지 못한 아쉬움

청년 실업 문제가 팽배한 한국에서 바늘구멍만큼 좁다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산호는 명동 사무소 직원으로 발령을 받게 되고, 산호의 하루는 여느 공무원들의 삶처럼 반복의 연속이다. 그런 산호가 우연한 계기로 톱니바퀴 같은 일상을 벗어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의 도입이다. 무료한 삶에 찾아온 단비 같은 시간 여행은 흔한 드라마의 판타지 공식 제 1호 정도 되는 것 같다. 정형화 된 방식으로 드라마적 판타지를 진행시키니 진행은 물 흐르듯 잘되지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너무나 뻔하다는 점에서 아쉽다. 타임 슬립 장면 역시, 시계 문양으로 만들어진 조명 장치가 빙글빙글 거꾸로 돌면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장면을 표현하여 인물이 시간여행을 하는 구현한 것도 진부한 표현이다. 물론 영상 안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등장할 법한 영화적 판타지를 무대 위로 가져오려니 나타난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적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시도한 것 자체는 재미있었다.

작품이 도입에서 산호라는 인물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은 반복적 삶에 치어 살아가는 목적을 잃은 젊은이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이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오래 전부터 젊은이의 거리로써 명맥을 잇고 있는 명동이라는 지역이 가진 상징성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많은 화려한 명동의 상권과 빠르게 지나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외롭고 지친 산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뮤지컬 ‘명동 로망스’가 작품 제목을 ‘명동’로망스라고 지은데서 나오는 의미를 더 잘 부각시킬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극 ‘명동로망스’ 공연 장면_프로스랩 제공

뮤지컬과 연극 사이에서의 ‘썸’띵, 명동로망스

시간여행을 떠난 허구의 주인공이 실재하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정은 많은 정보와 설명일 필요할 만한 요소를 많이 지닌 이야기다. 게다가 이 작품은 장르가 뮤지컬인 만큼 자칫 잘못하면 전달성의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전달성의 취약함을 선행하여 인지하고, 정확하게 보완한 점이 인상 깊다. 보통 뮤지컬에서는 노래가 이야기 진행의 주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남발되지 않고 변곡의 지점에만 적절히 삽입되었다. 또한 각 노래의 경우도 장면별 상황별로 다른 어조, 다른 분위기를 살려 만들었다는 점에서 창작품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다시 말해 노래를 아끼고 연극성을 살린 작품이고 말할 수 있다. 이중섭이 등장하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이중섭에 대한 인물 묘사의 경우 독백 씬을 많이 넣되 대사보다는 그가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몰두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표현하는 부분을 많이 할애했다. 게다가 이중섭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부분은 주로 노래로 처리했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 남덕과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노래의 경우 이 장면의 주요 정서인 그리움을 잘 전달하기 위해 멜로디의 미학보다는 가사의 전달에 치중하여 말하는 듯한 언어로 노래했다. 만일 모두 같은 창법으로 노래하였다면 ‘노래를 위한 노래’가 되어 감정이입도와 전달력이 낮은 졸작으로 전락했을 것인데, 이 작품은 이미 창작 단계에서 이러한 지점을 경계한 흔적이 보인다.

시간여행을 떠난 관객들이 본 것, 자화상

오늘을 사는 산호가 우연히 떠난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고 온 세 예술가는 소위 ‘고학력 실직자’들이었다. 노동을 하며 경제 활동에 이바지 하지도 않고 커피나 마시며 예술을 운운하는 박인환, 전혜린, 그리고 이중섭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거를 살았던 세 명의 예술가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군상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 역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들의 지식과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경제 인구로써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과 닮아있다.

▲연극 ‘명동로망스’ 공연 장면_프로스랩 제공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시대는 다르지만 전쟁 즈음의 혼란과 허무에 번민하는 과거의 예술가들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과거과 현재가 다른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태도이다. 과거의 젊은이들은 문학, 시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논하고 개혁의 시각에 날을 세우는 시도를 했다. 이 작품에서 역시 세 명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입을 통해 당대의 의복과 말투를 고스란히 재현하여 증언하듯 당대의 문제에 대하 논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이러한 시도가 없다. 문제에 대한 고민도 없고, 문학을 음미하는 여유도 없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때 누구를 탓할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실을 개탄하기라도 하고, 더 나아가 바꾸어 보자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발설한다. 그러한 부분은 과거의 젊은이와 현대의 젊은이를 만나게 하는 판타지의 지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판타지가 의미 있는 이유는 과거의 젊은이가 현대의 젊은이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현재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있다. 그래서 미래에서 온 산호에게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묻는다. 그 질문에 ‘역사를 몰라서 답해드릴 수가 없어요.’라는 말로 일관하는 산호는 과거의 젊은이들에게 일침을 당한다. 이에 과거의 젊은이들은 ‘역사를 모르며 사는 일은 자기 세계가 없는 삶’이라고 응수하는데, 이것이 바로 과거가 현재에게 주는 일침이며 오늘날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이 부분은 과거 유명한 예술가라 기록된 박인환, 전혜린, 이중섭의 입으로 직접 전달된다는 점에서 특히 재미가 있다.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반면 미래에서 온 젊은이 산호가 과거에게 던지는 말은 ‘죽음’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말에 과거의 젊은이들은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인환, 전혜린, 이중섭은 ‘자기 세계가 없는 세상에서 살 가치를 못 느낀다며 떠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일관된 반응을 보인다. 이는 몇 달 뒤 죽을 운명에 놓인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태도하는가를 보여주며 오늘날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물리적 죽음 앞에 서 있으면서도 저런 숭고함을 보였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사고의 죽음 앞에서 방황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매우 주지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면 좋았겠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셋이나 등장한 이 작품에서 예술가들의 작품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만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들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며 작품이 전개되었다면 이입도가 높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산호라는 현대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현대의 인물에게 실렸던 점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작품을 통해 흔하게 접할 수 없는 1950년대와 그 때의 예술에 대해 보다 풍부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시대의 분위기만 조금씩 보여주고 그쳐버린 점에서 그때를 더 알고 싶다는 미련이 남는다.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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