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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데스노트’…“배우들의 내공이 빛나는 무대”

▲뮤지컬 '데스노트' 한 장면_씨제스컬처 제공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성
음악적 여백을 채우는 배우들의 내공
작품 전반에 깔린 음악적 ‘정의’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 어느 날 우연히 ‘데스노트’를 주운 라이토는 그것을 이용해 범죄자를 처단하기 시작한다. 범죄자들이 의문의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경찰은 천재 명탐정 엘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정의의 이름을 건 두 천재 라이토와 엘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엘과 엘을 죽이려는 라이토, 라이토를 사랑하는 미사와 그들의 사신들. 작품은 그들의 ‘관계’와 함께 ‘데스노트’에 관한 ‘법칙’으로 스토리를 풀어낸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나 많은 작품이 연달아 오픈된 최근 몇 년 간은 더욱 친근해진 느낌이다. 대중의 공감과 인기는 오롯이 그의 작곡 능력에 비례한다. 그렇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서 그가 주목받는 이유를 단순히 음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극본, 연출, 배우 등과의 시너지로서 설명할 수 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전체적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작품 전반에 깔린 음악적 장치들을 통해 ‘정의’라는 주제를 무대 위에 구현해낸다.

▲뮤지컬 '데스노트'_씨제스컬처 제공

 

-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구성

 

프랭크 와일드혼은 캐릭터에게 음악을 부여한다. 그의 전작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하이드’나 ‘엠마’에게 부여된 음악이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와 관객에게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캐릭터를 대표하는 멜로디는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뮤지컬에서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때문에 리프라이즈(앞에 나왔던 곡이 재연되거나 변주되는 것)의 사용은 중요하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지킬 앤 하이드’나 ‘모차르트!’처럼 인물이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두 주인공의 메인넘버인 ‘데스노트’나 ‘게임의 시작’보다 ‘정의는 어디에’라는 곡이 가장 많이 리프라이즈 된다. ‘정의는 어디에’는 라이토가 부르는 1막 오프닝넘버다. 이 곡은 1막의 엔딩과 2막의 오프닝, 2막의 중반부에 리프라이즈 된다. 리프라이즈 될 때는 다른 캐릭터와 앙상블까지 노래에 힘을 싣는다. 여러 인물들을 통해 반복되는 멜로디는 두 주인공보다 ‘정의’라는 주제가 관객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돕는다. 중요한 위치에 배치한 리프라이즈로 주제의 무게중심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뮤지컬 '데스노트'_씨제스컬쳐 제공

음악적 여백을 채우는 배우들의 내공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배우를 부각시킨다. 그의 음악은 대중음악에 자주 사용하는 쉬운 코드 진행, 도약과 순차를 적절히 섞은 유려한 멜로디, 연극적인 분위기 전환이 많지 않은 긴 호흡의 음악 스타일을 가진다. 이러한 스타일은 배우들이 음악 안에서 연기적으로 더욱 몰입할 충분한 시간과 여유, 감정을 가지게 한다. 즉, 연기적 요소를 넣을만한 여백을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내공이 없는 배우라면 그의 음악을 심심하게 처리하기 쉽다. 달리 말해보자면, 그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연기력을 증명 받는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조승우, ‘모차르트!’의 박은태가 대표적이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개막전부터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실력파 배우들의 출연은 우려보다 기대를 품게 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기대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홍광호는 디테일한 감정선으로 라이토의 심리변화를 노련하게 표현했다. 호불호가 갈렸던 김준수의 창법은 ‘엘’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긍정적인 시너지를 발휘했다. 배우들은 그동안 쌓은 내공을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작품 전반에 깔린 음악적 ‘정의’

 

뮤지컬 ‘데스노트’ 넘버에서 흔히 들리는 화성 진행은 단조의 1도(단3화음) - 6도(장3화음) 진행이다. ‘정의는 어디에’, ‘데스노트’, ‘게임의 시작’ 등 굵직한 넘버의 주요 골격은 모두 이러한 화성패턴으로 시작한다. 1도와 6도 3화음은 구성음은 비슷하지만 화음의 성질이 달라 분위기를 오가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지저분하게 덧붙은 복잡한 화성보다 ‘정의’를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저음부에 길고 묵직하게 깔리는 관‧현악기의 음색도 노랫말로 전달하는 ‘정의’보다 진짜 ‘정의’에 가까운 느낌이다.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이러한 분위기는 ‘정의’라는 주제의 추상적 느낌을 청각적으로 잘 전달한다.

 

작품에서 실제 막을 열고 닫는 앙상블도 ‘정의’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앙상블은 1막의 ‘Overture’에서 ‘키라’를 노래한다. 1막의 마지막 곡 ‘정의는 어디에(rep.)’에서는 주로 ‘키라(라이토)’의 노래에 코러스가 붙는다. 2막의 오프닝에서는 앙상블이 정의의 ‘키라’를 노래한다. ‘키라’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앙상블은 그를 찬송하는 듯하다. 극 속에서 대중의 역할을 하는 앙상블은 ‘키라’의 정의에 열광하지만 결말에는 ‘Requiem'으로 두 주인공의 덧없고 허망함을 노래한다. 바로 키라의 ’정의‘가 진정한 ’정의‘가 아니었음을 찬송과 진혼곡이라는 상반되는 음악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민지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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