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이 속담은 잠재의식에 각인된 인상이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상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라’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만큼 놀랐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의 놀란 경험은 일종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어 잠재의식 속의 장기기억으로 남게 되는데, ‘자라’를 보았을 당시 느꼈던 공포심까지 함께 각인되어 프로그래밍된다. 이렇게 잠재의식에 프로그래밍을 시키는 이유는 잠재의식이 가지고 있는 자기보호 기능 때문이다.

일단 잠재의식 안에 ‘자라=무섭다’고 프로그래밍된 장기기억과 감정은 언제든 비슷한 물체만 보더라도 되살아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비슷한 물체로부터 조심시켜 위험을 파괴하고,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잠재의식은 애초부터 우리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보호 기능에 의해서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보았던 물체가 공포의 대상인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즉시 공포감은 사라진다. 사실 ‘솥뚜껑’을 ‘자라’로 착각하는 것도 잠재의식 때문이다. 이제 잠재의식이 우리 심리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검은색 승용차에 치여 사고를 당한 55세 여성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차에 치이던 순간의 공포감을 잠재의식 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그 뒤로 그녀는 길을 걷다가 검은색 승용차만 보면 무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이때 느낀 무서운 감정이 그녀가 실제 차에 치였을 당시의 공포감과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고, 몹시 떨리며,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리는 등 진정하기 힘든 증상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환자는 주차된 검은색 승용차가 자신을 치었던 차가 아니며,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식은 잠재의식을 이기지 못한다. 현재의식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봤자, 잠재의식에 프로그래밍된 장기기억과 감정, 자기보호 기능이 그 환자를 공포반응으로 몰고 갈 뿐이다.

이와 같은 증상을 우리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전쟁터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수시로 공포증에 시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모든 작용은 잠재의식의 자기보호 기능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데, 꼭 PTSD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릴 적에 경험했던 심리적 충격이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성격이 예민해지거나 감정 변화가 심해지고, 스트레스를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환자의 사례도 있다. 60세 여성인 이 환자는 한평생 예민한 성격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남들보다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았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예민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잠재의식에 대해 알아보고 나서야 스트레스의 원인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에 대해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다. 항상 남의 눈을 의식했고,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했다. 그러한 강박관념이 그녀가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50대 때 종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다가가는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한 종교단체의 심리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의 마음 구조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잠재의식에 어떤 상처가 남아 있을까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탐험해가는 동안 그녀는 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린시절에 받았던 상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상처는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부모님이 장난삼아 내뱉었던 말일 뿐이었다.

“넌 저기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린아이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왔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이 잠재의식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그녀는 길을 가다 거지를 보게 되면 ‘부모님께 버림받으면 나도 저런 거지가 되겠지’하는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신을 언제 버릴지 몰라 가슴 졸이며 늘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로 살아왔고, 부모님으로부터 착하다고 칭찬을 들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던 마음이 남들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았고, 그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항상 걱정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이다.

한평생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속마음을 알게 되자 그녀는 마음이 치유되면서 매우 편안해졌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이전과 다른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도 이 환자의 경우처럼 우리가 잊고 지냈던 마음의 상처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내 마음 알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 먼저 차분하게 과거를 되돌아보며 감정 그래프를 그려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감정에는 저마다의 이름을 붙여 개개의 감정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잠재의식에 프로그래밍된 ‘내면아이’를 찾아본다. 이후 그 아이를 온 마음으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을 바꾸는 것이다.

글_고도일병원 만성피로센터 이동환 원장/저서 <굿바이, 스트레스> rivers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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