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3.9 화 11:16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유희성의 The Stage 89]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
  • 유희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1.23 17:31
  • 댓글 0
▲2015 '뿌리 깊은 나무' 공연 장면_서울예술단 제공

‘뿌리 깊은 나무’, 소설가 ‘이정명’의 원작이 호평 속에 종영한 TV드라마에 이어 새로운 창작진이 합류하고 서울예술단의 특성을 살려낸 창작 가무극으로 부활했다. 작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단군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글창제 그 이면에 감춰져있던 궁궐 안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긴장감을 그려냈다. 그 속에서 ‘세종’의 정염과 더불어 열강의 감시와 압박 속에서도 모든 백성이 자기 뜻을 펴는데 어려움 없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하려했던 ‘세종’의 위로부터의 혁명, 즉 인간적인 애민정신과 독자적인 삶의 정치철학이 담겨있다.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의 대내외적으로 군주로서의 위상과 백성을 위한 애민정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당시 동양철학의 근간이던 음양과 오행, 천지인을 중심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채윤’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세종’과의 인연과 해후, 그리고 ‘세종’ 주변에 이권다툼으로 인한 음모와 모략으로 진행되는 죽음을 추적하고 수사하는 과정을 음양오행의 동양적 과학으로 풀어낸 심리 추리극이다.

이는 원작과는 다르게 ‘세종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주인공 ‘채윤’과 ‘세종’이 얽히는 새로운 전사의 드라마를 넣고 당시 명나라에 공녀를 보내던 공녀제도를 직시하며 한탄을 넘어 결국 지략으로 막아낸 ‘세종’의 민생을 돌보던 치적을 더했다. 또한 ‘세종’의 심복인 ‘무휼’과의 각별한 인연을 배치하여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 기저와 가히 목숨 바쳐 희생하는 충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즉, 바람직한 군주로서의 표상을 보이는 가운데 주변국과 조정의 알력과 음모가 보이지 않게 물리적으로 옥조여 오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추적해간다. 그 가운데 ‘채윤’의 가슴속에 번진 사랑의 애틋함과 질투로 가끔씩 기분 좋은 엉뚱함을 묻어내는 장면들을 첨가해 작품은 건조한 추리와 긴장감 속에서도 풋풋하고 산뜻한 솔향기를 느끼게 했다.

▲2015 '뿌리 깊은 나무' 공연 장면_서울예술단 제공

‘뿌리 깊은 나무’는 그동안 한국 창작가무극을 지향해오던 서울예술단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종대왕의 한글 선포일을 기념해 2015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개막했다. 1443년(세종25년), 당대 열강들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자국민을 위해 순수한 자국의 글을 선포한다는 것은 가히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600년을 지나 후대에까지 길이길이 진보될 우리의 혼이고 자랑스러운 문화요 자산인 한글의 창제에 얽힌 비화를 담은 작품을 통해 오늘과 내일 한글이 나아갈 방향성을 생각하게 했다.

작품은 그 시대적인 고증이나 기록이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시대적인 상징과 배경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심리적인 수사 추리극으로 살인의 주체를 찾아가는 이면에 세종창제의 알려지지 않았던 본질의 의미와 깊이를 되새기게 하며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른 접근으로 가무악의 특성을 오롯이 살려 현대성을 부여했다. 특히 영상의 활용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모션그래픽’을 가미해 한글의 모음과 자음이 가진 조형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입체화시킨 해석과 표현은 탁월했다. 당시 경복궁내의 지도와 오행상극도와 비서고 내용들을 합치고 입체적으로 그려낸 시각적 표현들 또한 무대라는 제약적인 공간에서 다루어지던 기존의 연극적 구성을 탈피한 시도였다. 이는 4차원의 미디어를 통한 시각과 흐름을 포착해 사건의 긴박함을 빠르게 전개시키며 동시대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2015 '뿌리 깊은 나무' 공연 장면_서울예술단 제공

작품은 관객이 ‘채윤’과 더불어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히려는 수사에 동참하게 한다. 살인사건과 연관된 단서와 집현전 학자들이 하던 일을 연결하면 오행의 소멸 이치인 오행상극(五行相剋)에 도달한다. 즉, 이미 죽임을 당한 자들의 단서를 찾아내고 다음 살인의 대상을 찾아내는 동양철학의 주역과 역학을 동원한 수사기법은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탄성을 지를 수 있을 만큼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았고 다소 생각이 개입할 수 없는 여지없이 빠르게 형이상학적으로 풀어 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떨어졌다.

서울예술단만의 독특한 움직임을 통한 안무적 구성과 흐름으로 자칫 건조해 질 수 있는 무대의 대지에 촉촉한 빗물 같은 움직임으로 반짝이는 윤기를 더하게 했다. 특히 나비로 분한 ‘박소연’의 우아한 몸짓과 내적으로 충만한 감성이 돋보였다. ‘박소연’은 깊이 있고 절제된 호흡으로 인한 세련된 기량으로 멈추듯 돋고, 바라보듯 날아가며, 휘감는 날개자락에 묻어나는 깊은 내공의 저력이 여실히 묻어났다. 그녀는 수려하고 빼어나게, 고고한 몸짓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휘감으며 신비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했다.

또한 무용인에서 이제는 어엿한 서울예술단의 대표배우로 거듭나며 절대 음성으로 빼어난 가창을 선보인 ‘무휼’ 역의 ‘최정수’의 무대를 압도한 당당함이 참으로 반가웠다. ‘세종’으로 분한 ‘서범석’은 절대 존재감으로 무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채윤’ 역의 ‘송용진’이나 ‘덕금’ 역의 ‘김건혜’는 호연을 펼쳤다. ‘가리온’ 역의 ‘김백현’은 감초 연기를 선보였으며 ‘최만리’ 역의 ‘금승훈’은 묵직한 안정감을 보여줬다. ‘성삼문’ 역의 ‘박영수’와 ‘장영실’ 역의 ‘박석용’, 빼어난 가창과 연기로 무대를 휘저은 ‘감시관’ 역의 ‘고미경’, ‘궁녀’ 역의 ‘정유희’ 등이 캐릭터의 중심을 잡아줬다. 특히 움직임이 빼어난 예술단원들의 호연이 더해져 무대는 충만한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특히 격구 장면에서 뜨거운 기량의 이인무를 선보인 ‘변재범’과 ‘형남희’는 작품의 백미로서 걸출한 장면을 완성했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희성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