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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토막에 사는 작은 토막들의 대한 단상
▲연극 ‘토막’공연 장면_국립극단 제공

막이 오르자 불이 켜지고 빈 무대 중앙에는 직사각형 두 개를 이어놓은 듯한 하얀 세트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붉은 색의 알 수 없는 작화가 두드러진 하얀 벽면이 놓여 있다. 무미건조한 직각의 세트와 알 수 없는 붉은 그림이 작화된 벽은 심상치 않은 일일 일어날 것임을 예측케 한다.

단순한 무대미술과 맞물린 정적인 동선

명서네 가족은 명서를 중심으로 이 좁은 세트에 오밀조밀 앉아있다. 세트는 무대 전체 공간이 공허하다 싶을 만큼 좁다. 그 좁은 세트 위에 한 자리씩 자지하고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인물들이 명서와 명서의 처, 그의 딸 금녀이다. 이들은 세트에 마치 발이 묶인 것 마냥 움직임의 변화가 없다. 이들 중 거동이 불편하다고 알려진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하얀 네모 안에서 옴짝 달싹하지 않는다. 세 인물의 이러한 비운동성은 이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장면에서 두드러지는데, 손님이 와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명서네 사람들의 모습은 손님들이 보여주는 운동성과 대비되어 더욱 정적으로 표현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구장이 명수에 대한 신문기사를 가지고 명서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아들에게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세 가족은 작은 토막같은 집에서 모여 앉아 신문기사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한다. 명서가 반정부 투쟁을 한다는 어마어마한 일에 대해 신문 기사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 일가의 모습에 구장은 허를 내두르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내고 떠난다. 이 장면에서 관객 역시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토막으로 상징되는 무대 위 직각 세트 위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명서네의 모습은 이 가족이 처해있는 현실과 현실에 대해 무기력함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극 ‘토막’공연 장면_국립극단 제공

병리적 인물을 통해 드러난 무력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명서는 병이 있어서 작품 내내 토막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를 낸다. 게다가 명서는 이 집의 가장 큰 어른이지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도 적극적인 행동을 하거나 영향력 있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앓는 소리만 낼 뿐이다. 명서는 아버지 세대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맥락에서 과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명서가 병석에 앉아 있다는 설정과 더불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모습은 기성세대의 무력화와 더불어 발전성 없던 과거에 대한 단상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로 대변되는 명수와 금녀 역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 양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으로 일하러 간 뒤 소식이 끊긴 명수 대신 집에 남은 젊은이 금녀의 일상은 어머니를 도와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구슬을 꿰는 일의 반복이다. 굽은 등을 이끌고 짧은 거리조차 엉금엉금 이동하는 금녀의 모습은 구세대로 대변되는 명서가 보여준 무기력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금녀가 보여준 무기력은 미래에 대한 무기력으로 대변되어 병약한 명서의 모습보다 더 비극적으로 보인다.

▲연극 ‘토막’공연 장면_국립극단 제공

희한하게 맞아 떨어지는 오늘날과 토막

신세대는 구시대의 관습을 깨고 새 시대를 열어서 자연스럽게 새 시대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등장한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무력하다. 현실에 목도되는 고통이 두려워 떠나거나 남았어도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일본으로 떠나겠다는 삼조의 부르짖음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목도하기 싫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새 시대를 열어야 하는 젊은이들은 떠나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자리에서 시대의 불온전성의 견디고, 개혁하고자 투쟁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은 늘 변하고 그 변곡점에서는 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뿐인데 이 작품에 등장한 젊은이들은 문제와 정면승부하기를 거부한다.

이번 작품의 핵심 인물인 명수 역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삼조가 생각한 것처럼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희망의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고 떠난 젊은이 중이 하나일 것이라 짐작된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현실의 부당함과 고통을 목도하는 것을 남의 일로 미루고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물론 젊은이들이 사회의 병리를 모두 짊어져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신세대들이 많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모습, 그러한 노동 환경이 싫다며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신세대의 행동 양태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금녀를 통해 젊은이들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금녀는 오빠 명수가 일본에서 항쟁을 하다 죽었다는 말들 듣고, 부르짖는다. 이 부분은 연극 안에서 금녀가 가장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 장면이다. 금녀 또한 사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지만 행동을 할 수 없고, 그저 부르짖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 행동할 수 없다며 부르짖기만 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젊은이들의 단상이다. 
 
그러나 주체성이 결여된 투쟁은 더 큰 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 앞에 놓인 고통이 크다고 해서 남의 말에 쉽게 휩쓸리게 되면 안 된다. 자신이 원하는 사회에 청사진에 대한 분명한 인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연극 ‘토막’에 등장한 명수처럼 우매한 개인의 감정 기복을 이용하는 사회 집단에 이용만 당하다 죽게 된다. sns를 활용하여 젊은이들을 중우정치에 빠지게 한 후 권세를 얻으려는 집단들의 경우가 바로 그 부분이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주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하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연극 ‘토막’은 오늘날 사회와 닮아 있으면서,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이 난세를 극복해야 하는지 은유적으로 직시한다.

▲연극 ‘토막’공연 장면_국립극단 제공

극단적 대비를 통해 시대 현실의 숙고

이 작품에서는 시대 현실에 대한 보다 강력한 숙고를 독려하기 위해 같은 시간에 서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른 상황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을 삽입하였다. 무대 세트 전면에 직사각형으로 구멍을 내어 간이 프로시니엄을 만들어 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표현했다. 주로 무대 상단 작은 프로시니엄에는 일본의 선진화된 신문물을 받아들이며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는 부유한 일본인과 이들을 따르는 조선인의 모습을 드러냈고, 그 바로 아래 무대 중앙에 명서네 집으로 상징된 공간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힘겹게 견뎌내는 명서 네와 같은 서민들의 삶의 단면을 드러냈다.

동시에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극명한 대조가 가능한 부분이다. 이는 풍족한 삶과 비참한 생활고의 현실이 공존하는 오늘날 한국의 모습에 대한 조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장면들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서로 다른 두 장소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서 영상을 활용했는데 가을은 단품, 겨울은 눈이 내리는 영상을 써서 배경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장면을 구성하기에 단순하고 미니멀한 세트는 영상을 활용하기에 적절했다.

▲연극 ‘토막’공연 장면_국립극단 제공

사실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실을 부각한 연극 ‘토막’ 그가 남긴 시의성

이 작품이 오늘 날 시의성을 갖도록 장치한 가장 주요한 요소는 무대미술이다. 만일 이 작품에서 토막으로 대변된 세트를 실제 작품이 쓰여진 시대에 가난한 서민들이 살았을 법한 모습으로 ‘재현’했다면 그 시대에 천착한 문제에 머물러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최소화한 세트를 설치하여 인물들이 처한 문제가 과거의 문제이면서도 어느 시대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해석이 가능하도록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관객의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부터 이러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니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다양한 시점들은 당연히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모든 인물들을 똑바로 걷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도 똑바로 걷지 못한다. 명서 네 가족 같다. 자신의 고통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프롤레타리아들 명수의 유골이 도착하고 자신의 아픔을 사회의 탓이라며 부르짖는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난다. 아들의 유골을 가슴에 쓸어담기를 반복하는 명서의 모습을 통해 이들의 외침은 무기력의 정점에 달한다. 이 가족은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못한다. 심지어 참고 살아가야 한다. 토막을 떠날 수 도 없다. 이것이 이 작품은 이러한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현시대에 대한 ‘자성’을 이끌어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대적 시의성이 충분하고, 국립 극장이라는 장소적 유효성에도 부합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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