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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아버지는 늙었고 경숙이도 늙었다”

 

동서고금을 초월해 보편타당하다고 믿는 것이 ‘절대적 진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진리는 ‘상대적 진리’이다. 어떤 진리가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연극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을 하면 된다. 그게 바로 ‘시의성’이다.

 

여배우 고수희

 

한국 연극계에서 이웃집 아줌마,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어머니상,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할머니, 편안한 동네 누나 등 ‘친근한 여자’ 역할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풀어내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가 있다. 배우 고수희다. 그녀는 주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나 가족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 등 주변과 과거에 겪은 상처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위해 창작된 많은 작품들에 주로 등장한다. 친근한 여성 인물을 자신만의 개성 있는 외모와 억양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는 고수희가 거의 유일해 대학로에서는 그녀를 ‘대체 불가한 배우’라 부른다. 이렇듯 그녀는 주로 ‘흔한 여자’를 연기하지만 무대에서 독특한 에너지를 뿜어내기로 유명하다. 이미 마니아층이 두터울 정도다. 한 가족의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한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서도 그녀만의 에너지는 단연 돋보인다.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보여준 고수희의 매력은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 전쟁을 시간적 배경으로 전개된 이 작품에서 고수희는 역시나 어머니로 등장한다. 풍파와 격동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가는 여성이다. 어린 딸 경숙과 방랑벽이 심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사이에서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전형을 연기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고수희는 전형적인 인물을 자신만의 색깔로 녹여낸다. 특히 자신이 가진 큰 몸집과 걸걸한 목소리를 잘 활용한다. 자신의 독특한 외양을 기호화해 주로 말과 행동을 동시에 구사하는 방식의 연기 패턴을 보여준다. 그러한 고수희의 연기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인물이라는 그릇에 그녀를 담아내기에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 이유는 작품 전체의 인물 설정과 드라마 전개가 신파에서 볼 법한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근본 문제와 직결된다. 고수희는 전형성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행동 연기와 독특한 화술로 끊임없는 변화의 지점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작품은 인물도 드라마도 전형적으로 알려진 근현대사 속의 가족사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매력은 충분히 발산되지 못한 채 작품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전형성의 문제는 연기 영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창작 단계에서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이야기는 거의 빈 무대에 가까울 만큼 장치가 없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의 몰입까지 이끌어 낸 것은 고수희 이외에도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역량이 상당했음을 반증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의성’ 그것이 문제로다

 

작품 구성상의 아쉬움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던져볼 질문은 ‘시의성의 문제’이다. 왜 지금 이 작품이 공연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80~90년대 옛날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무책임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엄마, 그런 집이 싫은 자식들을 주요 인물로 내세운 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 맥락이다. 게다가 신파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소재인 남아선호 사상과, 새 엄마의 등장, 전쟁과 가난, 사투리와 트로트 음악도 패키지 상품처럼 활용된다.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온갖 클리셰가 총 출동한 셈이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현대 관객에게 신파의 공식이 더 이상 어떤 감동과 의미를 줄지 의문이다. 만일 신파의 공식을 삽입한 이유가 전형성에서 오는 익숙함과 향수 때문이라면, 이는 현대 관객에게 진부함만 안겨준 셈이 된다. 전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오늘날 연극을 보는 관객이 동감할 만한 전형성은 근현대사의 한 장면이 아닌 오늘날의 모습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삶에서 ‘익숙함’을 찾아내었어야 시의성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작품이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아버지와 경숙을 둘러싼 질긴 인연, 반복되는 인생의 굴레, 마음대로 어찌하지 못하는 삶의 관계들에 대한 부분이다. 하지만 신파의 공식이 주는 진부함이 너무 강렬해 이러한 메시지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공감의 지점은 예측 불가한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수 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자신 대신 데려다 놓은 낯선 남자인 꺽꺽이 삼촌과의 느닷없는 동거나 그의 아이를 출산해야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애인 자야가 아버지와 갑자기 들이닥쳐 함께 생활을 하게 되는 상황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또 다른 공감의 지점은 전대의 사건이 후대에도 반복적으로 전개되는 인생의 굴레에 관한 것이다. 이는 경숙이 아버지의 떠돌이 가정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러한 부분들은 인간의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지점들이기 때문에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가 종교의 등장으로 해결된다는 것은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설정이다. 작품 후반부에는 근대화시기에 세를 확장했던 교회를 연극에 등장시켜 화해와 회환의 의미로 그려냈는데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작품이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복잡한 인간들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개념이 종교라는 것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였다는 맥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극적 균형이 중요한 이유

 

이 작품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 역량과 리얼한 대사가 주는 몰입도는 다른 웰 메이드 작품들과 비견할 만하다. 하지만 그 만큼 작품 전개가 더 치밀하고 시의성 있었더라면 지금 이 작품이 존재하는 의미가 더 깊어졌을 것이라고 본다.

나여랑 newstage@hanmail.net
사진_수현재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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