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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Flashback 68] 전이된 상실의 고리…뮤지컬 ‘덕혜옹주’[리뷰] “과거 아닌 현재의 이야기”…뮤지컬 ‘덕혜옹주’

오랫동안 슬픈 꿈을 걷는 듯했다. 작품 속 한 꺼풀씩 벗겨지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아린 역사가, 시린 가족사의 상처가 주춤주춤 서성이며 내면 어딘가로 걸어 들어온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근대사의 슬픔을 한 입 베어와 지금 우리의 상처로 무대 위에 옮겨놓은 작품이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고명딸이다. 여덟 살 나던 해, 그녀는 독살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덕혜는 14세에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뒤 차츰 말을 잃었고,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1931년 일본 귀족 다케유키와 결혼했지만, 병력이 거세져 1946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55년에는 이혼 절차를 밟았고, 1962년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1989년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정혜는 1956년 8월 26일 자살을 암시하는 쪽지를 남기고 실종됐다.

 

작품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녀와 그녀의 딸 정혜 그리고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의 이야기를 더듬어 나간다. 이야기는 1956년 8월 26일 딸 정혜가 실종된 뒤 다케유키가 자신의 딸을 애타게 찾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결론적으로 덕혜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물론 작품 곳곳에 그녀와 얽힌 이야기들은 드라마를 이끄는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한다. 특히, 그녀가 타국에서 겪어야 했던 수치심, 버려졌다는 허탈감 등이 담긴 장면은 이야기의 끊는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 너머에 있다. 바로 ‘가족’에 대한 것이다.

 

덕혜의 비극은 ‘나라’와 ‘부모’를 잃으며 발생한다. 그리고 그 비극은 딸 정혜에게 피처럼 유전된다. 정혜는 어린 시절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악랄한 상처가 새긴 반쪽짜리 ‘피’의 숙명은 어머니인 덕혜마저 그녀의 인생 바깥으로 억지로 내밀어 버린다. 다케유키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두 모녀를 물리적으로 분리시킨다. 하지만 다케유키의 이러한 판단은 결국 가족과 딸을 ‘잃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어머니의 상실이 딸에게로, 딸의 상실이 아버지에게로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세 인물에게 차례대로 전이되는 ‘상실의 고리’는 이 시대의 가족문제까지 관객의 눈앞에 끌어다 놓는다. 마지막 장면, 덕혜는 “들리나요. 돌아봐 주세요. 울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안아주세요. 내 딸 정혜일지 몰라요”라고 노래한다. 덕혜는 모든 것을 잊는 병에 걸렸지만, 끝내 자신의 딸을 잊지 않은 것이다. 작품의 메시지는 바로 이 가사에 모두 축약되어 있다. ‘정혜를 안아달라’는 덕혜의 말은 ‘지금 당신의 가족을 안아주세요’라는 마음의 소리를 함의한다.

 

문혜영은 이 작품의 극작을 맡은 것은 물론 덕혜와 정혜 1인 2역을 ‘연기 귀신’처럼 소화해 냈다. 그녀는 소녀와 노인의 간격은 물론 넘나드는 것은 물론, 덕혜와 정혜라는 두 인물에 적확한 차이를 두고 명확하게 연기했다. 순식간에 변하는 말투, 창법, 연령별 디테일은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소 다케유키 역의 윤영석은 흔들림 없는 연기로 극을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묵직한 그의 연기는 물 샐 틈 없는 무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무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은 세 가지 다른 크기의 문을 활용해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반면, 마지막 장면에만 등장하는 궁궐 담 문양의 세트는 공연 전반에 걸쳐 양옆에 훤히 드러나 있어 활용도와 미관상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극에 잘 녹아들어 이야기 몰입에 힘을 실어준다. 반면, 배우의 성량을 감당하지 못한 음향시설은 서운함이 남는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6월 28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주)문화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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